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렴치(破廉恥)

기사입력 2007.08.16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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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렴치(破廉恥)란 염치를 깨뜨리는 것이니, 곧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으로 알지 못하는 뻔뻔스러운 행위를 가리키는 뜻으로 관자(管子)의 목민편(牧民篇)에 나오는 말이다.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유명한 관자의 목민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나라에는 네 가지 강령이 있다(國有四維). 그 가운데 하나가 끊어지면 나라가 기울고, 두 가지가 끊어지면 위태로워지고, 세 가지가 끊어지면 뒤집어지고, 네 가지가 끊어지면 망한다. 기우는 것은 바로잡을 수 있고, 위태로운 것은 안정시킬 수 있으며, 뒤집어지는 것은 일으켜 세울 수 있지만, 망한 것은 다시 일으킬 수 없다. (國有四維, 一維絶則傾, 二維絶則危, 三維絶則覆, 四維絶則滅. 傾可正也, 危可安也, 覆可起也. 滅不可復錯也.)” 


“무엇을 일러 네 가지 강령이라 하는가? 첫째는 예(禮), 둘째는 의(義), 셋째는 염(廉), 넷째는 치(恥)다. 예란 절도를 넘지 아니함이요, 의란 스스로 나아가지 아니함이며, 염이란 잘못을 은폐하지 아니함, 그리고 치란 그릇된 것을 따르지 아니함이다. 그러므로 절도를 지키면 윗사람의 자리가 평안하고, 스스로 나아가지 아니하면 백성들 사이에 교활함과 속임이 없어지고, 잘못을 은폐하지 아니하면 행실이 저절로 온전해지며, 그릇된 것을 따르지 아니하면 사악한 일이 일어나지 아니한다. (何謂四維?一曰禮 二曰義 三曰廉 四曰恥. 禮不踰節, 義不自進, 廉不蔽惡, 恥不從枉. 故不踰節 則上位安, 不自進 則民無巧詐, 不蔽惡 則行自全, 不從枉 則邪事不生.)”
 

관중(管仲)은 이 글을 통해 나라를 경영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유념해야 할 덕목을 열거한 것이다. 이후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의 역대 모든 목민관들이 이 글을 금과옥조로 받아들이며 국가를 바르게 경영하는 지표로 삼아왔다. 후대에 오면서 여기에다 효제충신(孝悌忠信) 네 덕목(德目)을 추가하여 팔덕(八德)이라 했다. 앞서 네 가지 강령(四維)이 나라를 경영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라면 효제충신은 인간관계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네 가지 덕목인 셈이다.
 

정치인들이 국가를 경영함에 있어 네 가지 강령을 잘 지켜 국정을 바르게 세우고, 이를 따르는 백성들이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효제충신 네 가지 덕목을 잘 지켜나간다면 이야말로 천하가 태평성대를 누리는 시대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팔덕(八德)은 정치를 하는 사람이나 이들을 믿고 따르는 백성들 각자가 자기의 위치에서 스스로가 지녀야 할 기본적인 도덕률인 것이다.
 

국가의 최고지도자를 뽑는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대선주자들의 움직임이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모두가 스스로 국가경영의 최고 책임자로서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뛰는 무리들만큼이나 이를 지켜보는 일반 소시민의 호흡도 덩달아 가빠지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 사이에 공통되는 부분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상대 후보의 치부(恥部)를 밝혀내기 위해 사생결단을 하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상대 후보의 과거 행적에서 부끄러운 부분을 밝혀내 이를 알리고 그것이 국민들에게 사실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선거전에서 확실한 도덕적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에 상용되는 수법이다.
 

그런데 서로 폭로하는 내용이 너무나 살벌해 약간만 방심해도 낙마할 수 있을 정도여서 지켜보는 우리 입장에서는 아슬아슬하기는 매 한가지다. 지켜보고 있는 우리 국민들은 이들에게 묻고 있다.
 

관자가 지목한 나라경영의 네 가지 덕목에서 모두 얼마나 자유로운가 하는 점이다. 첫째 당신은 절도를 넘지 않는 예(禮)가 있는 후보인가, 둘째 내가 적임자라고 우기지 아니하며 스스로 나서지 않는 의로움(義)이 있는 후보인가, 셋째 청렴하고 결백한가, 혹시라도 지난날의 잘못된 행적이 있다면 이를 굳이 은폐하지 아니하고 솔직하게 용서를 구하는 염(廉)을 가진 후보인가, 넷째 부끄러워 할 줄 알고 잘못된 관행을 따르지 아니하려는 치(恥)를 아는 후보인가. 모두들 잘난 사람들인데도 아무리 뜯어보고 뒤집어 놓고 봐도 세간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네 가지 덕목이 너무나 아쉬워지는 건 무슨 까닭일까?
 

남의 과거 행적을 평가하는 데는 살벌하리만치 인색하지만, 자신의 과거행적을 묻는 사람들에게는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교묘하게 미화하거나 말 재주를 부리면서 피해나간다. 어두웠던 시절에 국가 통치자들이 저질렀던 갖가지 의혹에 대해서는 명쾌한 입장을 나타내지 않고 그 시절에 혜택을 입었던 사람들을 앞세워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고 있다. 누가 더 흠이 많고 깨끗하지 못하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후보인지 지켜보는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염치를 모르면 얼굴색이 변하지 않는다. 낮 가죽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르기 때문이다. 
 

후안무치(厚顔無恥)라는 옛말이 그래서 생겨난 것이다. 제자 자공(子貢)이 이웃 나라 재상으로 초청을 받아 벼슬길에 나서면서 스승인 공자에게 정치를 하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공자는 주저 없이 신의(信義)를 강조했다. 무릇 국가를 경영하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극한적인 상황에 처해 군대를 버리고 식량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백성들에게 절대 신의(信義)를 잃으면 안 된다고 일러준 것이다.
 

백성들에게 신의를 잃으면 천지간에 몸 둘 곳이 없어진다는 것이 공자의 가르침이었다. 
신의는 곧 정치인으로서의 기본 덕목으로서 예(禮), 의(義), 염(廉), 치(恥)의 완결편이라고 할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아무리 첨단으로 변한다고 해도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도리는 절대 달라지지 않는 법이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팔덕(八德)을 망각하고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켜 `忘八'이라 하여 사람 취급을 해주지 않았다. 잊어버린다는 뜻의 `망(忘)'이 중국에서 가장 흔한 성씨인 '왕(王)'과 발음이 같아 그런 사람을 `놈'이라는 뜻의 `단(蛋)'을 덧붙여 `왕팔단(王八蛋, 왕빠딴)이라고 했는데, 지금도 중국에서는 상대를 나무랄 때 가장 심한 욕(辱)으로 통용되고 있다.
 

염치를 모르고 행동한다는 뜻의 파렴치(破廉恥)나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덕(德)을 망각한 사람을 욕하는 뜻의 왕빠단(王八蛋) 모두, 사람이 기본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을 갖추지 못했을 때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가장 험한 말들이라 하겠다.
 

여덟 가지 덕목을 모두 갖춘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적어도 스스로의 행동에 부끄러워 할 줄 알고 좀 더 솔직한 염치 있는 사람을 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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