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섭 교수의 자투리한국사] 조선 초기 노비의 여주인 강간 사건 (제5화 4회)

신분 상승을 노린 지능적인 성폭행
기사입력 2025.03.1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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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대 숭례문(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사진이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을 먹고 상을 물리자, 곧 다과상이 들어왔다. 잠시 의례적인 덕담이 오간 후, 답십리 어른은 곰방대에 불을 붙이면서 말했다.

“내가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런 일을 처음 겪으니 나도 처음에는 어찌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더구나.”

내은이가 다소곳이 고개를 끄떡였다. 

“집을 사고팔아 본 적도 없는 데다가 요즘은 도성 안에서 집을 구하기도 그리 쉽지 않다고 한다. 외지에서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집값도 올랐고 거래도 잘 안된다고 하더라. 후우……”

 

그는 집주릅을 통해 들은 최근 한양도성에서 거래되는 집값과 거래 상황 등을 자세히 설명했다. 더구나 한겨울에는 거래도 한산해서 당장은 파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고 급하게 처분하려 들면 터무니없는 헐값에 내놓을 수밖에 없는 일이니 그건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는 곰방대를 깊이 빨더니 마치 한숨을 쉬듯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그가 잠시 말을 끊고 뜸을 들이자 내은이는 살짝 불안감이 들었다. 그동안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잘 풀릴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든 것이다. 

 

내은이는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잠시의 침묵이었지만 내은이에게는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그녀는 조바심이 나서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하오면…… 그 방법이라는 게 무엇인지요?”

내은이는 자기도 모르게 깔고 앉은 방석의 모서리를 잡았다. 손바닥에 땀이 고이는 듯 했다.

 

답십리 어른이 곰방대에 다시 불을 붙였다. 방안에 연기가 자욱하게 퍼졌다. 내은이는 숨을 쉬기도 힘든 분위기였지만 꾹 참고 귀를 쫑긋 세웠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는 자신이 곰곰이 생각했다는 방도를 천천히 설명해 나갔다. 그가 제시하는 방안은 집값을 제대로 받을 때까지 처분을 미루든가, 아니면 당장 집을 팔기 어려우니 매매가 될 때까지 자기가 잠시 이 집으로 이사 와서 관리하며 때를 보자는 것이었다.

또, 내은이가 만약 과주로 이사를 한다면, 그 시기는 본격적으로 농사 준비가 시작되는 시기인 경칩과 춘분(春分) 사이가 좋을 거라고 말했다. 그래야 아랫것들이 농사를 준비하는 것을 감독하면서 농토를 관리하는 걸 알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의 설명을 들으면서 내은이는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열여섯의 소녀가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저 감지덕지 고맙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의 설명 가운데 혹시라도 과주로 이주했다가 내은이가 혼인하여 다시 도성 안으로 이사할 수도 있을 것이니, 그렇게 하는 것도 좋은 방도가 아니냐는 제안에 귀가 솔깃해졌다는 점이다.

 

내은이는 답십리 어른이 제시하는 방안 가운데 후자를 택했다. 우선은 과주로 이사를 하고 이 집은 그의 가족이 와서 거주하면서 관리하는 것으로 결정한 것이다. 그렇게 하면 빈집으로 놔 들 필요도 없고 나중에라도 되돌아올 수 있는 근거지가 남아 있는 거니까 좋은 방도라고 여긴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내은이가 미소를 지으면 대답했다. 답십리 어른은 내은이의 반응이 다행이라고 여기면서 다시 곰방대에 불을 붙였다.

“과주에 사는 아랫것들에게 이사 계획을 전하고 준비시켜라. 거처할 곳도 손을 봐야 하고, 막상 이사하려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니라.”

“곧 설인데 과주의 실구지 형제가 올라올 겁니다. 그때 잘 이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어르신.”

 

답십리 어른은 내은이에게 이사하는 날이 잡히면 다시 연락하라고 당부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답십리 어른 내외는 밖으로 나와 내은이의 안내를 받으면서 집을 한 바퀴 돌며 이리저리 자세히 훑어보았다. 그의 부인은 부엌과 창고, 행랑채를 둘러보면서 연지와 만복이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다.

