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룩함(糊塗)의 지혜

기사입력 2019.11.18 13:37  |  조회수 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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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국시대의 일이다. 어느 날, 제나라 대부였던 이사(夷射)가 왕이 준비한 연회에 참석하여 귀한 술과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었다. 연회가 끝나고 이사가 왕이 내린 귀한 술을 들고 궁궐의 문을 나서는데, 왕궁의 경비를 맡고 있던 말직 관원인 저궤라는 사람이 공손하게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혹시 저에게 그 술을 좀 나누어 주실 수 없겠습니까?” 이사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그를 꾸짖었다.
“뭐라고? 한낱 궁문을 지키는 주제에 감히 왕께서 내리신 어주를 마시겠다는 것이냐? 썩 비키거라.”
무안해진 저궤는 얼굴을 붉히면서 뒤로 물러났다. 이사가 멀리 사라지자 그는 부하들을 시켜 썩은 분뇨를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는 왕이 궁궐을 나서는 시각에 맞춰 궁문에다 분뇨를 뿌렸다. 졸지에 궁문에는 누가 봐도 몰래 방뇨를 한 흔적이 남았다.

날이 밝자, 왕이 궁궐을 나오다가 고약한 냄새를 맡게 되었다. 왕은 궁문에 남겨진 분뇨의 흔적을 발견하고는 화가 나 궁문을 지키는 책임자를 찾았다. 저궤가 달려오자 왕은 크게 꾸짖으며 말했다.
“누가 이곳에 방뇨를 했느냐?” 저궤가 당황한 척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이사 대부께서 어제 밤에 이곳에서 잠시 뭔가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크게 진노한 왕은 궁 안으로 다시 돌아와 대부 이사를 들라 했다. 왕이 부른다는 소식에 영문을 모르고 급히 궁으로 들어온 이사는 곧바로 체포되어 참형에 처해졌다. 이사는 자신의 목이 달아날 때까지도 왜 자신이 죽어야 하는지 몰랐다. 저궤는 비록 궁문을 지키는 일개 말단관리에 불과했지만, 자신에게 모욕을 준 대부의 목숨까지 앗아가게 만들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사소한 일로 적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잘 말해주고 있다.

중국의 속담에 “친구가 많아지면 길이 많아지고, 적이 많으면 벽이 더해진다.”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재주만 믿고 오만한 자는 흔히 이런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는 경고의 말씀이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어른들께 배우는 것 가운데 ‘인간의 처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이유도 알고 보면 모두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지혜를 터득하라는 가르침이다. 즉, 살아가면서 되도록 다른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사는 일을 하지 말고, 되도록이면 적을 만들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아무리 많은 재주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늘 조금 부족한 듯 보이게 하는, 이른바 ‘처세의 기술’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예로부터 겸양(謙讓)을 미덕이자 삶의 지혜로 삼아왔다. 자신의 날카로움을 감추고 겸손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다소 어수룩해 보이는 모습은 손해가 아니라 오히려 득을 본다는 역설적 가르침이었다. 이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의 삶을 통해 일생 동안 견지해야 하는 기본 가치로 인식되었다.

청나라 때 양주팔괴(揚州八怪)의 한사람으로 이름을 날린 문장가 판교(板橋) 정섭(鄭燮)이 잠시 관리로 근무하고 있을 때, 사촌이 보낸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내용인 즉, “이웃집과 담장 경계 문제로 재판이 진행되고 있으니, 담당 관리에게 잘 부탁해 도와 달라.”는 것이다. 그는 얼른 “담장을 몇 자 집 쪽으로 양보하는 게 어떤가?”라는 내용의 답장과 함께 ‘난득호도(難得糊塗)’라고 친필로 쓴 편액을 보냈다. 그러면서 “총명하기도 어렵지만 어리석게 보이는 것도 어렵다. 총명함을 잃지 않은 채 어리석게 보이기는 더욱 어렵다.(難得糊塗)”라고 충고했다. 조금 손해를 감수하고 어리숙한 듯이 처신하라는 것이다.

‘난득호도(難得糊塗)’는 오늘날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선호하는 가훈이 되었다. ‘호도(糊塗)’는 어떤 사실을 얼버무려 넘김으로써 자신의 속내를 감추는 것을 이른다.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이며 살기는 힘들다는 뜻이다. 자기를 낮추고 남에게 모자란 듯 보이는 것이 결국에는 현명한 처세가 된다는 이 말은, 오늘날 중국인들 사이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격언이 되었다.

요즘 세상은 어떤가! 다들 저 잘난 맛에 산다. 한발 물러서면 마치 죽는 것으로 생각한다. 손해 보는 것은 죽기보다 더 싫다. 기를 써서라도 지켜야 한다. 패가망신을 하는 지경에 이르러서도 손에 한 번 움켜쥔 것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더 갖고 다 가지려다가 결국에는 한꺼번에 모두 잃는다. 요즘 뉴스에서 자주 접하는 게 이런 사건들이다.
이럴 때일수록 ‘난득호도’의 자세가 필요하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때로는 침묵하는 지혜를 가진 예의 바른 사람, 이런 사람이야말로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총명한 사람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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