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의 보물, 울진 황금송이

기사입력 2020.11.26 17:40  |  조회수 2,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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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송이(애기송이)가 막 솟아오르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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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이산으로 가는 임도, 이후부터는 도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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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초보자가 송이로 오인할 수 있는 독버섯 /
(오른쪽) 독버섯이 활짝 갓을 피웠다. 갈퍼데기(송이)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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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이산의 경계 또는 입산금지를
알리는 비닐(끈) 금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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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불법 송이 채취 금지 현수막 /
(오른쪽) 송이 불법 채취 감시카메라 작동
중이라는 낡은 연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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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촌주민들이 말하는 송이꽃(식물명은 애기며느리밥풀꽃), 이 꽃이 많이 피면 송이풍년이 든다고 한다.

금강송 아래 송이꽃을 보다

새벽 어스름에 길을 나섰다. 높은 산에 등산 가는 것도 아니고, 간편한 복장에 식수, 과일 정도 챙겼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우리 몇은 후배 따라 송이산에 간다. 마침 가을볕도 좋고 코로나로 갇혀 살다가 송이산에 송이막사를 치러 간다기에 멋모르고 따라나선 길이다.

후배의 지프차로 임도를 따라 오른다. 달리는 차창에 서늘한 새벽공기가 빰을 스쳐 지나간다. 어느 정도 달리다 차를 세웠다. 임도엔 낯선 차 한대가 벌써 주차해 있었다. 송이막사를 치러온 어느 송이꾼의 차란다. 지금부터는 목적지까지 도보로 등산 행이다.

숨을 몰아쉬며 가파른 산길을 오른다. 산길에는 지난번 태풍이 흔들고 지나간 흔적이 남아있다. 군데군데마다 소나무들의 잔가지가 생잎 그대로 떨어져 있다. 몇 나무가 부러지고 넘어졌지만 대체로 소나무 숲들은 정갈하다. 생기를 머금고 우리의 산행을 맞아 주는 듯했다. 능선에 오르니 새벽하늘과 산들의 경계가 분명해진다. 능선 골짜기들이 물결치듯이 진한 녹색 파도로 너울거린다. 겨울 산행에 보이는 누런 크레파스로 죽 그은 듯한 임산도로도 녹색으로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듯하다.

먼동이 터오자 햇살들이 소나무 숲 사이로 스며든다. 둘레의 금강송들은 아침햇살을 받아 완연한 자태를 드러냈다. 솔잎마다 솔향이 묻어나는 듯하다. 상큼한 소나무 잎사귀들이 빗살무늬가 되어 더욱 곱다. 기후가 아열대화되어 간다지만 아직 울진의 금강송 유명세는 의연하게 살아 그 기백이 넘치고 있다. 깨끗한 공기가 오랜만에 가슴 깊숙이 차오른다. 먼데 산들은 거인처럼 온화한 얼굴을 드러냈다.

십수 년째 이맘때쯤이면 송이를 따기 위해 새벽 산을 오르는 후배는 조금 쉬었다 가자 한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 숨을 고르며 둘레를 살펴보니 몇 발자국 떨어진 솔가지 밑에 뭔가 히끄무레한 것이 보인다. 하얗고 동글한 버섯이다. “어, 저거 송이 아닌가?” 했더니 그 후배는 아니란다. 잡버섯이란다. 전문가다운 눈이다.

우리는 잠깐 땀을 식힌 후 발걸음을 재촉한다. 목적지는 산 정상을 올라가서 북동쪽 방향으로 약간 내려가는 8부 능선이다. 산길을 따라 자기구역임을 비닐 끈으로 경계선을 길게 쳐 놓았다. 송이 채취금지, 입산 금지, CCTV카메라 작동을 알리는 빛바랜 현수막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이 깊은 산중에 감시카메라까지 설치한 것을 보면 송이가 단순한 버섯(생물)이 아니라 귀한 대접을 받는 가을 산의 보물, 황금송이나 다름없다 하겠다. 허가 없이 채취하다가는 형사처벌 또는 민사소송까지 당할 수 있으니 불법송이 채취는 절대 금물이다.

