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習慣이 健康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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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호 전)성균관 전인 / 실버건강지도사
習慣(습관)이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는 늘 되풀이하여 생긴 버릇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트라이언 에드워즈(Tryon Edwaras)명언에 생각은 目的(목적)을 통해 行動(행동)으로 이어진다. 行動(행동)은 習慣(습관)에서 發生(발생)하고 習慣(습관)은 性格(성격)을 決定(결정)하며 性格(성격)이 그 사람의 運命(운명)을 바꾸어 놓는다는 것이다.
즉 생각을 바꾸면 行動(행동)이 바뀌게 되고 行動(행동)을 바꾸면 習慣(습관)이 바뀌고 習慣(습관)을 바꾸면 性品(성품)이 바뀌고 性品(성품)을 바꾸면 運命(운명)이 바뀐다는 것이다.
불치병 난치병을 포함한 대부분의 疾病(질병)도 習慣(습관)의 産物(산물)이라고 합니다. 習慣(습관)을 바꾸려면 마음이 변해야 하고 마음이 변하려면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絶望(절망), 不安(불안), 憂鬱(우울), 짜증 등의 疾病(질병)은 걷지 않아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합니다. 이토록 習慣(습관)은 우리의 삶을 決定(결정)짓는 중요한 核心(핵심)인 것이다. 習慣(습관)이 長壽(장수)하느냐 短命(단명) 하느냐 習慣(습관)이 成功(성공)하느냐 失敗(실패)하느냐 習慣(습관)이 人品(인품)이 훌륭한 어른인가 별 볼일 없는 老人(노인)인가를 決定(결정)하기도 한다. 나는 이중에서 習慣(습관)이 道德的(도덕적)인가 不道德(부도덕)한가에 關心(관심)이 많다. 여기서 私生活(사생활) 習慣(습관)은 個人(개인)의 自由(자유)지만 言語習慣(언어습관)과 行動習慣(행동습관)은 個人(개인)의 自由(자유)가 아니라 嚴重(엄중)한 社會秩序(사회질서)에 至大(지대)한 영향을 끼치므로 鄭重(정중)해야 한다. 여기서 習慣中(습관중) 不道德(부도덕)한 言行習慣(언행습관)으로
1.驕慢(교만)
2.我執(아집)
3.陰沈(음침)
4.假飾(가식)
5.利己(이기)
6.無視(무시)하는 사람은 대개 行動習慣(행동습관)도 驕慢(교만)하고 無禮(무례)하며 輕薄(경박)하여 마음습관이 不正(부정)하여 옳지 못하고 陰沈(음침)하며 밝지 못하고 항상 假飾的(가식적)이고 거짓으로 꾸밈으로서 남을 해치고 自身(자신)만 내 세우며 오직 자신의 利益追求(이익추구)에 陷沒(함몰)된 不道德(부도덕)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러한 言語習慣(언어습관)과 行動習慣(행동습관)을 지속함에도 그 사람의 運命(운명)이 나쁘게 나타나느냐 하는 問題(문제)는 이것과는 別個(별개)라고 생각하지만 成長(성장)하지 못한 사람만은 分明(분명)하므로 變化(변화)는 世上(세상)의 理致(이치)이니 좋은 習慣(습관)으로 成長(성장)하고 健康(건강)도 지키자. 惡質的(악질적)인 小人輩(소인배)는 남을 무너뜨리기 위해 險談(험담)하고 남의 弱點(약점)만 살피고 해코지 하므로 이러한 사람은 無關心(무관심)으로 外面(외면)하고 나만의 길을 가야한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고 각자의 속도가 있고 각자의 人格(인격)이 다르다. 만나서 편안한 사람이 있고 만나서 불편한 사람이 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은 도파민이 생기고 만나기 싫은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憂鬱症(우울증)이 생긴다.
