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피천과 뱃머리

기사입력 2020.11.25 15:15  |  조회수 2,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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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피천은 길이가 62여 킬로미터나 되는 한국의 10대 강이다. 『왕이 피난 온 강』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로 3가지 이야기가 전해온다.

첫 번째는 고대 삼한시대 삼척과 울진을 지배하던 실직국 무금왕이 『사로국(후일 신라)』 군사들에게 쫓겨 피난을 왔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기 전 망국의 한을 안고 피신했다는 이야기다. 마지막은 원나라 말기에 홍건적이 고려로 남침했을 때 공민왕이 피신했다는 설이다. 이래저래 심산유곡, 남한 최고 오지의 하나인 금강송면 왕피천 상류 일대는 왕들의 피난처요, 망국의 아픔을 지닌 전설의 강이기도 하다.
내가 태어난 섬마실(왕피천 하류 산포1리 도촌)에서는 왕피천을 『뱃머리』라 했다. 예전부터 배로 강을 건너게 했던 모양이다. 이곳 어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뱃사공이 있었다고 한다. 배를 이용하는 편의로 근남 일대의 사람들은 가호 당 여름에는 보리 1말, 가을에는 나락(벼) 1말을 승가세(乘家稅:배삯)로 냈다고 한다. 울진읍내로 중학교를 다닌 어르신들은 뱃사공이 늦게 나오는 바람에 때로는 지각을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럴 때면 교문에서 지각생을 단속하던 선배 학생규율부장이 그 정상을 참작하여 교실에 들여보내기도 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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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수산교 시멘트다리는 1951년경 공사가 시작되어 1958년에 준공되었다 한다. 그 공사는 8년간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아마 중간에 한국전쟁으로 늦어진 모양이다. 그 뒤 필자의 어릴 때 기억으로는 사공이 강을 건너 주는 생업을 그만두었는지, 어떤 일로 수산교가 끊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줄배라고 해서 『도라무깡(드럼통)』여러 개를 이어놓은 위에 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배가 있었다. 강가 양쪽에 걸친 밧줄을 배에 탄 사람들이 함께 당기면서 건넜다. 임시방편으로 강을 건너는 교통수단이었다.

어느 날 어머니를 따라 울진읍장으로 가려고 도라무깡 배를 탔는데, 배가 강가에 닿자마자 급히 뭍으로 뛰어내리다가 그만 물에 빠지고 말았다. 덕분에 읍내 장터까지 그 십여 리를, 축축한 검둥 고무신을 미끄러지듯 신고 가야 했다. 왕피천 물에 젖은 발걸음은 그래도 가벼웠다. 지금의 어물전 동편, 그 당시 우시장 부근에서 팔던 국밥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국밥 맛이란! 국밥 한 그릇은 물에 빠져 낭패스러웠던 기분을 보상해 준 것은 물론, 촌놈이 장에 온 기쁨을 흠뻑 느끼게 해주었다.

『뱃머리』말고도 왕피천은 『갱가나 갯가』, 『수산 갯가(갱가)』 등으로 불렸다. 하류인 노음장터, 오릉갈, 수산, 둔산, 섬마실 등지에 살던 사람들이 붙인 이름들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난했던 시절, 장날에는 하얀 옷들을 입은 어르신들이 장죽을 물고 담배 연기를 뻐금대며 도라무깡 배를 타고 왕피천을 건너는 모습은 푸른 물 밴, 한 폭 수채화였으리라. 왕피천 둘레에 살았던 사람들은 누구나 비슷한 한두 가지 추억쯤은 가지고 있을 터이다.