 

해가 중천을 지나 기울기 시작할 때쯤 되었을 때 답십리 어른과 부인은 집을 나섰다.

내은이는 골목까지 나와서 그들을 배웅했다. 답십리 어른 일행이 골목을 돌아 사라지자, 내은이는 만복이와 연지를 안방으로 불렀다. 

연지가 다과를 마련하여 안방으로 들어왔다. 어린 동생들은 한과를 들고 재잘거리면서 마당으로 나갔다.

 

내은이는 두 사람에게 답십리 어른과의 대화 내용을 설명하고 과주로 이사할 수밖에 없는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이미 그동안 집안에서 돌아가는 분위기를 대충 짐작하고 있었던 두 사람은 별로 놀라는 기색 없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받아들였다.

설을 앞둔 그믐날이 되자 과주에서 실구지 형제가 음식을 장만해서 올라왔다. 이번에는 눈에 띄게 다른 때와 다르게 푸짐했다.

 

내은이는 실구지를 불러 앉히고는 그의 요청대로 과주로 이사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답십리 어른과 상의한 내용을 이야기하는 동안 만면에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뛸 듯이 기뻐하는 실구지를 보면서 마음이 몹시 착잡해졌다. 

‘저들이 왜 저렇게나 좋아할까? 그동안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남태령을 넘어 한양으로 오가는 길이 그렇게나 힘들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뭐가 저들을 저렇게나 좋아하게 만드는 걸까?’

 

내은이의 이야기가 끝나자, 실구지가 자세를 고치면서 머리를 조아렸다.

“아씨.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우리는 아씨께서 이사 올 때를 대비해서 전에 주인 어르신과 마님께서 내려오셨을 때, 잠시 기거하시던 안채를 다시 깨끗하게 손을 보고 있었습지요. 지내시는 데에 불편함이 없도록 저희가 온 신경을 다 쓸 것이니 걱정은 하지 마셔요. 암요……”

“고맙구나. 그리 신경을 쓰고 있다니……”

“그러면…… 아씨께서는 언제쯤 이사할 생각이신……지……”

“답십리 어른께서 말씀하시기를, 춘분이 가까워졌을 무렵이 좋겠다고 하는구나. 그때쯤이면 봄바람도 불고…… 하니, 이삿날이 잡히면 별도로 기별하마.”

“아…… 예. 그러믄 입쇼. 그렇게 하시지요. 그러고 보니 한 달포 정도 시간은 있구먼요. 그때쯤이면 안채 손보는 것도 끝낼 수 있으니, 아씨와 어린 아가씨 두 분 모시는 데에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요. 걱정은 하지 마셔요. 저희가 다 알아서 준비하겠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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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주막집 풍경(신윤복)

 

실구지는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알았다. 그럼 내려가서 준비하고 있거라. 이삿날이 잡히면 그때 기별을 하마. 잘 부탁한다.”

내은이가 말을 마치고 안방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암요.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실구지는 내은이를 따라 방문을 나서면서 대답했다. 그의 얼굴에는 기쁨에 겨운 듯 미소가 번졌다. 그는 재빨리 마루로 나와 마당으로 나서려는 내은이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았다. 

마당에는 만복이와 연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연지는 걱정스러운 듯 내은이 곁에 다가가 내은이의 눈치를 살폈다. 실구지는 만복이의 등을 치면서 걱정하지 말고 과주로 와서 재미있게 지내자고 웃었다. 만복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실구지 형제가 서둘러 집을 나서자, 내은이는 피곤해서 좀 쉬겠다는 말을 남기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만복이와 연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로 쳐다보았다.

그렇게 잠시 소란스럽던 집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노비(奴婢)는 우리나라의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 다른 사람이나 기관에 예속된 특수한 천민 계급을 가리킨다. 흔히 ‘종’이라고도 불렀으며, 남자 종을 ‘노(奴)’, 여자 종을 ‘비(婢)’라고 했다. 

