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지요.

기사입력 2024.10.10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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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어린 나이에 장원급제하여 경기도 파주군수가 된 청년 맹사성은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 날 맹사성이 고을에 덕망이 높은 스님이 있다는 말을 듣고, 한 암자를 찾아 그 스님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스님은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최고의 덕목으로 삼아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스님이 대답했다.

“나쁜 일을 하지 않고 착한 일을 많이 하면 됩니다.”

“그 정도는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다 아는 이치인데, 먼 길을 온 내게 해 줄 말이 고작 그것뿐입니까?” 

 

맹사성이 언짢은 표정으로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스님이 녹차나 한잔 마시고 가라며 그를 붙잡았다. 맹사성은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스님은 찻물이 넘치는데도 찻잔에 계속 차를 따르는 것이 아닌가.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망칩니다” 

맹사성이 소리쳤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계속 차를 따르던 스님이 잔뜩 화가 나 있는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면서도,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스님의 이 한마디에 맹사성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져 황급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려다가 그만 문틀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고 말았다. 그러자 스님이 웃으며 말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지요.”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는 것은 인생의 큰 불행 중 하나(少年登科一不幸)’라는 말이 있다. 중국 송나라 때 학자 정이(程頤)가 남긴 말이다. 우리에게는 그의 형 정호(程顥)와 함께 ‘정자(程子)’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너무 일찍 성공하게 되면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알기 전에 자만하거나 만용을 부려 실패를 자초하게 될 수도 있으니 인생을 좀 더 멀리 보고 긴 호흡으로 가야 한다는 뜻이다. 맹자(孟子)도 ‘나아가는 것이 빠른 자는 그 물러나는 것도 빠르다(進銳者 其退速).’라고 하여 빨리 성공하는 것을 경계했다. 

 

중요한 것은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멀리 가는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인생사라는 게 길고 긴 승부라서, 전반전이 좋으면 후반전이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라는 의미일 것이다.

 

세상은 잘 났거나 잘 난체하는 사람을 결코 좋게 보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오죽하면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해 높은 벼슬에 오른 사람치고 좋게 죽은 사람이 없다(少年登科 不得好事).’라고 했겠는가. 그래서 옛 어른들은 ‘중년에 처를 잃는 것(中年喪妻)’과 ‘노년에 빈곤해지는 것(老年貧困)’을 더해, 사람이 살아가면서 피해야 하는 ‘인생의 세 가지 불행한 일(三不幸)’이라고 했다. ‘어린 나이에 성공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 것이다. 

 

인생이라는 승부는 장기전이라서 긴 호흡이 필요하다. 좀 더 멀리 보고 갈 일이다. 굳은 의지를 가지고 어려움이 닥쳐도 버티는 자가 목표를 이룰 수 있다. 

 

『순자(荀子)』 권학편(勸學篇)에서도 ‘느려도 쉬지 않고 반걸음이라도 걸으면, 절름발이 자라일지라도 천 리를 갈 수 있다(蹞步不休 跛鼈千里).’라고 했다. 쉬지 않고 노력하면 노둔(老鈍)한 사람도 성공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진정한 승자는 관 뚜껑이 닫힐 즈음에야 알 수 있다. 조금 빠르다고 자만하지 말고 조금 늦다고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좀 뒤 쳐진 것 같아도 실망할 필요 없다. 중요한 것은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닥치더라도 자기의 꿈을 이루기 위해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자세다.

 

그 스님을 만난 후로 맹사성은 진리는 평범한 말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지위가 올라갈수록 고개를 숙이며 겸손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백성들을 다스렸다. 집에 벼슬이 낮은 사람이 찾아와도 복장을 갖추고 예의를 다해 맞이했으며 손님에게는 반드시 상석을 내주면서 자신을 낮췄다. 

 

늘 고개를 숙이며 겸손한 마음으로 선정을 펼친 그는 세종 때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까지 올랐다. 오늘날 그는 황희와 함께 조선왕조 최고의 재상으로 추앙받고 있다.

 

“교만은 손해를 부르고, 겸손은 이익을 받는다(滿招損 謙受益).”라고 했다. 겸손함은 스스로 만족함을 알아 절제하는 것이고, 교만함은 스스로 만족하지 못해 탐욕을 부른다는 뜻으로, 자신을 스스로 높이려고 하면 사람을 잃고, 낮추면 사람을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서경(書經)』에 나오는 말이다.

 

존중이란 구걸하듯 억지로 얻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몸을 낮추고 겸손해질 때 얻어진다. 그러므로 늘 살얼음을 밟듯 전전긍긍하며 조심해야 한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힐 일이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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