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원(鄕原)의 두 얼굴

기사입력 2019.11.18 13:26  |  조회수 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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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다. 높은 사회적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그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이다. 사회적 리더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높은 도덕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존경받는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위치는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위치를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추구하고 지식인의 본무(本務)인 사회정의의 실현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옛 어른들은 이들을 일러 사이비 지식인 즉, ‘향원(鄕原)’이라 불렀다.
“향원은 도덕을 훔치는 자이다(子曰鄕原德之賊也).” 공자께서 하신 말씀이다. 공자는 “내 집 앞을 지나가면서 내 집에 들어오지 않아도 섭섭하게 여기지 않을 자는 오직 향원뿐이다. 그들은 ‘도덕을 훔치는 자(賊)’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계속 일갈한다.
“그들의 말이 또 얼마나 번드르르한가! 말은 스스로의 행동을 돌아보지 않고, 행동은 스스로 한 말을 돌아보지 않으면서도, 입만 열면 옛 성인을 말한다. 그들의 행동이 또 얼마나 그럴듯한가! 세상 사람들 모르게 은밀히 재빠르게 세상에 영합하는 자가 바로 그들이다.”

한 제자가 맹자에게 물었다.
“일정 집단 내에서 독실한 인물로 통하면 어딜 가든 항상 독실한 인물로 통할진대, 공자가 왜 그런 훌륭한 인물을 ‘도덕의 적(賊)’으로 규정했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향원에 속하는 부류들은 비판하려고 해도 꼬집을 데가 없고 비난하려고 해도 나무랄 데가 없다. 왜냐하면, 이미 속된 무리의 논리에 동화하고 세속의 부패에 젖어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처신은 충직하고 믿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고(似忠信), 행실은 염치가 있고 고결한 것처럼 보여서(似廉潔) 뭇 사람들이 다 좋아한다. 그러나 그들은 늘 저 스스로 항상 정의롭다고 여기면서도(自以爲是), 사실은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도덕의 적(賊)’인 것이다.”
향원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자신이 살아온 과거에 대하여 진솔하게 반성하거나 되돌아보기는커녕, 항상 자부와 긍지를 가지고 자신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변호(自以爲是)한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이미지 관리에 매우 철저하다. 그러나 이들이 일부 특정 집단의 눈과 귀는 속일 수는 있을지라도, 세상 모든 사람을 속일 수는 없다. 결국 그들에게 붙여진 ‘충직함, 신실, 염치, 고결함’의 수식어는 시간의 차이일 뿐 모두 거짓임이 드러난다.

일찍이 율곡(栗谷)은《성학집요(聖學輯要)》에서 향원을 이렇게 정의하였다.
“탐관오리나 아첨꾼은 소인의 전형으로서 누구나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으나, 유독 사이비(似而非)한 인물만은 그 실체를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낯빛은 근엄하고 입은 옳은 소리만 하는지라 자태와 언행이 참된 군자의 그것과 닮아 있고(似), 온전하고 허물이 없는 군자의 행실과 비슷하기(似) 때문이다. 이들은 음흉하게 세상에 아부하면서도 항상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며(自以爲是) 속된 무리와 한패가 되어 무사안일과 비겁한 적당주의에 안주함으로써, 결국은 혹세무민보다 국가 사회에 더 심대한 해악을 끼친다. 이들이 바로 향원이다.”

즉, 향원은 비록 학문은 익혔으나 그 정의의 실현에는 관심이 없고, 배운 지식을 수단으로 삼아 현세적 ‘명예와 이익(名利)’의 추구에 급급한 소인(小人)의 대명사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현들이 향원을 비판하는 초점은, 그들이 얻은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여 행사하는 영향력에 있었다. 즉, 가라지(피)가 잡초 속에 들어있지 않고 논밭에 있으면서 마치 곡식인양 행세하여 그 성장을 방해하고 있음이 문제이듯이, 향원들이 그냥 조용히 속된 무리 속에 묻혀 지내지 않고 사회 지도층의 반열에 올라 마치 덕이 있는 자(有德者)인양 행세를 함으로써, 결국 참된 덕(德)의 실현을 방해하고 있음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 출세하려면 기본으로 갖추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위장 전입과 탈세, 편법 증여, 논문 표절, 부동산 투기 등이다. 정치권을 보면 참 재밌다. 여야가 서로 바뀌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같은 일을 두고 말을 바꾸면서 서로 비난한다. 서로 자기네들이 깨끗한 정치인이라고 우긴다. 저자거리에서는 이들의 저급하고 비열한 두 얼굴의 행태를 이해하지 못한다. 상식 수준에도 못 미치기 때문이다. 코미디도 이런 저질 코미디가 없다. 이들이 바로 향원에 다름 아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사람이 하는 짓을 보고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을 살피고 그 사람이 어떤 것에 만족을 느끼는지를 관찰해 보면 어찌 그 사람됨을 감출 수 있겠는가! (子曰 視其所以, 觀其所由, 察其所安, 人焉廋哉, 人焉廋哉!”, 論語 爲政篇).

노암 촘스키(Noam Chomsky)는 자신의 저서 《지식인의 책무》에서, 지식인의 책무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스스로 지식인의 반열에 들어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먼저 떠올려야 한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릴 수는 있다. 그러나 어찌 하늘까지 가릴 수 있으리오. 저자거리의 민심을 결코 가벼이 여기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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