이들은 남의 집이나 나라에 몸이 매여 대대로 노동력을 제공하던 사람으로서, 관가에 예속된 이를 공노비(公奴婢), 개인에 예속된 이를 사노비(私奴婢)라고 했다. 사노비 가운데는 주인집에 같이 사는 솔거노비(率居奴婢)와 주인집과 따로 사는 외거노비(外居奴婢)가 있었다. 

 

외거노비는 주인과 따로 살면서 주인의 토지를 관리하고 그 대가로 곡식과 쌀을 바치고 때로는 신공(身貢)을 제공하기도 했다. 과주에 살면서 그곳에 있는 이 참판 댁의 땅을 관리하면서 농사를 짓고 그 대가로 이 참판 댁에 곡식과 쌀을 바치는 실구지 형제는 이 참판 댁 가문의 외거노비였다.

 

외거노비는 솔거노비와는 달리 자기가 사는 거주지를 확인시켜 주는 호적이 따로 더 있었고, 독자적인 가계와 재산을 갖고 있어서 솔거노비보다는 경제적 처지가 나은 편이었다.

『속대전(續大典)』에 의하면, 외거노비의 1년의 신공액은 노(奴)는 면포 2필, 비(婢)는 면포 1필 반이었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토지와 가옥, 심지어 별도로 노비까지 거느리고 있었으며, 때로는 다른 양반들의 토지를 소작하기도 하였다. 또, 공장(工匠)으로서 수공업에 종사하거나 상업과 어업을 겸하는 예도 있어서 부유한 경제력을 가진 자들도 생겨났다. 이들에게 원칙적으로 군역(軍役)의 의무는 없었다.

 

노비가 사회경제적으로 그 지위가 낮았던 이유는 그들의 신분이 대대로 세습되면서 주인의 뜻에 따라 매매, 증여, 상속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또, 양인(良人)보다 무거운 신공 부담도 함께 져야 했다. 

 

고려시대 이래로 노비의 신분은 천자수모법(賤者隨母法)에 따라 결정되었다. 즉, 노비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는 어머니의 신분을 따라 노비가 되었고 그들의 소유권은 어머니의 주인에게 귀속되도록 하였다. 또한 양인 남성과 비(婢)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 역시 천자수모법에 따라 신분과 소유권이 결정되었다.

반면, 예외도 있었다. 노(奴)와 양인(良人)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의 경우, 아버지의 신분에 따라 노비가 되었고 그들의 소유권은 아버지의 주인에게 귀속되었다. 결국 노비 사이의 결혼은 물론 양인과 노비 사이의 결혼에서 태어난 자녀들도 모두 노비가 되는, 다시 말해 부모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노비라면 그 자녀 역시 노비가 되는 일천즉천(一賤則賤)의 강력한 노비 신분 세습 원칙이 적용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신분의 억압에서 벗어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외거노비 가운데 부유한 경제력을 가진 자들은 관리를 매수해 노비 신분을 벗어나기도 했다. 게다가 자기 상전을 우습게 여기고 신공을 바치지 않는 경우도 생겨났다.

그들의 상전은 대부분 도성에 거주하는 양반 관리였다. 따라서 이들은 먼 곳의 외거노비를 관리, 통제하기 위해 주로 지방 수령의 협조를 얻어 노비에 대한 신공을 징수하거나 도망한 노비를 추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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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노비의 삶(풍속화)


고려 공민왕 10년(1361년), 홍건적이 고려의 수도인 개경을 함락하여 불을 지르는 바람에, 조정에서 관리하던 노비문서가 다 타버리는 일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고려 말부터 조선왕조 개국 초기까지 노비와 관련된 송사가 엄청나게 많아졌고 이 때문에 노비 소송 전담 부서였던 형조의 업무가 마비될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회 혼란을 알고 있던 태조 이성계는 즉위하자마자,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태조 1년(1392년) 11월에 밀린 세금 이상으로 노비의 일을 한 사람들은 다시 양인(良人)으로 만들어주는 파격적인 조처를 내렸다. 그리고 태조 6년(1397년)에 노비와 관련된 법규를 정비했다.

