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의 왜곡(歪曲)

기사입력 2019.07.02 17:24  |  조회수 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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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경민대 교수)

우리 소시민에게는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이 우선이다. 나와 내 가족이 행복하면 우선은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게시판을 내걸며 모든 정책에서 민생을 우선한다는 솔깃한 구호로 시작한 정부였지만, 지난 2년 동안 일자리 창출 문제는 오히려 심각해졌다. 유가 상승과 주가 하락, 부동산 문제 등 민생과 직결되는 대책은 구호만 요란하다. 갈수록 심해지는 빈부 양극화에 국민은 낙담을 넘어 절망한다.

대신 남북교류와 통일정책 구호는 갈수록 거창하다. 경제에 쏠린 세간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듯한 모양새라서 그런지 역시 구호만 요란하다. 당연히 날로 악화되는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어디 가당한 일인가. 당장 가정이 파산될 위기에 내몰리고 직장이 도산할 위기인데, 국민들의 눈에 남북통일이나 북핵이 들어올 리 만무하다.

정치는 왜 하는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백성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다. 백성을 이롭게 하려면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 그 답은 저잣거리에 있다. 그게 바로 민심이다. 지금 걱정하는 것은 민심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무능한 정치권의 행태 때문이다.
오늘날 정치권의 문제는 바로 민심의 왜곡이다. 민심이 무엇을 원하는지 뻔히 알면서도 저들의 목적에 부합되도록 왜곡시킨다. 때로는 여론과 통계를 조작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초(楚)나라 사람이 연(燕)나라 재상에게 밤에 편지를 썼다. 그는 하인을 불러 촛불을 들고 가까이에서 비추라고 했다. 그래도 촛불의 밝기가 영 시원치 않자, 그는 붓을 든 채 하인에게 “촛불을 높이 들어라(擧燭)”고 말했다. 그런데 그만 무심결에 ‘擧燭’이라는 말을 편지에 써 넣었다. 그리고는 확인도 하지 않고 편지를 보냈다. 물론 ‘촛불을 들라(擧燭)’는 말은 편지의 내용과는 아무 관계도 없었다.
편지를 받은 연나라 재상은 문장 가운데 촛불을 들라는 문구가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겼다. 잠시 생각하다가 그는 무릎을 쳤다.

“오호라! ‘촛불을 들라(擧燭)’는 의미는 ‘밝음을 존중’하라는 뜻이다. 밝음을 존중하라는 것은 바로 ‘어진 이(賢者)를 찾아 등용하라’는 말이로다. 그렇다. 이것이야말로 나라를 다스리는 요체가 아닌가.”
이튿날 연나라 재상은 궁으로 들어가 왕을 알현하여 편지의 내용을 설명하고 이를 정사에 반영할 것을 건의했다. 왕은 크게 기뻐했다. 곧 저잣거리에 방(榜)이 나붙었고, 실력 있고 명망이 있는 자들이 몰려들었다. 얼마 가지 않아 나라는 잘 다스려졌고 백성들은 왕의 선정을 칭송했다. 《한비자(韓非子)》〈외저설좌(外儲說左)〉 상(上)에 실려 있는 ‘영서연설(郢書燕說)’의 고사이다.

그러나 비록 나라는 잘 다스려졌지만, 원래 편지를 보낸 사람의 뜻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이었다. 이처럼 어떤 일이나 상황을 해석하면서, 그 뜻을 왜곡하여 자기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한비자는 이 고사를 기록하면서 ‘적합한 조치가 아닌데도 선왕의 말씀이라고 하여 무조건 그대로 따르려고 하는 것은, 마치 신발을 사러 장에 갔다가 발의 치수를 적어놓은 종이를 두고 왔다고 하며 사지 못하고 돌아가는 일과 같다.(夫不適國事而謀先王, 皆歸取度者也.)’라고 경고한다.

촛불 혁명은 왜 일어났고, 거기에 들어있던 국민의 명령은 무엇이었나? 근본적인 이유는 대통령과 측근들의 비리와 국정농단에 있었다. 촛불 민심의 명령은 먼저 적폐 청산과 공공개혁으로 적법한 시스템에 갖춘 정의로운 국정운영이었다. 또 하나는 경제 활성화를 통한 민생의 안정이었다. 당시에 분노한 민심의 등에 올라탄 정치인들이 이를 간파하여 재빨리 내 건 구호가 바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촛불민심은 환호했다.

그러나 새 정부가 들어선 지 2년 여가 지난 지금은 어떤가? 그들은 순수한 촛불민심을 자의적으로 해석했고 약삭빠르게 모든 공을 가로챘다. 여러 방면에서 그런 징조가 보인다. 경제성장이 세계 주요국 중 꼴찌로 떨어졌는데도 대통령은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은 튼튼하다”고 자신한다. IMF 이후 최악의 청년실업 사태를 마주하면서도 “경제가 성공적으로 가고 있다”고 자찬한다. 청와대 일자리수석은 “획기적으로 고용이 개선되고 있다”고 감언을 늘어놓는다. 많은 국민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이제는 가로젓기 시작한다.

모름지기 정치를 하는 자라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자고로 백성은 그들의 민심이 왜곡되어 기만당했다고 여기면 언제든지 다시 일어선다는 것이다. ‘물은 배를 띄우지만 배를 뒤집어엎기도 한다(君舟民水 載舟覆舟)’는 선현들의 준엄한 경고를 되새겨야 한다.

촛불혁명이 일어난 지 2년이 지났지만 그들이 자신만만하게 내걸었던 ‘나라다운 나라’의 모습은 아직도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게 나라냐?’라고 촛불을 높이 들었던 사람들의 물음에 대하여, 그들은 ‘이것이 바로 나라다운 나라다.’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연초에 한 방송기자의 도발적 질문에 대통령은 즉답을 피해갔지만, 이제는 명쾌한 답을 해야 할 시기이다.
별 뜻 없이 쓴 용어를 좋은 뜻으로 해석하여 왕의 선정을 끌어낸 연나라 재상의 지혜로움에 비할 바가 아니더라도, 그 뜻이 너무나도 명확한 촛불민심을 왜곡하는 어리석음은 경계해야 한다. 저잣거리의 민심은 촛불을 들었던 그 간절함을 여전히 잊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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