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이 ‘도둑 잡아라.’ 하니.

기사입력 2023.09.0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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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동원대학교 교수, 국제교류원장)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曹操)와 원소(袁紹)는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였다. 조조의 아버지 조숭은 당시 실세인 내시에게 양자로 간 인물이고, 원소는 조상 대대로 조정의 높은 벼슬을 한 명문가의 자제였다. 이들은 이런 막강한 배경을 믿고 못된 짓은 다 하고 다니던 개망나니였다. 조조는 난세의 간웅이라는 별명답게 어렸을 때부터 남을 속이는 데 타고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어릴 때 이름(兒名)을 '거짓말쟁이'라는 뜻의 ‘아만(阿瞞)’이라고 불렀을까?

 

어느 날 두 사람은 이웃 부잣집에서 혼인 잔치가 벌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두 사람은 그 집 정원으로 몰래 숨어들어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렸다. 하객들이 모두 술에 취하고 분위기가 흐트러진 것을 확인한 조조가 갑자기 나타나 담벼락을 가리키며 “도둑이야!”라고 소리쳤다. 사람들이 다투어 도둑을 잡으러 조조가 가리키는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틈을 타서 두 사람은 신부방으로 뛰어들어 신랑을 기다리던 신부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차례로 겁탈했다. 그러고는 황급히 담을 넘어 달아났다. 뒤늦게 사태를 알아차린 사람들이 이들을 쫓았다. 급하게 달아나던 두 사람은 길을 잘못 들어 그만 탱자나무 울타리 속에 나뒹굴고 말았다. 

 

몸이 날렵한 조조는 금방 빠져나왔으나 몸집이 크고 행동이 굼뜬 원소는 가시덩굴에 걸려 낑낑거리며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고함을 지르며 가까이 오는 걸 본 조조는 갑자기 칼을 빼 들었다. 조조는 원소를 향해 칼을 겨누며 “도둑놈이 여기 있다.”라고 고함을 질렀다. 놀라 당황한 원소는 젖 먹던 힘까지 내어 겨우 가시덩굴을 빠져나와 꽁지 빠지라 하고 달아났다. 조조는 마을 사람들에게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까지 들으며 위기를 모면하고 유유히 빠져나왔다. 

 

남북조 시대 송나라 유의경(劉義慶)의 『세설신어(世說新語)』 「가휼편(假譎篇)」에 실린 ‘적함착적(賊喊捉賊)’의 고사다. 두 사람 다 남 부러운 것 없는 명문가 출신이었지만, 젊은 시절 그들의 행동은 한마디로 개차반이었다. 위기에 처하면 본능적으로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 게 인간이라고는 하지만, 이 두 사람의 행동거지는 저급하기 그지없어 논할 가치도 없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지만, 둘 다 그 버릇 개 못 주고 세상을 떠났다. 

 

개인의 행동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 견주어 보면, 위기 모면을 위한 이런 임기응변식 행태가 집단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우리 정치권이 하는 짓거리를 보면 잔머리를 굴려 궁지에서 빠져나온 조조의 행동거지는 오히려 별로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요즘 ‘서울-양평 고속도로 건설’을 놓고 특혜 논쟁이 뜨겁다. 현 정부가 대통령 일가에게 재산상 특혜를 주기 위해 계획된 노선을 변경했다는 주장이 문제의 본질이다. 급기야 야당에서 국정조사를 요구하면서 정쟁은 복잡하게 얽히는 모양새다. 

 

애초 이 사업은 전 정부에서 계획된 것이고 원안과 대안으로 제시된 노선도 그 당시에 결정된 것이다. 최적의 대안 노선 검토를 포함한 타당성 조사 방침 결정과 낙찰자 선정은 모두 현 정부가 인수위를 출범시키기 이전에 전 정부에서 일어난 일이다. 책임 소재를 묻는다면 마땅히 전 정부가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만약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면 현 정부뿐만 아니라 전 정부도 포함되어야 사리에 맞다. 

 

요즈음 이 논쟁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지난 십수 년 동안 사드 배치와 전자파, 쇠고기 광우병 괴담, 천성산 도룡뇽 괴담, 강정마을 해군기지 괴담 등을 앞세워 공포를 조장했던 바로 그들이 주축이다. 나중에 그 괴담이 거짓으로 만천하에 드러났어도 선동자들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고, 그 피해는 국민에게 고스란히 전가되었다. 요즈음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도 이들에 의해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숱한 괴담과 선동으로 정권까지 창출해 가며 쏠쏠하게 재미를 보더니 이번에도 뻔히 보이는 수법으로 또 재미를 보려고 한다. 이들의 무책임한 행태를 보면,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패륜의 추한 행동거지로 세대를 이어오며 비난받는 조조와 원소마저도 이들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적함착적’은 도둑이 위급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엉뚱한 사람을 향해 ‘도둑이 여기에 있다.’라고 외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돌려놓고 도망가는 것처럼,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위기를 넘기기 위해 남에게 잘못을 전가하는 행위를 비유하는 말이다. 우리 속담에 적반하장(賊反荷杖)도 도둑이 되레 매를 든다는 뜻으로, 잘못한 사람이 도리어 무고한 사람을 나무라는 경우를 빗대어 옳음(是)과 그름(非)의 관계가 바뀐 것을 의미한다. 

 

‘괴담’은 인간의 정신을 병들게 한다. 거짓을 사실인 것처럼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종의 ‘사기술’이다. 논쟁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합리적인 의심’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여 선동 효과를 증폭시킨다. 시간이 흘러 진실이 드러나도 그때쯤이면 이미 우리 인간의 뇌는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할 정도로 황폐해진 다음이다.

손바닥으로 어찌 하늘을 가릴 수 있으며, 몇 사람의 손으로 어찌 천하 모든 사람의 눈을 가릴 수 있겠는가? 임기응변의 얕은 수로는 그 거짓됨을 결코 숨길 수 없다. 그러므로 궤변과 선동으로 세상 모든 사람의 눈을 가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대화하고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

 

지금 누가 진짜 도둑인가? 소리를 지르는 자들인가, 아니면 잠시 궁지에 몰린 자들인가? 이들의 싸움에 나라는 두 쪽으로 점점 더 깊게 갈라진다. 우리 국민의 가슴에 남는 상처가 아무는 데는 아마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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