 

당시 노비 1명의 시세는 오승포(五升布) 1백50 필 정도에 불과했다. 시중에 유통되는 말(馬) 한 필의 값이 오승포 4, 5백 필 정도와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싼 가격이었다. 

오승포란 조선시대에 관리에게 녹봉으로 주던 다섯 새의 베나 무명의 하나를 말한다. ‘승(升)’은 가늘고 굵은 정도를 표시하는 단위로, 오승(五升)은 곧 품질이 중간 정도에 해당하였다.

 

조정에서는 노비의 가격이 말 한 필보다 가치가 떨어진다고 하여, 노비의 시세를 임의로 정했다. 새로 정해진 노비의 가격은 나이 15세 이상에서 40세 이하인 자는 4백 필, 14세 이하와 41세 이상인 자는 3백 필이었다.

 

당시 법규에 따르면, 천인 남자(賤口)가 양인 여자(良女)에게 장가들어 낳은 자식은 아비의 신분을 따르게 하였다. 이에 따라, 두 사람 사이에 자식이 태어나면 모두 사천(私賤)의 신분이 되었다. 

 

예를 들어, 몰락한 양인집 딸자식이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반강제적으로 부유한 사천(私賤) 신분의 남자에게 시집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자식들은 모두 남자의 신분을 세습하였으므로 자연스럽게 천민(賤民)이 되었다. 

 

이런 풍조가 이어지면서, 갈수록 양인의 숫자가 줄어들고 천인의 숫자가 늘어나는 현상이 생겨났고, 조정에서는 양인에게 거둬들여야 할 세금이 줄어들게 되었다. 

기득권층에서 보면 사천 신분을 가진 자들이 많아지면 수요는 일정하거나 오히려 줄어드는 데 비해, 공급이 넘쳐나므로 사노비의 가격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양반층으로서는 재산 가치가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조정에서도 세금을 거둘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니 당연히 민감한 문제였다.

 

조선시대 노비제도는 대체로 태종대에 이르러 정비되었다. 태종 대의 노비 정책은 양민 확보를 위해 추진된 것이었으나,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따라서 태종 대 이후에도 ‘양소천다(良小賤多)’ 현상은 여전하였고, 국역 부담자의 확보를 위한 양민 확보책은 계속 추진되었다. 

 

태종 1년(1401년)에 이르러 천인 남자와 양인 여자가 결혼을 못 하도록 법으로 정하였고, 만약 이미 결혼을 한 상황이라면 강제 이혼시키는 강경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처벌에 대한 뚜렷한 내용이 없어서 천인 남자와 양인 여자 간의 혼인 문제는 계속해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그래서 태종 5년(1405년)에는 이를 금지하기 위하여 다시 한번 양천 간에 혼인을 금지하도록 공표하고 처벌 조항도 함께 정리하는 조처를 내렸다. 즉, 혼인한 사람은 강제 이혼시키고 해당자와 해당자의 자식이 있을 때는 국가에 귀속시키도록 했다. 법규 위반자를 고발하면 상금으로는 포(布) 2백 필을 하사했다.

 

조선 전기에는 군에서 공을 세우거나(軍功), 조정의 정책에 따라 변방으로 이주하는 것(徙民), 수배 중인 도둑을 검거하는 데 공을 세운 자(捕盜), 그리고 일정한 양의 곡물과 금전을 납부(納贖)하는 등의 경우에 천인 신분을 벗어나게 해주는 면천(免賤)의 혜택이 주어졌다. 

면천(免賤)은 말 그대로 천인 신분을 면하는 것인데, 조선 초기부터 양민(良民)을 확보하여 군액(軍額)을 보충하는 방안으로 시행되었다. 

 

그러나 면천은 부분적인 범위에서만 가능하였을 뿐, 대규모 면천 정책을 추진하지는 못하였다. 그것은 유교적 신분 질서의 확립을 요구하는 관료 지배층의 반대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특이한 내용은『조선왕조실록』에 들어 있는 왜노비(倭奴婢)에 관한 기록이다. 

