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시] 죽변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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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 권을 한꺼번에 펼친 바다가
기슭의 파란까지 덮어버렸으니
일몰 이후에나 대출된다는 밤바다는
평생을 새겨도 독해 버거운
비장의 어둠일까, 이 도서관의 장서려니
갈피나 지피려고 주경야독한다는
어부들의 말이 비로소 실감이 난다
일생을 기대 읽는 창窓이야
시인의 일과처럼 갈짓자 행보지만
알다가도 모를 달빛을 지표삼아
어둠으로 안내하는 사서의 직업이란
그다지 참견할 일이 못 된다
다만 그 일로 한두 시간을 끙끙거리려고
삐걱대는 목조계단을 밝고 오른다
이 도서관이 대출하는 장서라면
파도 한 단락조차 내게는 벅찰 것이니
오늘 밤에도 누군가는 등대를 켜고 앉아
첩첩 어둠을 읽고 있겠다!
김명인(시인)
『오늘은 진행이 빠르다. 김명인시집에서, 문학과 지성사, 2023.』
도서관은 온갖 언어를 간직한 언어의 사원이다. 동해안 중허리, 손을 뒤로 뻗어도 닿지 않는 그곳, 대끝머리에 죽변도서관이 있다. 그곳에 가면 죽변 등대가 있고, 서걱이는 시눗대마다 하얀 파도가 일렁인다. 김명인 시인이 열세 번째 내놓은『오늘은 진행이 빠르다』라는 시집에서『죽변도서관』이란 시 한 편을 선보인다.
시인은 밤바다를 한 권의 책으로 비유하고 있다. 참으로 기발하다. 수만의 파도가 책갈피처럼 쌓여 있는 저 밤바다의 두께와 무게와 깊이는 도대체 얼마나 될까? 그는 오늘도 멀고 먼 바다를 첫 출항하는 원양선처럼 언어의 광석을 찾아 날마다 밤을 항해할 것이다. 시인의 작업에 영광이 있으라!
소월시문학상 등 10여 개 이상 큰 문학상을 받은 바 있는 그는 울진 후포가 낳은 한국의 중견 시인이다. 후포 바다의 만경창파는 그가 어릴 때부터 시에 대한 감수성을 일궈 낸 커다란 또 하나의 도서관이었다. 다만 후포에 그의 시비가 없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시인 김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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