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청산기포령(2차봉기) 130주년 기념식 참관기

“전국 동학군은 저 날강도 일본군에 맞서 총기포하라”
기사입력 2025.01.1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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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옥천 청산은 『1894동학농민혁명』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지역이다. 청산에 머물던 해월 최시형은 전주화약 이후 청일전쟁을 일으키고 내정간섭에 나서는 일본에 대한 대일 항전을 선언하고, 전국 동학도들에게 총기포할 것을 명령하였다. 그날이 바로 1894년 9월 18일이었다. 이를 청산기포라 한다. 

 

한마디로 전국의 동학도들에게 보국안민의 정신으로 저 날강도와 같은 일본군에 맞서 싸우도록 초유문(招諭文)을 발령하였다. 

 

해월 선생은 청산 집회에서 “인심이 곧 천심이라 이는 곧 천운이 이루는 바이니 너희들은 도중(道衆)을 동원하여 전봉준과 협력하여 사원(師寃)을 풀며 우리 도(道)의 대원(大寃)을 실현하라”고 지시하였다.


해월 선생은 의암 손병희를 동학군 대통령으로 지명하고 통령기를 주어 동학군을 지휘토록 하는 한편 전봉준 총대장과 연대하도록 지시하였다. 

 

이때 해월 선생의 결단으로 손병희 동학군군과 전봉준 동학군은 하나가 되어 경복궁 불법 기습 점령, 조선군 해산, 친일내각 등 국권침탈을 한 일본군과 전면전을 벌이게 되었다. 따라서 청산기포에 담긴 큰 뜻은 다음과 같다. 

 

첫째 동학농민혁명의 전국화이며 둘째 똑같은 구호와 이상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혁명성이고 셋째 동학 조직 지휘체계의 일원화였다. 그리고 전국 동학도 단결을 강조한 통합성이다. 

 

지난 2014년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기념해서 만든 구호가 동학농민혁명의 전국화, 세계화, 미래화였다. 그 첫 단추인 전국화가 실현된 장소가 바로 옥천의 청산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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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청산면 한곡리 문바우골에서 열린 청산기포령 130주년 기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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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마을에서 최시형 선생이 은거하며 청산기포령을 내렸던 민가를 둘러보는 필자(청산면 한곡1길 105-1)

 

19일, 천도교중앙총부·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 청산문바위 동학제·학술대회

지난 2024년 10월 19일(토) 제130주년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 청산총기포령 기념식과 학술대회 행사가 충북 옥천군 청산면 청산리 동학공원과 청산초등학교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천도교중앙총부(교령 윤석산)가 주최하고 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대표 고재국, 전국 41개 단체) 등이 주관했다. 필자는 같은 장소에서 양일간 참관하였다. 행사가 열린 곳은 충북 옥천군 청산면 한곡리 문바우골이다. 최시형 선생이 은둔했던 산골 마을이다. 


이날 행사는 식전공연으로 2차 기포 동학군 진군행렬기접이 놀이와 진혼무로 문을 열고 천도교중앙총부의 집례로 청수봉전, 심고, 천덕송(천도교 샘 합창단) 본 행사를 시작했다.

윤석산 천도교 교령, 고재국 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 대표의 인사말과 주영채 전국동학농민혁명 유족회장 등의 축사, 청산 지역 기관장들의 인사말이 있었다. 학술대회는 청산초등학교에서 개최되었다. 


전국에서 모여든 동학 관련 단체 회원들이 보국안민 등의 구호가 적힌 깃발을 들고 풍물을 울리면서 마을 저수지를 따라 올라갔다.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풍물 치는 소리가 골짜기에 가득했다. 

마치 그 장면은 130년 전 동학군들이 집결하여 일본군과 맞서 출정하는 결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저수지에 흰옷 입은 단체회원들과 죽 늘어선 깃발은 군사들이 진을 친 병영 같다. 

멀리 영해에서 참가한 『1871영해동학기념사업회』 권대천 위원장과 권태용 사무국장도 깃발을 들고 출정하는 행진을 했다. 나는 멋있다고 손뼉을 쳐주었다. 


오후에 청산초등학교 강당에서 열린 학술발표회 주제는 “해월 최시형의 총기포령과 독립서훈”이다. 발표에는 1.장수덕(내포동학문제연구소장)의 ‘최시형 총기포령의 역사적 의미’와 2. 박용규(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의 ‘최시형의 항일 독립운동과 서훈’이다. 종합토론에서는 김용달(전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이 좌장을 맡고, 토론에는 정선원(전 동학농민전쟁우금티기념사업회 이사장) 박사와 성강현(동의대 교수) 박사가 맡았다.

 

이 주제 요점은 1894동학농민혁명 관련한 분들이 독립유공자 서훈 심사 대상자에서 제외되고 있다는 것이다. 독립유공자 서훈 심사 대상자 기준은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독립운동 공적이 있는 분으로 되어있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는 동학농민혁명을 국가기념일 제정한 바 있다. 따라서 1894년 동학농민혁명 관련분들의 공로가 인정되었으므로 국회에서 관련 법이 하루빨리 통과되어 서훈되기를 바란다.