당시 왜인(倭人) 중에서 조선에 와서 노비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다. 즉, 왜인들 가운데 조선에 들어와서 경상도 동해안 바닷가 근처에 정착해서 양반이나 관(官)에서 노비처럼 임금노동자로 사는 자들이 많았다. 

 

또, 노략질하러 해안가에 왔다가 포로로 잡혔는데, 석방해도 돌아가지 않고 자기들 땅 보다 먹을 것이 풍족한 조선에 눌러살려고 하는 자도 있었다. 또, 조정의 관료가 일본에 통신사로 갔다가 왜인을 몸종으로 데려오거나 노비로 사 오는 경우 등도 있었다. 

태종 10년(1410년)의 기록에 보면, 경상도 일대에 사는 왜인 노비의 수가 무려 2,000여 명이 넘는다고 했다. 

 

당연히 지금도 그렇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의 문화나 생활방식이 다른 것에 대한 이질감이나 그들이 일으키는 범죄가 큰 사회문제가 되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먹을 것이 없어서 개인의 집에 스스로 노비가 된 왜인들 가운데는 주인집 마님이나 딸을 강간하고 도망가거나 심지어는 주인을 죽이고 달아나는 자들 때문에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태종 8년(1408년)에는 앞으로 왜노비(倭奴婢)를 사고파는 행위를 금지하는 조처를 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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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의 ‘행려풍속도병(行旅風俗圖屛)’ 길거리에서 판결이 이뤄지는 모습을 담은 풍속화.(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당시 실구지 형제는 과주의 이 참판 댁 토지를 경작하면서 제법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편이었다. 더구나 이 참판 부부가 갑작스럽게 차례로 죽은 후에는, 토지 경작에 대해 간섭하는 일도 크게 줄어들었다.

 

이 참판 댁에 남은 자식이라고는 딸 셋이 고작인데다가 큰딸 내은이는 이제 겨우 열여섯 살이었고, 나머지 두 딸도 열세 살과 열 살에 불과한 어린애였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린 상전은 다루기가 만만해 보였다. 해가 바뀌면서 살구지 형제는 점점 생각이 많아졌다. 어쩌면 과주의 이 참판 댁 토지를 아예 제 것으로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실구지는 여러 가지 묘안을 궁리하다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은이를 과주로 이사 오게 만드는 일이라고 결론지었다. 과주의 토지 관리를 핑계로 삼아 세상 물정을 모르는 내은이를 은근히 압박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구지는 자기 구상을 치밀하게 실행에 옮겨나갔다. 우선은 예전처럼 깍듯하게 모시는 시늉을 해가면서 어린 내은이의 환심을 사는 것이 중요했다. 여전히 자기들을 든든하게 믿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가을 추석 때 곡물을 싣고 올라와 내은이를 마주한 실구지가 간곡하게 과주로 이사할 것을 요청한 것이 첫 번째 수순이었다. 당시 내은이의 반응이 시큰둥하여 보이자 수틀리면 도망이라도 가겠다고 협박한 것이다. 화들짝 놀라 어쩔 줄 몰라 하던 내은이의 모습을 보고 ‘이제 뭔가 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 후로 지금까지 이제나저제나 내은이의 반응을 기다리던 실구지 형제가 설 인사차 올라갔다가 내은이로부터 과주로 이사하겠다는 승낙을 받자, ‘이제 되어가는구나.’ 싶었다. 

 

잰걸음으로 과주로 돌아온 실구지 형제는 가족들을 불러 모았다. 추운 날씨에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말에 잔뜩 군불을 땐 집안은 온기로 가득했다. 과주에 이 참판 토지를 경작하면서 사는 사람은 모두 10명이었다. 

실구지와 그의 처 복실이, 실구지 동생 길동이와 갑분이, 처남 박실과 그의 처 간난이 등이었다. 실구지에게는 3살과 젖먹이 하나, 동생 길동이에게도 젖먹이 어린아이 하나, 그리고 처남 박실에게도 2살짜리 어린애가 있었다.

