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과 적극행정으로 지역발전 매진… “명예 퇴임하는 김재준 울진군 부군수”

"정부미에서 일반미로 돌아가는 기분이 어떠니껴?"... "자연인으로 돌아가니 아이고, 좋지요.짐을 벗은 듯 홀가분합니다."
기사입력 2023.02.17 18:12  |  조회수 79,34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004.jpg


김재준 울진군 부군수를 지난 11월 28일 부군수실에서 만났다. 

『아이고, 오랜만에 반갑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친절하게 인사하는 모양새가 몸에 밴 듯 그의 얼굴은 밝고, 차분했다. 그는 정년을 1년 앞두고 명예 퇴임한다.

『정부미에서 일반미로 돌아가는 기분이 어떠니껴?』

우스개를 했더니 곧바로 그의 대답이 돌아왔다.

『자연인으로 돌아가니 아이고, 좋지요. 짐을 벗은 듯 홀가분합니다.』 

그는 환하게 웃었다.

여기서『정부미』란 그간 공직생활로 먹던 밥을 말하고,『일반미』란 이제 갓끈 떨어지고, 일반『자연인』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는 행정 공무원으로 34년을 몸담았던 정든 공직생활을 올 12월 31일 자로 마감한다. 마지막 공직 인생을 고향인 울진군에서 부군수로 재직했다. 


공직 초임을 89년 평해읍에서 시작했다.

김 부군수는 공직 초임을 평해읍에서 2년 근무하다 사표 쓰고, 다른 공부를 더 하려고 울릉도까지 갔지만 실패하고, 다시 의성군 2년, 1995년에 경북도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마지막 울진 부군수로 부임하기 전까지 경북도 산림환경연구원장으로 재직했다. 그리고 공직 중간에 서울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와 『정부대전청사』에 파견되어 잠시 근무했다. 서울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근무 시 칠곡 출신 신현확 전 국무총리가 이사장이었고, 손원호씨가 사무처장이었는데 자택으로 불러 정말 자상하게 대해 주신 기억이 생생하다면서 같은 경북 출신 고향 까마귀들을 챙기는 것을 보고 감명받았단다. 이후 그는 줄곧 경북도청에서 근무했다. 90년대 후반에는 도청공무원직장협의회, 조직부장 활동하면서 공직 노동운동에 대한 시야를 넓히기도 했다. 

  

고향에 대한 남다른 애정

마주 앉자마자 필자가 부군수로 금의환향하셨는데, 고향 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대뜸 묻자 그의 대답은 이렇다.

『주변에선 모두 고향에 왜 왔느냐고 했습니다. 기쁨보다는 염려가 많았고 처신하기 곤란할 때도 많았지만 나름대로 절제하고 겸손하게 처신했다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막걸리 한 잔 편하게 못 했지만. 도내 부군수님들 공통되게 하시는 말씀이‘부군수 자리는 3D업종’이라고 합니다. 재난 업무가 지방행정의 대부분 차지하니 그럴 수밖에요. 다른 시군으로 가도록 되었는데…. 이철우 도지사님께서 산불 끄라고 울진군으로 보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고향을 그리는 수구초심이랄까요(웃음)』

그는 객지에 있을 때 술자리에서조차 울진의 지명을 붙여 삼행시로 건배사를 했다니 고향 애정이 각별한 것 같다. 그의 말이다.

『한평생 객지에 있으면서 하루도 고향을 잊어본 적 없었습니다. 나에게 고향은 무릉도원이었습니다. 지금은 원자력의 도시가 됐지만…. (웃음) 30년 넘게 객지 생활하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남달랐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울진지역의 응봉산과 덕구온천, 울진금강소나무 십이령 숲길, 남수산, 천축산, 남사고 등을 여러 매체와 지면에 소개하기도 했죠.』

그의 고향 사랑이 진하게 묻어나는 대목이다.


그는 죽변 출신 순 촌놈이다?