20일, 충북민예총 등 시민단체, 청산 동학공원 진혼제·학술대회

한편, 제130주년 동학 청산 총기포령 기념행사가 지난 20일 옥천군 청산 일원에서 청산면민협의회를 비롯한 16개 단체·기관의 공동주최와 의암손병희선생계승사업회(이사장 오택균)와 ㈔충북민예총 옥천지부(지부장 김형진) 공동주관으로 열렸다).

이날 행사는 진혼제를 비롯하여 여는 마당, 풍물공연, 고사, 시낭송, 진도 씻김굿, 대금과 트럼펫 연주 순으로 진행됐다.


『의암손병희선생계승사업회』와 충북연구원이 공동으로 주관한 학술회의는 청산면다목적회관에서 ‘동학교단의 청산 총기포령과 손병희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신영우 충북대 명예교수의 주제강연이 있었다. 토론에는 김양식 청주대학교 교수가 좌장을 맡아 성주현 청암대학교 교수, 송윤섭 옥천군의회 의원, 임기현 충북학연구소장, 황민호 옥천신문 대표 등이 참석자들이 참석했다.

 

신영우 교수는 주제발표에서 “의암 손병희 선생이 우리 사회에서 저평가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 위상에 대한 인식 전환과 실천을 당부했다.

 

특히, 130년 전 오늘 이뤄진 총기포령의 큰 뜻과 함께 총기포령이 내려지기 전부터 동학혁명군이 마지막 해산하기까지 전 과정에서 손병희 선생의 역할이 아주 막중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했던가. 필자는 양일간의 행사를 보면서 130년 전이나 지금의 한반도 현실이 어쩌면 비슷함을 느낀다. 

 

왜 한반도는 당시 열강이 러시아, 청국, 일본이 패권을 다투는 전쟁터가 되었던가? 

그들은 자기끼리 싸움을 자국 영토에서 벌이지 않고 한반도에서 벌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고 불쌍한 백성들만 고통을 당했다. 

 

우리는 일본에게 당하여 식민지배를 받았다. 

해방 무렵 『일본은 일어서고 소련(러시아)에 속지 말고 미국을 믿지 말라』는 참언이 또다시, 떠오르는 시점이다.

 

최시형 선생의 청산 기포는 당시 인간의 존엄성과 평화를 지키고 외세 침략에 맞선 보국안민이었다. 지금도 최시형 선생의 “전국 동학군은 일본군에 맞서 총기포하라”는 지엄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또 하나는 『정순철어린이합창단』의 맑고 고운 목소리였다. 오랜만에 시골 아이들의 동요를 들어본다. 나도 모르게 따라 흥얼거렸다. 

이 합창단은 옥천군 관내 어린이들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이날 부른 동요는 짝짜꿍 외 2곡이었다. 

 

윤석중 선생이 노랫말을 쓰고, 정순철 선생이 곡을 붙였다. 예전에 우리가 부른 졸업식 노래도 정순철 선생이 작곡했다. 그는 청산이 고향이다. 최시형의 딸 최윤의 아들이 정순철이다. 정순철은 최시형의 외손자이기도 하다. 또한, 손병희 사위인 방정환이 정순철에게는 촌수로 오촌 아저씨가 된다. 방정환과 정순철은 일제 강점기 어린이 문화 운동을 함께 한 동지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 겨레의 희망은 오로지 어린이라고 본 소파 방정환 선생은 동학의 인내천(人乃天)사상에서 출발하여 어린이 문화 운동을 펼쳤다. 해월 최시형 선생은『아이를 때리지 마라. 아이를 때리는 것은 한울을 때리는 것이니 한울이 싫어하고 기운을 상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방정환 선생도 어린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고, 교육해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이에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날을 만들고, 어린이 문화 운동을 펼쳐나간 참뜻이라고 보겠다. 


최시형 선생은 조선 정부의 지명수배를 피해 다니면서 동학을 포교했다고 한다. 청산 문바우골은 마을은 영양 일월산 마을 윗대치와도 같은 깊은 산골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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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러한데 교통이 불편한 당시야 사람이 외딴 산골에 젖어 들면 나무이자 풀이고 바위와 산그늘 그림자였으리라. 

 

청산, 한곡리 마을, 이곳에서 최시형 할아버지는 그냥 순박한 시골 늙은이었으리라. 

서슬 퍼런 조선왕조 권력도 하늘 사람이었던 최시형 선생을 어쩌지 못했다. 유한한 인간 권력이 어찌 무극대도인 하늘의 진리를 이기랴!


돌아오는 길, 청산 문바우골 마을회관 감나무의 감들이 가을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동학 정신도 저 햇살처럼 역사에 면면히 이어져 청사에 빛나리라. 


필자에게는 이날 청산기포령을 내린 최시형 선생이 은둔했던 민가와 동학군들이 머물면서 느티나무가 있는 훈련장을 둘러본 게 뜻이 더욱 깊었다. 이날 함께 한 세종 『손글씨연구소(소장 김성장)』 회원님들과 청산동학에 대하여 말씀해 주신 옥천신문 편집국장을 역임하신 이안재 선생님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모두 동학 정신으로 건강하소서! (김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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