우리는  후배를 뒤따라 조심조심 산을 오른다. 산길 드문드문 연분홍 꽃들이 무더기로 피어있다. 후배 왈, 『송이꽃입니다. 송이꽃? 버섯에도 꽃이 있나?』 하고 묻자, 후배가 답하기를『그건 아니고 이 꽃들이 많이 피면 그해 송이 작황이 좋다 하네요.』산촌주민들이 말하는 이 송이꽃은 초가을 소나무 그늘에서 듬성듬성 무더기로, 진한 분홍꽃으로 피는 애기며느리밥풀꽃(현삼과)을 말한다. 이 꽃이 피는 모든 소나무 그늘에 송이버섯이 다 나는 것은 아니나, 송이꾼들에겐 반가운 행운을 예고하는 꽃이란다. 금강송 아래 무더기로 핀 송이꽃을 보았으니 오늘 송이는 떼놓은 당상이 아니겠는가.

드디어 해마다 쳤던 송이막 자리에 왔다. 골짜기가 튀어나와 동서로, 또 북쪽으로 트여 있고, 붉은 금강송이 있는 평탄지였다. 후배는 익숙한 솜씨로 텐트를 폈다. 예전에는 비닐막과 스티로폼 등으로 송이막사를 만들었단다. 지금은 등산용 텐트로 대신한다. 송이막을 친 다음, 산신령에게 송이 풍년과 안전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냈다. 심산유곡에서 고사를 지내는 일은 나에게는 독특한 문화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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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이막사(텐트)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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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이산 풍경(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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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송이풍년을 기원하는 고사 /
(오른쪽) 송이 막사(텐트) 둘레 정리 정돈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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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송이산 금강송 숲과 맑은 하늘 /
(오른쪽) 후배 송이산에서 바라본 서북쪽 대흥리~ 삼근 간 위에서부터
임도, 송전탑, 36번 국도 일대 모두가 송이 산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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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이 채취 모습(필자)

송이, 까탈스러운 생육 조건

송이(松耳)는 소나무에서 자라는 버섯이다. 한자어 그대로 풀이하면 소나무 귀라는 뜻이다. 소나무와 공생하니, 마치 소나무 뿌리에서 나온 귀 모양 같아서 그렇게 붙이지 않았나 생각된다. 대부분의 버섯류들은 죽은 나무에서 자란다. 표고버섯이나 느타리와 달리 송이는 오로지 살아 있는 소나무에서 자란다. 그러다 보니 송이 특유의 향이 소나무에서 왔다고 오해하는 이들이 많다. 송이 향은 소나무와 상관없는 송이균 특유의 향이라고 한다.

송이는 인공재배가 안 돼 직접 채취해 왔다. 그런데 최근 국내 연구자들이 송이 감염묘(感染苗)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인공 송이 재배에 성공했다고 하나, 현재의 송이 연구는 인공재배 측면보다 송이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조성 연구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먼저 감염묘 방식이란 송이가 자라는 산의 땅속 송이균 앞에 어린 소나무를 심는다. 시간이 지나면 땅속의 송이균이 자라나 심어놓은 소나무 뿌리를 감염시킨다. 이렇게 감염된 소나무를 송이가 나지 않는 소나무 숲에 옮겨 심는다. 감염묘를 만드는 데 2년, 감염묘를 이식한 뒤 버섯이 나오는 데까지 6년에서 13년이 걸리니 최소 8년, 길게는 15년 걸리는 셈이다. 이처럼 송이 감염묘 방식으로 몇 개의 송이를 땄지만 아직 실용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고 한다. 하지만 연구진들은 시간은 걸려도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보고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바다의 양식 어류처럼 송이 재배 기술 개발이 성공하여 풍성한 송이 수확을 기대해 본다. 

후배가 말하는 울진 송이의 생육환경 조건은 첫째로 토양수분과 기온이다. 송이는 온도와 습도에 아주 민감하여 자실체(송이)가 형성되는 시기에 토양수분과 온도가 맞아야 한다.