“다 왔는가? 내 오늘 할 말이 있어서 이렇게 불렀네.”

 

실구지는 막걸리 한 사발을 단숨에 들이켜고 무김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좌중을 둘러본 

실구지는 입술을 닦으면서 헛기침했다. 잠시 뜸을 들인 실구지는 이 참판 댁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면서 내은이 자매가 춘삼월에 과주로 이사 오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모인 사람들 모두 깜짝 놀라 실구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가족들의 반응은 의외로 차가웠다. 실구지 처 복실이가 삐죽거리면서 시큰둥하게 말했다.

“아니. 뭣 땜에 이리로 내려온다는 말인가요? 거기 한양에 넓은 집 놔두고……? 여기 오면 뭐가 좋은 게 있다고?”

“그러게요. 이제 좀 편히 살겠다 싶었는데, 괜히 피곤해지게 생겼네. 아…… 못 오게 해야지. 못 오게…… 여긴 왜 온대요?”

 

복실이 여동생이자 처남 박실의 처 간난이가 거들고 나섰다. 그러자 가만히 눈치를 보고 있던 동생 길동이가 맞장구를 치고 나왔다. 

“형님. 그냥 이대로 있는 게 좋잖아요? 대감마님 내외분도 돌아가시고 여기에 와서 간섭할 사람도 없잖아요. 아씨는 아직 어려서 여기 과주에는 관심도 없을 텐데요……. 뭐 하러 일부러 여기까지 이사 오게 만드는 건지…… 모르겠네요.”

간난이는 아이가 울며 보채자 젖을 물리면서 옆에 앉은 서방 옆구리를 쿡 찔렀다. 뭔 말이라도 해보라는 뜻이었다. 박실은 간난이의 재촉을 받자 매형 실구지의 눈치를 보면서 머뭇거렸다.

 

실구지가 막걸릿잔을 들면서 말했다. 그는 아녀자들의 시큰둥한 반응에 기분이 상한 듯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다 내게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거여. 아녀자들이 뭘 안다고 그래? 이 넓은 과주 토지를 그냥 두고 보자는 게 아니니까…….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다가 죽을 거여? 그냥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되는 거여. 경칩이 지나면 이사 올 것이니 다들 준비해 봐. 걱정들 하지 말고……”

“아…… 그래도 형님. 뭔가 우리도 그 생각이란 걸 알아야 되잖겠소? 그래야 우리도 무슨 준비를 하는 거지……”

“아…… 글쎄. 나만 믿으라니까 그러네……”

실구지가 막걸릿잔을 내려놓으며 큰소리를 쳤다. 실구지의 표정이 약간 일그러지는 듯 보이자 모두 입을 닫았다. 

실구지는 가족들에게 준비해야 할 일들을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지시하면서 분위기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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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거노비들의 거주지


이튿날 아침부터 과주의 이 참판 댁 별채는 분주하게 돌아갔다. 이들은 이 참판이 살아생전에 가끔 과주로 내려오면 기거하던 별채를 다시 깨끗하게 정리했다. 문틀을 닦아내고 창호지를 다시 바르는 등 하나하나 점검해 나갔다. 


우수가 지나면서 과주의 이 참판 댁 사는 곳은 제법 그 형체를 갖추었다. 누가 봐도 새로 이사를 올 집처럼 꾸며진 것이다.

실구지는 처남 박실과 함께 다시 한양으로 올라가 내은이에게 과주에서 지낼 별채를 깨끗하게 단장했다고 말했다. 

실구지로부터 과주에서 준비가 끝났다는 말을 들은 내은이는, 이 사실을 답십리 어른에게 알리고 이사 날짜를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이윽고 이삿날이 잡히자 내은이는 만복이에게 과주로 가서 실구지 형제에게 알리고 날짜에 맞추어 달구지를 가지고 오라고 전달하도록 했다. 

