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시] 봄날은 간다

기사입력 2023.05.1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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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도둑놈처럼 시커멓게 생긴 

보리밭 가에서 떠나지 않고 서 있는 살구나무에

꽃잎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자고 나면 살구나무 가지마다 다닥다닥 

누가 꽃잎을 갖다 붙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쓸데없는 일을 하는 그가 누구인지

꽃잎을 자꾸자꾸 이어붙여 어쩌겠다는 것인지

나는 매일 살구나무 가까이 다가갔으나 


꽃잎과 꽃잎 사이 아무도 모르게 

봄날이 가고 있었다 

나는 흐드득 지는 살구꽃을 손으로 받아들다가 

또 입으로 받아먹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하였는데


어느 날 들판 한가운데 

살구나무에다 돛을 만들어 달고 떠나려는

한 척의 커다란 범선(帆船)을 보았다 

살구꽃을 피우던 그가 거기 타고 있을 것 같았다 

멀리까지 보리밭이 파도로 넘실거리고 있었다


어서 가서 저 배를 밀어주어야 하나 

저 배 위에 나도 훌쩍 몸을 실어야 하나 

살구꽃이 땅에 흰 보자기를 다 펼쳐놓을 때까지 

나는 떠나가는 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도현(시인)

 

꽃들이 펑펑 소리 없이 피고 있다. 봄이 왔노라 축포를 터뜨리고 있다.

살랑대는 봄바람에 바람난 살구꽃이 범선으로 부풀어 올랐다. 보리밭은 파도 물결이다.

떠나가는 배에 손이라도 흔들어 주자. 살구꽃, 복숭아꽃, 오얏꽃, 명자꽃도 피었다. 

이화에 월백한 배나무 꽃도 피었다. 온 세상이 꽃 대궐이다. 꽃구경 가자. 봄날은 간다.

김진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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