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귀가 닫힌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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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관심과 다툼은 서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데서 비롯된다.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지키기에 너무 충실(?)하다 보면, 가끔은 사회 통념상 요구되는 기본적인 보편성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우리는 이를 개인의 이기심 또는 집단 이기주의라고 부른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고려해서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공익(公益)’이라는 명분으로 내세운다.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사안이 대두할 때마다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회의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공익이라는 명분을 충족시키기 위해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앞세우면 양보는 쉽게 얻어낼 수 있다. 그러나 사안이 자기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거나 득이 될 게 없다고 생각하면 대체로 무관심해진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가 그러하다.
임진왜란 때 일이다. 왜병(倭兵)들이 쳐들어와 온 마을이 약탈당하고 노약자들과 부녀자들이 희생되고 불바다가 되는데도 이 농부는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 자기 밭에서 배추와 무를 캐고 있었다.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 농부에게는 그동안 자기 밭에서 공들여 농사를 지어 곧 추수를 앞둔 잘 자란 배추와 무밭이 더 소중했다.
약탈을 마친 왜병 무리가 다른 지역으로 가기 위해 고개를 넘어 이동하면서 공교롭게도 이 농부가 일하는 무밭을 지나게 되었다. 왜병들은 낄낄거리면서 농부가 소중하게 길러 놓은 무밭을 가로질러 지나갔다.
왜병들의 발길에 무와 배추가 순식간에 엉망이 되자 비로소 이 농부는 화가 났다. 농부는 화를 참지 못하고 무모하게도 쇠스랑을 들고 왜병 무리에게 달려들었다.
왜병들은 들고 있던 조총으로 농부를 쏘았다. 그리고 쓰러진 농부의 시신을 걷어차고 깔깔대면서 산등성이를 넘어 사라졌다.
자기 마을이 약탈당하고 노인과 부녀자들이 희롱을 당하고 불바다가 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던 농부였다. 그런데 자기가 재배하던 소중한 무밭이 피해를 보자, 그제야 어이없게도 조총을 든 왜병에게 달려든 것이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어이없는 행동이었다.
임진왜란 때 선비 오희문(吳希文)이 9년 3개월에 걸친 오랜 피난 생활을 하면서 겪은 견문록인 『쇄미록(瑣尾錄)』에 실린 일화로서 강원도 고성 지방에서 있었던 일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래서 무관심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게 그 일이 닥치거나 그런 상황에 부닥치게 되면 비로소 반응하지만, 대부분은 올바른 상황판단이 부족한 행동으로 나타난다.
춘추전국시대 초(楚)나라에 갈관자라는 사람의 저서로 알려진 『갈관자(鶡冠子)』의 ‘천칙(天則)’ 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귀는 청각을 지배하고 눈은 보는 것을 통제한다. 그러나 나무 잎사귀 하나가 눈을 가려도 태산을 보지 못하고, 콩 두 알로 귀를 막으면 천둥소리도 듣지 못한다. (夫耳之主聽 目之主明 一葉蔽目 不見泰山 兩豆塞耳 不聞雷霆)”
여기서 ‘일엽폐목(一葉蔽目)’이라는 성어가 생겼다. 즉, ‘나뭇잎 하나로도 눈을 가린다’라는 뜻으로, 자질구레하고 단편적인 현상에 가려 사물의 전모나 근본적인 문제를 깨닫지 못하는 경우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되는 말이다.
세상이 몹시도 어지럽다. 어제는 옳고 정당하다고 했던 일이 오늘에 와서는 옳지 않은 일로 바뀌는 일이 수시로 반복된다. 정치적, 집단적 이해관계에 따라 사사건건 그 평가가 달라지니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서민들로서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곤혹스럽다. ‘공익(公益)’의 가치가 무색해지니, 당연히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판단 기준이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저들은 국민을 위해 바른 정치를 하고 있는데 국민이 오해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세상 민심을 마주하는 자세가 이러하니, 나뭇잎 하나로 제 눈을 가리고 콩 두 알로 제 귀를 막고 있다는 비아냥을 들을 만도 하다.
우리의 눈에는 그저 다수의 힘을 믿고 백성들을 아주 우습게 아는 오만함으로 가득 찬 망발에 불과하다.
민심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어찌 감히 그 자리에 있으려 하는가? 자기 눈을 가리고 있는 나뭇잎을 걷어내고 귀를 막은 콩알을 빼내라.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낮추어 백성들의 소리에 귀를 열어라.
성난 백성들의 아우성이 들리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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