 

이튿날 아침, 만복이는 과주로 출발했다. 점심때가 되어 과주 이 판서 댁에 도착한 만복이는 실구지 형제에게 그간에 있었던 일을 소상하게 알렸다. 그리고 내은이가 당부한 이야기를 전하면서 차질 없이 준비하라고 했다.

만복이는 과주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오전까지 실구지 형제의 안내를 받아 새로 수리하고 단장한 별채를 꼼꼼하게 둘러보았다. 오후가 되자 만복이는 다시 한양으로 출발했다. 

 

그날 밤, 실구지는 아무도 몰래 처남 박실을 물레방아가 있는 농막으로 불러냈다. 사위가 어둑해지자 박실이 달빛을 가로질러 농막에 도착했다. 실구지는 박실을 끌고 농막 안 구석으로 들어가 미리 준비한 막걸리를 꺼냈다.

“아니…… 형님도 참……. 술이야 집에서 마시면 될 일을……”

박실이 의아스러운 듯 말을 꺼내자 실구지가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했다.

“조용히 해. 이 사람아. 내 박 서방한테 긴히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할 얘기요……? 무슨 얘긴데 여기서……”

“이봐. 좀 조용히 하고 내 얘기 들어봐.”

 

실구지는 다시 주위를 돌아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박실도 덩달아 자세를 낮추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달빛 아래 사방은 고요했다. 느티나무 위에서 부엉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언제까지 남의 밑에서 죽으라고 일만 할 건가? 우리도 이제 잘만하면 이런 천한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어.”

“예? 그게 무슨 말인지……”

박실이 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어서 눈만 동그랗게 뜨고 실구지를 바라보았다. 달빛에 비친 실구지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우리가 잘만하면 우리 신분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부자가 될 수도 있어. 자…… 지금 우리 처지를 잘 보라고……. 우리 상전인 이 참판 어른 내외가 다 죽었잖아.”

“그런데요……?”

“그런데 이 참판 댁에 남은 자식이라고는 아들 없이 딸만 셋이야. 그것도 아직 세상 물정을 하나도 모르는 어린 것들이란 말이지.”

“그래서요? 그게 무슨 상관인지……”

“허…… 이 사람 보게. 답답하긴……”

실구지는 박실의 어깨를 치며 답답하다는 듯 혀를 찼다.

“내은이를 내가 마누라로 삼으면 될 거 아닌가? 응?”

순간, 박실이 펄쩍 뛰면서 허리를 폈다.

“예에……? 마… 마누라로 삼는다고요? 아… 아… 아씨를……말입니까? 그… 그게 무슨……”

“소리 낮춰. 이 사람아.”

실구지는 놀라서 벌떡 일어난 처남 박실의 어깨를 짓누르면서 손을 입에 갖다 대고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했다. 

“아니…… 내 말은 형님. 무슨 수로 아씨를 마누라로 삼을 수 있는단 말이오? 그게 가당키나 하오? 그게……?”

“아… 글쎄. 농담이야. 이 사람도……. 예를 들면 그렇다는 얘기야.”

실구지는 한 발 빼며 싱긋 웃었다. 

“아무리 농담이라도 그렇지… 나… 원……”

박실도 따라서 웃었다. 실구지가 주위를 다시 두리번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다 내게 생각이 있어. 두고 보라고. 자네는 그저 입 다물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하기만 해. 이제 우리도 팔자 좀 고쳐야 할 거 아닌가? 두고 보라고. 자네는 일이 끝날 때까지 입이나 조심해. 혹시라도 누가 알면 일이 그르칠 수 있으니 말이야. 내가 다 준비할 테니 자네는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알겠어? 박 서방.”

“아…… 나야…… 뭐…… 아무것도 모르니…… 하여간 알겠소. 형님. 근데…… 그게 뭔 말인지 나는 당최 모르겠소.”

 

실구지는 처남 박실에게 더 이상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괜히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을 꺼냈다가는 실행에 옮겨보지도 못하고 오히려 일을 그르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느티나무 위에서 또 부엉이가 울었다. 눈이 내린 지 며칠이 지나지 않은 들판은 달빛을 받아 멀리서 움직이는 사물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밝았다. 