송이가 자라 땅으로 나오기까지 흠뻑 젖은 상태에서 땅속 평균 온도가 약 2주일 동안에는 최저온도가 15도 이상이어야 한다. 따라서 9월의 강수일수가 많고 최저 기온이 높을수록 송이가 나는데 유리하다는 것, 또 땅 온도(지온)가 14도 이하로 떨어지면 송이 성장이 멈추기 때문에 너무 추워도 안 된다. 송이가 발생하는 온도는 14~24도라고 하는데, 최적 온도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몇 도가 좋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

건강한 소나무 군락지와 함께 산등성이의 낙엽이 많이 쌓이지 않는 화강암 흙이 푸석푸석한(마사토) 상태로 형성된 곳에 송이가 잘 솟아오른다. 유기물이 적은 척박한 땅이라야 좋다는 것, 솔잎이 너무 많이 쌓여도 좋지 않다고 한다. 솔잎 등 낙엽이 많으면 송이 균사와 경쟁하는 토양 미생물이 많아져 생육 조건이 나빠지기 때문이다.

후배의 말에 따르면 올해는 두 번의 태풍으로 비는 충분했지만 지온은 불안정해 풍년 여부를 예상하기는 힘들다고 한다.

송이 생육의 두 번째 조건은 뭐니 뭐니 해도 소나무가 좋아야 한다. 송이가 잘 자라는 소나무의 조건은 포자 감염 여부, 연령, 나무의 건강이다. 송이는 소나무와 공생하면서 성장한다. 다시 말해서 송이 씨라 할 수 있는 포자가 감염된 소나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송이는 약 30년에서 40년 사이의 소나무에서 잘 자란다. 여기에 더해 송이는 건강한 소나무와 함께 산다. 소나무에 작고 가는 뿌리가 많이 나면 건강한 것으로 치는데, 이런 작고 가는 뿌리는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보다는 건강하고 젊은 소나무에서 더 많이 난다.

울진금강송이의 지속적 다수확증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송이산 관리가 잘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송이균 생장을 방해하는 소나무 이외의 잡목과 부식층 같은 유기물 제거, 솔잎혹파리 예방 등 다른 곰팡이나 세균들이 번성하지 않게 건강한 소나무림 보존을 위한 환경개선이 뒤따라야 한다고 했다.

땅 위로 나온 송이는 대개 4~5일 정도 지나면 갓이 벌어진다. 갓이 벌어진 송이를 울진에서는 갈퍼데기라고 한다. 먹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으나, 상품으로선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갈퍼데기가 되기 전에 채취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래서 애기송이 일 때 둥글고 주먹만 한 우량송이를 채취하기 위해 종이컵을 씌우기도 한다. 송이 채취 시기는 가을철 백로를 기준으로 10월 하순까지라고 한다.

송이가 나는 숲속을 헤쳐 보면 백색의 솜털 또는 실오라기처럼 보이는 것이 있는데 이를 균사체(菌絲體:mycelia)라고 한다. 이런 균사체가 가을철에 일시에 자라 올라와 자실체(子實體:fruiting body)를 형성하게 된다. 자실체란 『포자를 생산하여 퍼뜨리는 구조물(생식기관)』을 말한다. 우리가 먹는 식용 버섯이란 이런 자실체만을 의미한다. 하지만 백억 개가 넘는 송이 포자 가운데 하나 정도가 실제 송이로 자란다고 한다. 게다가 오염되지 않은 적절한 습도의 땅과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 등 적당한 환경이 조성되어야만 자라는 송이야말로 참 까탈스러운 생물임에 틀림없다.

산촌 사람들의 속설로 머루와 다래와 같은 산열매가 풍성하게 달리거나 바다에 가을 오징어가 많이 잡히면 송이도 풍년이라고 한다. 올해는 산열매도 풍성하여 기대할만하다고 하니 송이 풍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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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이 등급

문헌상 송이의 최초 기록은 금지(金芝)로 표현되었다.