김 부군수는 죽변 순 촌놈(?) 출신이다. 죽변 후정리 방축골에서 태어나고 자라 죽변초등학교와 죽변중학교, 울진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에게 어린 시절인 6∼70년 죽변은 꽁치가 많이 잡혀 통조림공장에 일자리가 넘쳤고 동해안 오징어 어업전진기지로서 감포, 주문진, 구룡포, 울릉도 배들까지 몰려왔다고 한다. 개들도 오징어 한 마리씩 물고 다닐 정도, 당시 죽변쪽 사람들과 내륙 쪽인 화성, 사계, 소곡 등지의 산골사람들과도 오징어와 쌀, 감, 곡식 등 농산물과 물물교환도 흔했다고 한다. 울릉도 배들은 용골(어선의 선수와 선미를 말함)이 길게 빠졌는데 좀 특이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사람은 나고 자란 곳을 닮는다고 했듯이 동해의 넓은 바다를 닮으려 애썼지만, 그땐 푸른 바다에 어우러진 해송과 명사십리가 절경이었는데 지금은 많이 사라져 안타깝단다. 죽변항과 후포항은 세계 어디에 내어놓아도 손색없는 바닷물이 맑고, 풍광이 아름다운 미항美港이란다. 

 

005.jpg

1995년경 경북도청 동아리활동 봉사시 기타 치는 젊은 시절의 김재준 부군수(가운데)

 

주경야독의 학구파 공직자

그가 공직에 들어온 계기는 울진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로 올라가 서비스업계 종사했는데 안타깝게 건강을 해쳐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는 고향에 내려와 그때 동기들 총지배인(?)이 되었다며 웃었다. 대학 시절에는 학비를 벌기 위해 공사장, 벽돌공장, 술집 종업원으로 인생 밑바닥 경험을 다 했다고 한다.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심정으로 공무원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5급(현재 9급)으로 공직에 들어가서 부군수로 오르기까지 어찌 보면 오로지 성실과 노력으로 일관한 입지전적(?)의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는 어릴 때 한학을 공부하기 위해 집에서 15리 길을 봉평리 박실서당(기와집이었는데 지금은 변했다.)까지 걸어 다녔다. 박실서당에서 명심보감, 사서삼경을 비롯한 기서(奇書) 등을 많이 배웠다. 그에게 지금 생각하면 학교보다 어릴 적 서당교육이 더 강렬하게 남아 있다고 한다. 필자는 그가 고전 한문에도 실력파인 걸로 알고 있다. 그의 학구열은 공직에 나아가서도 주경야독으로 경상국립대에서 농학을, 대구한의대에서 철학을 전공하였고, 대구대 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까지 공부한 학구파였다. 


바쁜 공직생활 중에도 문인으로서 집필활동 계속해

김 부군수가 문인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는 한국문단에 등단한 문인이다. 한국문인협회 회원이고, 울진문학회 회원이기도 했다.

지금도 그는 독서를 하고 글을 꾸준히 쓰고 있다. 바쁜 공직생활에도 집필활동 계속해 한국유산기 시리즈 3권을 펴냈다.「그리운 산 나그네 길」,「흘러온 산 숨 쉬는 산」,「바람의 산 구름의 산」. 지금까지「월간 산」에 연재한 산행기를 모아 내년쯤 4권째 출간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문학동인 수레자국을 주도적으로 창립했다. 동인지「수레자국」20집, 공저「독도 7시 26분」을 발간했고 시집은「이발소 근처의 풍경」, 두 번째「다가서지 못한 시간들」은 지난주 상재 했습니다. 도서를 출간하는 일을‘상재(上梓)’라 한다. 이 말은 재질이 좋아 글을 새기는 판목으로 가래나무를 쓴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올릴‘上’, 가래나무‘梓’, 뜻 그대로 가래나무에 글을 올린다, 각자(刻字)한다 함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글 쓰는 일은 물론 그걸 나무에 새겨 종이에 찍어 책으로 내기까지 너무 힘이 든다는 말일 게다. 그래서 원고를 인쇄로 넘길 때는 물론 책을 내는 것을『상재』한다고 말한다. 

김 부군수는 퇴임 후에도 산행과 집필을 계속한다니 그의 일관된 성품과 집념을 엿볼 수 있다. 

