후안무치(厚顔無恥)
기사입력 2019.02.2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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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경민대 교수)유비의 촉(蜀)과 손권의 오(吳)는 막강한 조조의 위(魏)와의 대결에서 국력의 열세로 독자적으로 상대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두 나라가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선택해야 했다. 하나는 삼국 쟁패에서 중요한 전략상의 요충지인 형주(荊州)를 확보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서로 동맹 관계를 구축하여 공동으로 조조에게 대항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두 나라가 동맹 관계를 구축하려는 실질적인 목표는 요충지인 형주를 장악하기 위한 것이었다.형주는 장사, 무릉, 언양. 남군, 이릉, 강하까지 포함하는 지역으로 광활하고 기름진 곡창지대였다. 게다가 삼국의 연결로를 동시에 장악할 수 있는 지역이어서 군사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한 요충지였다. 손권과 유비는 물론 조조도 이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결과 삼국의 이해가 정면으로 충돌한 전투가 바로 유명한 적벽대전이었다.
적벽대전에서 큰 승리를 거둔 손권과 유비는 형주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았다. 주유가 승세를 몰아 먼저 군사를 일으켜 남군에서 조조의 맹장 조인과 싸우는 동안, 제갈량은 군사를 몰아 기습적으로 형주를 차지했다. 유비는 형주를 차지함으로써 삼국 정립의 기틀을 마련했고, 익주는 물론 한중까지 장악함으로써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손권은 유비에게 즉시 형주를 반환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유비가 이를 거절하면서 두 나라의 갈등이 본격화되었다. 배신감을 느낀 손권은 그때까지 굳건히 유지되어온 동맹을 깨고 오히려 조조와 연합했다. 그 명분은 유비가 형주를 반환하지 않는 것에 있다는 것이었다. 유비는 어떤 경우라도 파기하지 않기로 한 당초 약조를 배반한 손권의 핑계를 ‘아가사창(我歌査唱)’이라고 비난했다. 아가사창이란 ‘내가 부를 노래를 사돈이 부른다.’는 뜻으로, 비난을 받을 사람이 도리어 큰소리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우리 속담에 ‘사돈 남 말하네.’라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예로부터 전통사회에서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덕목의 하나로 ‘예의와 염치’를 꼽았다. 이를 모르면 사람으로서의 근본을 모르는 소인배로 손가락질을 받았기 때문에, 누구나 주변으로부터 그런 평판을 듣지 않기 위해 열심히 배우려고 노력했다. 최소한 ‘얼굴값’은 해야 했기 때문이다.면목이 없으면 얼굴을 들 수가 없다. 남 앞에서 부끄러워 얼굴을 못 드는 것은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 있기 때문이다. 유방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항우가 강을 건너 고향으로 돌아가 훗날을 도모하자는 부하들의 간곡한 요청을 거절하고 장렬한 죽음을 선택한 것도, 자기 목숨을 보전하는 것보다 고향으로 돌아가 백성들을 대할 면목이 없음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옛사람들은 면목을 세우기 위해서라면 목숨도 기꺼이 버렸다. ‘얼굴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른다(厚顔無恥).’는 손가락질을 받는 수모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덕목이었다.요즈음 우리 사회 곳곳에 이른바 ‘얼굴’을 두고 민심이 들끓고 있다. 사립유치원의 부도덕한 행태가 낱낱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은 모두 충격에 빠졌다. ‘교육은 백년대계’라 하여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그래서 어느 나라든 모두 꿈나무 교육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유치원은 엄연히 교육기관이다. 교육기관을 설립할 때는 개인의 돈벌이도 중요하지만 ‘교육’이라는 가치에 모든 것을 우선시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립유치원을 설립할 때는 개인이 하지만, 설립된 후에는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는 교육자로서의 책임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어느 곳에서나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못해 그 잘못을 지적해도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들이 오히려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와 제 잘못이 없고, 그 책임이 학부모와 국가에 있다고 항변하는 행태를 보면 세상이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게 틀림없다. 도둑이 되레 매를 든다는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이보다는 나을 게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예의와 염치가 없으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고 배운 우리들이다. 우리 속담에 ‘낮에 난 도깨비’라는 말이 있다. 도깨비는 어두운 밤에 돌아다니는 게 제격이고 상식인데, 이 염치없는 도깨비란 녀석이 대낮에 버젓이 저자거리를 나다니고 있는 형국이니 이 가소로운 행태를 언제까지 보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보편적인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이리도 어려운가 보다. 바라건대, 낮에 난 도깨비가 아니라 예의와 염치를 아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장원섭 교수 기자 jangsfa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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