言語習慣(언어습관)에서 비롯된 싸움의 주된 원인은 欲求(욕구)도 공포도 理性的(이성적) 선택도 아닌 精神(정신)의 問題(문제)라고 한다. 尊嚴(존엄) 自主(자주) 心理的(심리적) 地位(지위)가 無視(무시) 당할 때 싸움이 벌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남을 얕잡아 보는 마음習慣(습관)이 社會根本(사회근본)을 파괴하는 不道德(보도덕)한 言語習慣(언어습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남의 正體性(정체성)도 지키고 자신의 正體性(정체성)도 올바르게 세우는 길이다. 社會(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法(법)이 지만 社會(사회)의 根本(근본)은 道德(도덕)이고 道德(도덕)수준이 人格(인격)이고 人品(인품)이다. 道德(도덕)수준의 頂點(정점)은 純粹(순수)해 지는 것이다. 사람이 純粹(순수)해 지는 것은 하루아침에 변하는 게 아니라 繼續的(계속적)으로 反復(반복)된 習慣(습관)의 産物(산물)인 것이다.
이른바 實踐(실천)의 結果物(결과물)인 것이다. 人間(인간)의 根本的(근본적) 我執(아집)으로부터 他律(타율)로 神(신)이 救援(구원)해 주는 게 아니라 오직 내가 나를 救援(구원)한다. 라고 쇼펜하우워가 말을 했다. 이 世上(세상)은 내가 아는 만큼의 世上(세상)으로 이루어지고 내가 깨달은 것이 나의 世界(세계)다. 그렇기에 사람마다 幸福(헹복)한 程度(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幸福(행복)은 外部(외부) 環境(환경)이 아닌 나의 視野(시야)에 달려있다.
現在(현재)를 살며 나에게 어울리는 편안함을 찾아가는 것이 幸福(행복)의 길이다. 幸福(행복)과 不幸(불행)을 決定(결정)하는 것은 나 自身(자신)이다.
人間(인간)은 주어진 環境(환경)에 따라 成長(성장)하며 經驗(경험)한 環境(환경)과 事件(사건)들로 인해 생각과 行動(행동)이 人生(인생)에 담기므로 善行(선행)을 꾸준히 實踐(실천)하다보면 자기 스스로 깨달아 節制(절제)하는 美德(미적)이 생기는 것이고 節制(절제)는 自己(자기) 自身(자신)을 支配(지배)하는 自制力(자제력)으로 生活(생활)에 節制(절제)가 없는 習慣(습관)은 性的(성적) 不道德(부도덕), 不純(순수)함, 放蕩(방탕)함, 憎惡(증오), 嫉妬(질투), 猜忌(시기), 忿爭(분쟁), 뒷談話(담화), 變德(변덕)서러운 感情(감정)등이며, 節制(절제)는 먹는 일, 마시는 일, 性 生活(성생활), 感情表現(감정표현), 혀를 使用(사용)하는 일, 時間(시간) 使用(사용) 등 우리 生活(생활) 全般(전반)에 걸쳐 꼭 必要(필요)한 요소이다.
즐기되 지나치지 않게 슬퍼하되 과도하지 않는 것 지나치지 않는 것 過度(과도)하지 않는 것이 節制(절제)이다. 幸福(행복)할 때 美德(미덕)은 自制(자제)이고, 逆境(역경)에 처했을 때의 美德(미덕)은 忍耐(인내)이다.
過猶不及(과유불급)은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말과 비슷한 말이다. 子曰(자왈) 性相近也(성상근야) 習相遠也(습상원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本性(본성)은 서로 비슷하나, 習慣(습관)은 서로 다르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타고난 本性(본성)은 서로 간에 큰 차이가 없지만, 후천적인 習慣(습관)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즉 習慣(습관)이 큰 差異(차이)를 만든다는 말이다.
나쁜 習慣(습관)은 좋은 習慣(습관)으로 하나씩 바꾸는 일을 해야만 한다. 그게 좋은 習慣(습관) 가꾸기이다. 過度(과도)한 게임, 過飮(과음), 過度(과도)한 TV시청, 해로운 사람들과 어울리기, 運動(운동)하지 않기, 책읽기를 하지 않기, 남의 흠담하기 등은 나쁜 習慣(습관)이므로 不運(불운)을 만들기 전에 좋은 習慣(습관)으로 時間 管理(시간 관리), 體力 管理(체력 관리), 人間 管理(인간 관리)를 計畫(계획)하고 記錄(기록)하여 實踐(실천)함으로서 좋은 習慣(습관)이 나의健康(건강)을 지키는 結果(결과)가 따르게 될 것이다. 좋은 習慣(습관) 가꾸기는 마음의 平衡(평형)이고 마음의 平衡(평형)이 健康(건강)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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