얼마 전 왕피천 하구를 오랜만에 산책했다. 둑을 따라 데크를 놓은 잘 정비된 산책길이다. 마침 비 온 뒤라 아침 햇살은 투명하다. 건너편 엑스포 공원 푸른 솔잎이 햇살에 반짝거린다. 또르르르, 또르르르 어디선가 들려오는 나무 건반을 두드리는 피아노 소리, 햇빛에 감겨 들려온다. 분명 딱따구리다. 망양정 쪽 산등성이 쪽이다.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자연의 목탁! 이제는 깊은 산에만 산다는 텃새, 딱따구리, 반갑고도 고마운 울림이다. 아니나 다를까 뻐꾸기도 한목소리로 봄이 깊어간다고 화답한다! 망양정 앞바다는 평화롭게 잔잔하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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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따구리, 뻐꾸기가 제목소리 울림으로 봄을 노래하자, 왕피천에서 놀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이맘때면 하구에는 물살을 가르고 상류로 오르는 은어와 황어가 찾아왔다. 어디 하늘의 용만 등천하는가! 그것들은 세 치도 안 되는 날개로도 심산유곡 왕피천 상류까지 긴 여정을 나섰다. 이맘때쯤 강바닥을 하이얀 은빛으로 수놓으며 수십 미터를 떼 지어 오르던 은어들은 마치 하늘의 은하수가 내려온 듯했다. 읍내 중학교로 십리 길을 걸어 다니던 나와 동무들은 수산다리를 건너다 마주친 물속 손님들을 곁눈질하면서 발길을 재촉했다. 그뿐인가, 바다와 맞닿은 하류에 숭어 떼가 검은 물결로 일렁이면. 초망꾼들은 매의 눈초리로 물고기 떼를 쫓아 그물을 놓았다. 지금도 숭어 초망이 한창이다. 하류의 강바닥에는 은어, 붕어, 눈챙이(송사리), 꺾지, 똥코, 꾸부리(동사리), 피라미, 실뱀장어, 칠성장어, 민물게, 새우들도 냇가 바닥에 슬슬 떼 지어 놀았다. 여름철 학교 갔다 오면 우리 꼬맹이들은 강변에 소를 풀어두고 해질녘까지 물놀이였다. 집에 갈 무렵 허둥지둥 소를 찾으면 고맙게도 집에 먼저와 꼴을 먹고 있는 것이다. 하여튼 그야말로 고기 반 물 반이던 시절이었다. 그 많던 고기들은 이제는 옛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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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피천 하류 풍경도 많이 변했다. 여름날 강물에 멱 감고 나오면 찬 기운에 몸이 떨리고 입술이 새파래졌다. 그때에는 따끈하게 달구어진 자갈밭에 모래사장에 몸을 누워 말리면 최고다. 자연찜질을 하는 셈이다. 하지만 그 추억 속 자갈과 하얀 모래와 야들한 잔디밭은 이제는 없다. 대신 강변에는 석축을 쌓아 정비했고, 산책길과 주차장이 들어섰다. 수산 쪽에는 엑스포공원 들어서 군민들의 훌륭한 쉼터가 되고 있다. 수산 냇가 건너 남쪽 망양정 가기 전 들판의 산포1리가 섬마실(도촌, 島村)이라고 한다. 섬마실이라는 땅 이름 유래는 성류굴 앞 왕피천이 한줄기는 현재의 수산교 방향으로 나아갔고, 다른 한줄기는 오릉갈 들판을 지나 망양정 산줄기 밑으로 흘렀다고 한다. 그러니 물줄기에 둘러싸인 섬모양의 형국이었다. 세월이 흘러 망양정으로 가는 하류에는 언제부터인가 퇴적물이 쌓여 조그만 섬 하나가 생겼다. 나는 그 섬을 『또섬』이라고 명명했다. 또섬이란 새로운 섬이 또 하나 생겼다는 뜻이다. 『또섬』에는 자연스레 자라난 수양버들과 미루나무들이 바람에 연초록빛을 날리고 있다. 현재 하류의 모습은 변신 중이다. 아직은 둘레가 정비되지 않아 좀 스산한 풍경이다. 2차선 다리 옆으로 국도 4차선 수산대교가 들어섰다. 지금은 2022년 개통을 앞둔 동해선 철교가 준공을 앞두고 공사가 한창이다. 3개의 다리가 생기는 셈이다. 어디 그뿐인가. 바다와 연접한 하류에는 『가공삭도』(架空索道, 일명 케이블카)를 공중에 매달아 망양정 일대에서 하류를 가로질러 엑스포공원까지 운행할 예정이다. 가공삭도에 대해선 설왕설래 여론이 있었지만, 어쨌든 잘 운행하여 관광울진에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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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겐 강은 젖줄, 왕피천은 울진에게는 어머니의 젖줄과 같은 모천이다. 지금도 때맞춰서 상류를 따라 오르는 은어와 황어, 연어는 왕피천에서 태어나 먼바다에서 청춘을 보내고 홀연히 『모천』으로 돌아온다. 그들이 돌아오는 것은 단 하나의 목적, 모천에서 죽기 위해서다. 가을철 왕피천 하류에서는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하는 은어들의 숙명을 볼 수 있다. 난 곳에서 먼 곳으로, 다시 난 곳으로 돌아오는 생이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우리에게 엄숙하게 보여준다.
지극히 선한 것은 물과 같다.(上善若水)/물은 선하여 만물을 이롭게 하고 다투지 않으며(水善利萬物而不爭)/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기꺼이 머문다.(處中人之所惡)/그러므로 물은 도에 가깝다.(故幾於道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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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가 말하는 물의 정신. 상선약수, 나는 이 구절이 참 맘에 든다. 왕피천은 울진의 상선약수나 다름없다. 오늘도 왕피천 물줄기는 낮은 곳으로, 더욱 낮은 곳으로, 굽이굽이 흘러 때로는 여울져 조잘대고, 때로는 기뻐서 출렁이고, 때로는 슬퍼서 눈물 흘리며, 망망대해 소금바다로 향하는 왕피천! 심산유곡을 흐르는 동안 엄숙함으로 푸르렀고, 목마른 대지의 생명수가 되었다. 오랜 세월의 풍파를 가슴에 담은 울진의 모천이자 생태경관의 보고요, 명경지수나 다름없는 왕피천, 영원히 유장하라!

 014.jpg  [약력] 김진문/시인, 1955년 울진 근남 산포(섬마실)출생. 2002년 월간 <어린이문학> 전국 동시 공모 당선, 제3회 어린이문학상 수상. 2008년 문화관광부 우수작품 <동시> 부문 선정, 창작기금 받음. 전 울진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함. 현재 한국작가회의, 경북아동문학회, 대구경북작가회의, 울진향토사연구회, 울진문화원 회원으로 활동, 주로 동시, 시, 산문 등을 쓰고 있으며, 아이들의 시집과 동인지 다수, 통일 그림책 <개구리>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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