송이 식용은 언제부터일까? 과거 기록을 살펴보면 우리 겨레는 오래전부터 송이를 즐겨 먹어왔다. 지금도 송이는 다른 특산물에 비해 가격이 비싸 송이 선물이 인기가 높지만, 예전에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여러 문헌에 송이(松栮, 松耳), 송지(松芝), 송심(松蕈), 송균(松菌), 송화심(松花蕈) 등의 이름으로 등장하는 송이는 독특한 맛과 향으로 버섯 중 으뜸으로 여겨져 예로부터 귀한 대접을 받아 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버섯 관련 기록은 『삼국사기』에 나온다. 『신라 33대 성덕왕 3년(서기 704년), 봄 정월, 웅천주에서 금지(金芝)를 진상하였다.』 여기에 등장하는 금지(金芝)가 상서로운 조짐의 풀을 말하는데 송이를 두고 이름한 것 아닐까? 송이는 가을에 나는데, 시기가 봄으로 되어 있어 의문이 들기는 하지마는 혹 송이를 갈무리했다가 봄에 진상했을 했을 수도 있겠다. 얼마나 향과 맛이 독특하기에 금지라고까지 했을까. 송이는 조선시대에도 진상품이었고, 중국 사신의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있었다고 기록되었다. 세종 원년(1419)에 명나라 황제에게 송이를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송이가 중국에까지 그 유명세를 떨친 것이다.

1613년에 발간된 허준(許浚)의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송이를 약재로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성분이 고르고 맛이 달다. 독이 없고 소나무 냄새가 많이 나 향기롭고 뛰어나다. 산중에 오래된 소나무 밑에서 그 기운(松氣)에 의해 생기는 것으로 버섯(木茸) 중에서 으뜸이다.』기록하고 있고, 시인 묵객들의 송이 예찬도 드물지 않게 발견된다.

고려의 문신 이인로(1152-1220)의 『파한집』에는 『마침 송지(松芝)를 바친 사람이 있어, 소나무와 함께하고 복령의 향기를 가졌다』라는 글이 나온다. 또 조선 세종 때 오세신동(五歲神童)으로 촉망받았던 매월당 김시습도 송이에 관한 이야기를 남겼다.

『고운 몸은 아직도 송화 향기 띠고 있네/희고 짜게 볶아내니 빛과 맛도 아름다워/먹자마자 이빨이 시원한 것 깨닫겠네/말려서 다래끼에 담갔다가/가을되면 노구솥에 푹푹 쪄서 맛보리다.』
 
김시습은 수양대군이 단종을 축출하고 임금에 오르자 입신양명의 뜻을 접고 한때 주유천하를 했는데, 울진 동해안과 성류굴 등을 유람한 적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선사 장씨(울진 장씨)로 알려져 있다. 어쩌면 김시습이 외가 동네인 울진송이 명성을 알았거나, 울진송이 맛을 본 것은 아닐까? 조선시대 지리백과사전격인『동국여지승람』에도, 울진은 예로부터 송이가 많이 나는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

울진군은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송이에 비해 금강송이는 살이 두껍고 단단해 아삭한 식감과 특유의 솔향이 진하다. 또 오랫동안 신선도가 유지되어 맛이 변하지 않는 등 우수한 품질을 자랑하고 있다. 울진군에서는 해마다 9월말이나 10월초『울진금강송송이 축제』를 개최하여 우리나라 토종 소나무인 금강송 아래서 자란 『울진금강송송이』의 우수성을 널리 알려왔다. 올해는 코로나로 송이 축제가 취소되었으나 그 명성은 여전하다. 과거 외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던 울진송이축제를 내년에는 다시 한번 개최할 수 있기를 꼭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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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이가 솟아 오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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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이버섯과 필자,
능이버섯 색깔은 표범 털 무늬색 같다.