 

그의 대표작인『한국유산기 1, 2, 3』은 그가 우리 산을 오르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의 체험과 산행 정보 등을 담아 재미있고, 담백하게 나타낸 역작이다. 일반 등산 안내서를 뛰어넘어 전설, 민담과 사람 사는 이야기 등 인문학과 식물학 접근이 함께 들어있다. 우리 산을 오르고자 하는 일반인들에게 산행 길잡이로서 손색이 없다.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006.jpg

 

007.jpg

 

008.jpg

 

009.jpg


가장 존경하는 분은 어머니와 이순신 장군

필자가 뜬금없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가장 먼저 부모님이란다. 고향에 연로하신 어머니가 아직 생존해 계신다. 모처럼 아들이 그래도 금의환향했으니 어머니가 가장 기뻐하셨고, 김 부군수 입장에서는 오랜 공직생활로 고향을 떠나 있었기에 어머니 곁에서 잠깐이라도 그간 못했던 효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행복하다고 한다. 그는 다음에 가장 존경하는 분으로 이순신 장군을 들었다. 그의 말이다.

『잘 아시겠지만, 역사적으로 세계 4대 해전은 살라미스·칼레·트라팔가르·한산도 해전 아닙니까? 이순신 장군이 없었으면 현재의 우리나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발트함대를 물리치고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 제독‘도고 헤이하치로’는 넬슨 제독보다 이순신 장군을 더 높이 평가했습니다. 장군은 공직자로서 멸사봉공을 실천하며 신상필벌을 엄격히 했고, 백성들을 아꼈습니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리더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우국충정의 자세는 늘 흠모의 대상이었습니다. 전쟁터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고 글을 썼습니다. 난중일기죠.』

필자는 더구나 그가 철학과 출신으로 이순신 장군에 대한 존경심이 공직 철학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공사 업무처리에 공평무사, 겸허한 마음가짐, 솔선수범, 꾸준한 학구열 등으로 지금껏 공직에서 늘 염두에 두었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은 4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공직자들이 되새겨야 할 유의미한 공직관이다. 


울진군은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가졌다.

그에게 행정 전문가로서 울진군 발전을 위한 한마디를 요청했다. 그는 먼저 산불 재난에 대처, 군민과 공무원 모두가 고생했고, 그 덕분에 잘 극복하고 있어서 감사함을 전했다.

『울진군은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지역입니다. 다른 지역이 갖지 못하는 산과 계곡, 온천 등 우수한 산림환경과 자원, 긴 해안선이 있는 바다가 있고, 특유의 울진 사람들의 끈질김과 부지런함이 있어서죠. 다만 접근성이 문제이지요. 또하나는 울진의 산림자원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 풍부합니다. 그 가운데 금강송은 울진이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특색있는 소나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립소나무연구센터가 울진에 들어와야 합니다.』

한편 그는 접근성 해결 과제로 고속도로, 동서 횡단 철도 개통이 최대 현안임을 강조했다.

『앞으로 공직자, 군민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더욱더 발전하는 울진군을 만들어주실 것이라 믿는다.』 면서 기대감을 나타냈다.


아내에게도 한 말씀하시죠? 했더니 지금도 그렇지만 아내 내조 덕에 공직생활을 무사히 마쳤고, 아이들까지 잘 키워주어 고맙기 그지없단다. 필자가『퇴직하면 삼식이 되지 말고, 가장 잘해주어야 할 사람이 식구시더』했더니『그런가요』해서 서로 웃었다. 

공직 인생에 후회가 없다는 김재준 부군수의 명예 퇴임을 축하하며, 그의 인생 2막에 행운이 늘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010.jpg

 

김재준 울진군 부군수 고별 일문일답

 

□ 아직 정년 1년 남았는데 명예 퇴임이 궁금하다.

부군수 거의 2년 했습니다. 행정의 신진대사를 위해 후배들을 위해 물러나는 게 명예로울 것입니다.


□ 공직을 고향에서 출발해 고향에서 마무리하는 심정은?

아쉬운 것도 많았지만 고향을 위해 헌신할 수 있었다는 것이 보람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공직 초기 시군에서 경북도로 전출, 무슨 계기가 있었나?

관선 군수 시절, 도내 모 시군에 있으면서 공직자들이 연루된 해묵은 불법행위 척결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경북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 평소 생활의 좌우명이나 공직 철학은?

