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은 저무는데 갈 길은 더 멀어지고

기사입력 2019.11.18 12:01  |  조회수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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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의 일이다. 위(魏)나라 왕이 이웃 조(趙)나라를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신하 계량(季梁)이 이 소식을 듣고 급히 입궐하여 왕을 만났다. 당시 위왕은 천하를 제패하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계량이 말했다.

“제가 오던 길에 수레를 몰고가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래서요?” 위왕이 궁금해서 물었다. 계량이 말을 이었다.
“그는 남방의 초나라를 향해 가고 있다고 하면서 북쪽을 향해 마차를 몰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초나라로 간다면서 왜 북쪽으로 가는 겁니까?’라고 묻자,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 말은 아주 잘 달립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이 아무리 잘 달려도 이쪽은 초나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라고 일러주었습니다.”
“허허… 저런… 그래서요?” 위왕은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나는 돈을 넉넉히 가지고 있고, 마부도 마차를 모는 기술이 아주 훌륭합니다.’라고 엉뚱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왕께서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수레는 갈수록 초나라와 멀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계량은 말을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말했다.
“왕께서는 항상 천하를 복속시켜 패왕(覇王)이 되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 왕께서 나라가 조금 큰 것만을 믿고 약한 이웃 나라를 공격한다면, 영토는 넓어지겠지만 천하의 인심을 잃는 것이니 왕의 목표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제가 만난 사람처럼 초나라로 간다고 하면서 정작 마차를 북쪽으로 몰고 가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위왕은 깨달은 바가 있어 곧 조나라 공격 계획을 접었다.

이 고사는 수레를 모는 마부처럼, 수레의 끌채는 남쪽을 향하고 있는데 바퀴는 북쪽으로 향하고 있어 목표와 행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음을 풍자하고 있다. 당나라 때 백거이(白居易)가 지은 《신악부(新樂府)》 〈입부기시(立部伎詩)〉 편에 실려 있는 ‘남원북철(南轅北轍)’이라는 고사의 내용이다.

모든 일은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방향과 방법이 일치하면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정책을 세울 때는 먼저 올바른 방향성을 확보한 후, 어떤 속도로 목표에 도달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올바른 방향 설정이 올바른 방법을 선택하는 것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방향이 잘못되었는데 방법이 아무리 좋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얼마전 청와대 수석 몇 사람이 물러났다. 그들의 퇴임변이 화제에 올랐다. 민정수석을 지낸 분은 “촛불명예혁명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하여 법과 원칙을 따라 좌고우면하지 않고 직진하였고,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며 “주권자 국민과 공개적으로 소통하면서 업무를 수행했다”고 자평했다. 일자리수석은 “일자리 정책이 성과를 내기 시작했으나 국민이 체감 못한 것은 아쉽다.”고 했다. 시민사회수석도 “정부는 우리 사회의 10년 가까이 된 묵은 노동·사회적 갈등을 대부분 해결했다.”고 자평했다.

그런데 세간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적어도 이 정부가 출범한 후에 법과 원칙은 일부 더 왜곡되었고,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어 젊은이들에게 절망감을 안겨주고 있으며, 노조의 시위는 더 과격해지고 노사 갈등은 끝을 알 수 없게 되었다는 세간의 목소리에 대한 답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재임 기간 동안 잘못하거나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고 잘했다고 자평하는 오만한 태도에 어안이 벙벙하다. 이들이 물러난 이유도 장관에 임명되거나 총선을 통해 국회로 가려는 사람들이란다. 그동안 스스로 막중한 책임을 지고 일을 했다고 생각하면, 어찌 이런 식으로 자신의 업무수행 공적을 함부로 자찬할 수 있을까?

“임금님 은혜 깊으나 갚을 길 없어 탄식하고, 맡겨진 큰일 감당키 어려워 하늘에 부끄럽구나.(恩深欲報嗟無地 任重難堪愧有天)” 세조 때 공조판서를 역임한 김예몽(金禮蒙)이 지은 〈양양루 시에 차운하다(次襄陽樓韻)〉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이들이 이 싯귀에서 임금님의 은혜를 국민에게 입은 은혜로 생각하고 그 기대에 과연 부응했던가를 생각한다면, 적어도 그런 오만한 말은 입에 담기 어려울 것이다.

근래에 이르러 국내 사정은 말할 것도 없고 외교면에서도 완전히 방향을 잃은 모습으로 갈팡질팡하고 있다. 급기야 150여 년 전의 구한말 상황이 회자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만큼 저잣거리에서는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수레가 방향을 잘못 잡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수레를 모는 사람들은 아무 탈 없이 잘 달리고 있다고 강변한다. 속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지적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으니 이 무슨 변고인가. 신하 한 사람의 경고를 듣고 수레의 방향을 제대로 잡은 위왕의 듣는 귀가 부러울 뿐이다.

가려는 방향을 잘 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남쪽으로 가려고 하면서 수레를 북쪽으로 몰아서야 되겠는가? 수레에 타고 있는 우리의 운명이 아슬아슬하다. 날은 저물어 가는데 갈 길은 더 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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