이까 개락, 송이 개락

그날, 후배의 송이산에서 우리 같은 초보자는 송이를 옆에 두고도, 밟고 지나가도 그게 송이인지 잘 몰랐다. 산속을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지만 허사다. 마침 후배가 산 아래쪽에서 우리를 부른다. 그곳엔 솔잎을 덮어쓴 송이가 살포시 비쳤다. 솔잎을 조심히 헤쳤다. 애기주먹만한 둥근 송이가 나타났다. 후배가 귀띔한다.『막대기를 송이 밑에 대고 채취해보십쇼.』드디어 쌍둥이 형제 같은 송이를 땄다. 귀엽고, 통통하다. 향내가 코를 찌른다. 산속에서 보물을 횡재한 느낌이랄까. 함께 간 사람들과 기념으로 ‘인증샷’을 찍었다. 송이 채취 뒤에는 방금 따낸 곳을 포자 보호를 위해 원상태로 잘 덮어 주어야 한다.

사실 송이는 예전에도 많이 났으나 별 대접을 받지 못했다. 어른들의 이야기로는 어쩌다 산골에 갔다가 송이를 발견해도 그냥 먹을 정도 가져 오곤 했다고 한다. 그러다 갑자기 70년대 초부터 일본으로 비싼 가격에 수출되면서 금(金)송이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울진에는 송이, 능이, 표고도 나지만 송이 생산량이 가장 많다. 송이는 단 1개월 만에 산촌주민들에게 높은 소득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가을철에는 외지로 갔던 사람들도 송이철에는 고향을 찾곤 한다나. 실로 가을의 전령사요, 가을산의 보물, 울진의 진객인 금강송이다.

예전에 가을철 울진의 죽변항과 후포항 등 각 어촌에는 오징어가 풍어를 이루었다. 그야말로 바다에 나갔던 어선마다 만선이 되어 깃발을 꽂고 들어왔다. 당시 유행어로『이까 개락』이란 말이 있었다. 이것은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6, 70년대 농촌 우체국에서 타향 사는 친지들에게 보낸 전보 문자로, 오징어가 풍어이니 빨리 울진에 와서 배를 타라는 말이었다.『이까』는『오징어』의 일본말이고,『개락』은 아주 많다(풍어, 풍년)는 것을 의미하는『개락났다』에서 나온 표현이다.

그때는 죽변·후포항에는 지나가던 개도 지폐(종이돈)를 물고 다닌다는 우스개가 있었으니, 그야말로 오징어가 많아 잡혀 경기가 좋은 시절이었다. 요즘 고향 떠난 사람들에게 “송이 개락”하면 알아들을까? 어쨌든 한 달간 소득으로는 다른 어느 것보다 산촌주민들에게는 짭짤한 수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송이밭은 부자간에도 알려주지 않는 비밀장소였다.

송이철이면 산촌주민들과 송이꾼(송이 입찰자)들은 꼭두새벽에 산으로 향한다. 아예 송이철 한 달간 산막에서 사는 이들도 있다. 땅 위로 솟은 송이는 하루이틀새 갓이 퍼져 상품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그 찰나를 놓치지 않기 위함이다. 송이 외에도 채취 시기에는 능이버섯, 먹이버섯, 노루궁뎅이버섯, 싸리버섯 등도 딴다. 그중에서 능이는 송이 못지않게 값도 괜찮다고 한다. 맛과 향도 한약같이 독특하다.

하지만 국내 최고의 명품소나무인 『황장목(일명 금강송) 군락』 등지에서 나는 울진송이는 그 맛과 향이 독특하다. 울진은 짠 소금기를 품은 해풍이 곧바로 산속으로 진입하기 때문에 소나무에서 나는 송이가 독특한 향과 맛을 지니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또 하나, 울진은 질 좋은 토종 소나무들이 군락을 형성하여 자라는 국내 최대『금강소나무 숲』이 있다.

1600헥타아르에 걸쳐 수령이 200~300년 된 소나무만 해도 8만여 그루가 넘고, 500년 이상 된 소나무도 다섯 그루나 있다. 금강송은 다른 소나무에 비해 수형이 독특하고 솔향 또한 짙고 그윽하다.