거창한 좌우명보다는 러시아 시인 푸시킨의‘삶’이라는 시를 애송합니다. 공직 철학은‘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는 것을 한 번도 잊어 본 일 없습니다. 요즘 이태원 참사 등으로 공직자들 수난 시대입니다. 일부 대충하는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후배들에겐 수처작주(隨處作主)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어느 곳에 가든 주인의식으로 적극적인 행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 공직생활 중 가장 보람되었거나 기억에 남는 일은?

대구 산격동 경북도청 시절, 1996년쯤 일로 기억합니다. 도청 안에 그룹사운드(G#)를 결성, 딱딱한 공직사회를 부드럽게 만들었고 위문·봉사 활동하던 시절이 좋았습니다. 방송 출연도 했고 리더 기타, 베이스를 쳤습니다.


□ 바쁜 공직생활에도『한국유산기 1, 2, 3』 등을 출간, 산에 남다른 관심은?

우리나라에 4,400개의 산이 있습니다. 100대 명산을 포함해 절반은 다닌 것 같습니다. 그 결과물이 책으로 나온 한국유산기 1, 2, 3입니다. 불과 1세기 만에 7할의 야생과 산림파괴로 서식지 잃은 동물들이 인간의 영역으로 몰려오면서 바이러스도 묻어왔는데 이게 코로나입니다. 인간들이 자초한 거죠. 산에 왜 가느냐 묻는 사람들 많습니다. 산에 가면 영혼이 맑아지고 탐욕에 찌든 생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산의 정기가 인간 본성을 정화니까요. 산은 약과 같아 몸을 가볍게 한다(名山如藥可輕身)고 했습니다. 울진은 전체면적의 85%가 산림입니다. 특히 금강소나무 숲은 우리나라 산림의 심장입니다. 그만큼 중요한데 국립소나무연구센터가 들어와야 합니다. 울진 해안의 해송 꽃가루가 봄바람에 날려 내륙의 소나무와 섞여 울진 금강소나무가 됩니다. 잡종강세인 셈이죠. 단절된 해변의 해송을 지속적으로 심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 울진군 발전을 위한 강점과 약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우리 울진군은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지역입니다. 21세기는 생태자연환경이 인간 삶에 우선합니다. 강점이라면 관광·인문·자연 자원이 풍부하지 않습니까? 이를 잘 활용하면 일자리도 생기고 관광객유치도 가능한데 구슬 서 말이나 되는데 잘 꿰지 못하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는지요? 특히 인문 자원 활용은 완전히 도외시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울진의 지역 정체성을 상징하는 박물관이 없어 좀 아쉽네요. 박물관이란 지역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한편으로 생태·관광산업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약점은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인적·물적 자원이 들어오길 꺼려요. 고속도로, 동서횡단철도 개통이 최대 현안이라고 봅니다.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산업별 점유비율과 우선순위, 경제적 배분 계획이 선결과제라고 생각합니다. 


□ 퇴임 후 계획이 궁금하다. 인생 2막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34년 공직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동안 바빠서 소홀했던 집필, 음악, 산행에 몰두할 계획입니다. 미뤄두었던 원고를 정리해 책도 출판하려 합니다. 

 

□ 공직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한다.

후배 공무원들은 실력과 재능이 훌륭합니다. 유능한 잠재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줄 것으로 믿습니다. 줄탁동시(啐啄同時)를 새겼으면 합니다.


□ 마지막으로 울진군민들에게 인사해달라.

군민 한분 한분이 건강해야 울진이 건강하고 발전한다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했으니까요. 부족한 저에게 그동안 격려와 성원해주신 데 지면을 빌려 인사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저작권자ⓒ빠른뉴스! 울진뉴스 & ulji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54581
 
 
 
 
 
    울진뉴스/월간울진(http://uljinnews.com |   창간일 : 2006년 5월 2일   |   발행인 / 대표 : 김흥탁    |   편집인 : 윤은미 
  • 사업자등록번호 : 507-03-88911   |   36325. 경북 울진군 울진읍 말루길 1 (1층)   |  등록번호 : 경북, 아00138    |   등록일 : 2010년 7월 20일                         
  • 대표전화 : (054)781-6776 [오전 9시~오후 6시 / 토, 일, 공휴일 제외(12시~1시 점심)]   |  전자우편  uljin@uljinnews.com / ytn054@naver.com
  • Copyright © 2006-2017 uljinnews.com all right reserved.
빠른뉴스! 울진뉴스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