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시] 불영사

기사입력 2023.02.17 18:09  |  조회수 263,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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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 돌 비탈길 끊어졌다 이어지고

애써 기어오르니 눈앞이 환해지는데

탑과 사당이 솟아올라 단청도 아름답고

산마루 빼어나고 옥 같은 봉우리 치솟았네

학은 돌아가고 화표주엔 구름 흔적 없는데

용이 푸른 바다 들어가니 물소리 울리네

달리 봉래산 찾아갈 필요 없으니

이곳이 벼슬자리 버리고 쉴만한 곳이네

조덕린(趙德鄰, 1658-1737)

 

불영사는 천년고찰이다. 화엄의 공간이다. 신라 의상대사가 당나라에 불법 공부를 가기 전 창건한 절이다. 그 둘레는 빼어난 풍광으로 이름 높다. 그렇기에 예로부터 지나가는 시인 묵객들이 모두 시 한 수씩 읊었다. 불영사가 그만큼 문학적 소재로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조덕린(趙德鄰)은 조선 후기 문신이다. 이 시는 그의 문집 관동록에 있다. 그는 조선 영조 1년(1725) 당쟁의 폐해를 상소하다가 유배까지 갔던 인물이다. 이후 서원철폐를 주장하다가 노론의 탄핵을 받아 또다시 제주도로 유배 가다가 강진에서 죽었다.

이 시는 그가 관동을 여행 중 불영사를 둘러보고 그 풍광에 취해 읊은 7언율시이다.

(시 원문인 한문은 생략했다)


그가 걸어왔을 돌 비탈길도 지금은 없다. 이제는 일주문으로 승용차가 드나드는 평탄한 길이다. 여기서 봉래산은 신선이 산다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산이다. 아름다운 단청, 옥 같은 봉우리, 학, 높게 솟은 기둥 같은 바위 절벽(화표주) 등은 고고한 선비의 기개를 표상하고 있다. 한때 뜻을 펴고자 세상에 출현했던 용은 이제 미련을 버리고, 푸른 바다로 돌아가려 한다. 바로 조덕린 자신을 말하는 것이다.

조덕린은 불영사가 곧 봉래산이요, 자기가 거처할 안식처요, 지상낙원이라는 것을 읊고 있다. 그는 어쩌면 당쟁과 유배에서 지친 몸을 심산유곡 불영사와 같은 곳에서 은거하고 싶은 심정이었을지도 모른다.


늦가을 어느 날 불영사를 찾았다. 마침 경내에는 스님과 신도들이 김장으로 분주하다. 가을 햇살이 불영사 곳곳에 스미어 아늑하고 따뜻하다.

물방울 하나에도 시방세계가 있고, 티끌 하나에도 온 우주가 들어 있다는 말, 화엄의 공간 불영사다. 흐르는 물소리, 바삭거리는 낙엽, 구르는 돌도 모두가 부처님 경전이다.

아직도 사바세계에 집착하는 미련한 나 자신이여, 아상(我相)이여! 

지나가던 구름이 허허 웃으며 흩어진다. 

  김진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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