어떤 이는 버섯 순위를 일컬어 『1능이, 2표고, 3송이』라고도 한다. 누가 언제 창작했는지 모르지만, 자연산 버섯에다 등급을 매기는 것은 좀 그렇다. 저마다 고유의 맛과 향이 있는데 서열을 매길 수 있을까? 그래도 혹 서열을 매긴다면 나는 울진의 금강송림 자연에서 자라나 독특한 향과 맛을 지닌 『‘울진황금송이』를 최고 명품으로 치고 싶다.

이날 후배는 점심 무렵, 송이와 능이를 합쳐 배낭 가득히 채워왔다. 송이 산 면적이 꽤나 되어 하루에 다 돌아보지 못하고 며칠씩 나누어 구역마다 딴다고 한다. 후배가 딴 송이와 능이는 모두 2등급 이상에 가까운 것이어서 하루 일당은 톡톡하다고 했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꼭두새벽부터 산속을 헤매다 돌아온 그의 온몸은 땀투성이다. 올해도 그에게 송이 풍년들기를 기원하면서 이제 그가 따온 송이와 능이로 우리가 호사를 누릴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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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이라면 끓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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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산유곡의 호사 (송이불고기와 송이라면)

“송이라면 맛 끝내줍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송이막사에 간단한 취사도구가 있어 오늘은 갓 딴 송이와 능이를 식재로 하여 송이불고기와 송이라면을 해 먹기로 했다.

밑둥의 흙과 낙엽 같은 이물질들을 없애고 송이를 손으로 잘게 찢어 보글보글 끓는 라면에 넣었다. 송이요리에는 송이백숙, 송이불고기, 송이애호박국, 송이밥 등이 있으나 산속에서 먹는 송이라면은 시속말로 끝내주었다. 거기에다 금강송 우거진 산중에서 쐬주 곁들여 먹는 그 맛은 누가 알랴! 그야말로 셋이 먹다 셋이 죽어도 모를 맛이다.

송이는 성인병(동맥경화, 심장병, 당뇨병, 고지혈증)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항암효과도 밝혀져 건강식품으로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예전부터 일본인들이 송이를 고가에 수입해 갔다. 송이가 원폭 피해자들의 치료물질을 추출하는 데 쓰였다는 설도 있었다.

과거 울진 송이축제 때 일본인들이 왔을 때 울진사람들이 송이 먹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후문이 있다. 일본에서는 송이를 성냥개비처럼 아주 가늘게 찢어 먼저 코로 향을 맡고서, 맛을 음미하면서 조금씩 나누어 먹는다고 한다. 이렇게 귀한 송이를 라면에 넣어 먹고, 흔한 나물 먹듯 즐겼으니 일본인들이 보았으면 입이 딱 벌어질 듯하다.

14세기 고려시대 목은 이색은 『동국이상국집』에서 『예전 사람들은 신선이 되겠다며 불로초를 찾아다녔는데, 신선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은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송이버섯을 먹는 것』이라는 시를 남겨 송이를 예찬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더니, 우리는 오늘 후배 따라 송이산에 와서 고려 문신 이색이 예찬한 것처럼 신선 같은 호사를 누렸다. 『낙즉안(樂則安)』이라고 즐거우면 근심, 걱정 없이 편안하다 했던가. 둘레의 산속 풍광 또한 그윽하다. 하늘은 높아지고 공기는 상쾌하다. 코로나 따위는 얼씬도 못하는 금강송 숲이다. 이런 『낙즉안』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다음은 신선이 누릴 식도락의 와중에 송이 막사에서 쓴 졸시이다.

행여 당신에게 향하는 그리움/이내 애틋함이 되어서나 사라질까요./오늘 품어 두었던/ 그 천년 향을 당신에게/내가 그대에게 스며들 듯이/ 그대도 나에게 스며서 사라지듯이/ 삶이란/ 서로의 향기를 주고받는 것/ 그대여!
(『송이』, 2020. 10. 2)

가을 산의 전령사요, 울진의 진객(珍客)! 산촌주민들에게는 보물이자 불로초인 울진황금송이여, 해촌에 『이까 개락』이 되듯이 산촌에 『송이 개락』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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