두 사람은 반달이 서산으로 넘어갈 때까지 막걸리를 주고받으며 물레방앗간에서 밀담을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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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들녘

 

경칩(驚蟄)을 지나면서 바람은 피부로 느낄 정도로 달라졌다. 봄을 준비하고 있던 농부들은 파종을 위해 땅을 고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밭에는 벌써 달래와 냉이가 올라오고 있었다.

 

이삿날로 정해진 날은 춘분을 코앞에 둔 날이었다. 햇볕도 제법 따스한 화창한 봄날이었다. 

내은이는 실구지 형제들이 가지고 온 달구지에 짐을 싣고 과주를 향해 출발했다. 이삿짐이라고 해봐야 별것 없었다. 규방에서 쓰는 간단한 옷가지와 용품, 과주의 토지문서와 부모님의 유품을 보관한 상자 등이 그것이었다. 만복이와 연지도 저들이 쓰는 용품만 챙겼다.

오래된 장롱을 비롯한 가구는 그대로 두고 가기로 했다. 어차피 나중에라도 내은이가 혼인을 하게 되면 다시 한양으로 올 수도 있음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내은이는 답십리 어른 내외의 전송을 뒤로 하고 과주로 향했다. 답십리 부인은 내은이의 손을 잡고 아쉬움에 눈물을 흘렸다. 답십리 어른은 내은이에게 집 걱정은 하지 말고 이사 가서 건강하게 지내라고 당부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소식을 전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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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레방아

 

이촌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 동작나루에 도착한 행렬은 남태령으로 향했다. 

남태령(南泰嶺)은 서울특별시 관악구와 경기도 과천시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이다. 지금은 남태령에 넓은 대로가 개통되었지만, 일제강점기 신작로가 개설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한양과 삼남 지방을 오가던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던 고개였다. 

삼남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남태령을 넘어 사당동, 동작동을 지나 동작나루나 노량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 도성으로 이동했다.

남태령 구간에는 숲이 우거져 도적이 많았다고 한다. 충청도와 호남 지방에서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향하던 선비들의 관문이었던 이곳에서는 이들 선비의 봇짐을 노리는 도적들이 끊이지 않았다. 

 

이 도적들의 행위가 여우 같다고 해서 남태령을 여우고개로 부르기도 했다. 과천에서 한양으로 갈 때는 행인 50명이 모인 다음 관군의 호송을 받아 고개를 넘을 수 있었다고 해서 쉬네미 고개라고도 불렸다.

 

남태령 아래 사당 주막집에서 간단하게 먹을 것을 챙긴 내은이 일행은 과주로 가는 사람들이 30여 명 정도 모이자, 그들 틈에 끼어 남태령 고갯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고갯길을 힘겹게 올라 겨우 정상에 오른 내은이와 어린 동생들은 고갯마루 느티나무 아래에서 잠시 쉬었다. 연지가 물주머니를 가지고 와서 내은이에게 건넸다. 내은이는 동생들에게 물주머니를 내주었다. 

 

내은이는 두고 온 집이 있는 한양도성을 돌아봤다. 한강 너머 멀리 보일 듯 말 듯 남산자락 아래가 눈에 들어왔다. 두 동생은 멀리 보이는 한강을 보며 깔깔대면서 장난치고 있었다. 내은이는 순간 콧등이 시큰거렸다.

“아씨. 이러다 해가 저물겠어요. 어서 가시지요.”

만복이의 재촉에 내은이는 눈물을 삼키면서 동생들의 손을 잡았다. 함께 고갯길을 올라온 일행들이 이미 저만치 앞장서고 있었다. 이렇게 먼 길을 처음 나선 터라 내은이는 달구지에 앉았는데도 온몸이 아파왔다. 

“이랴. 가자.”

실구지가 소 잔등을 매몰차게 내리쳤다. 달구지가 덜컹거리며 고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고개 아래 주막에서 다시 물 한 모금을 마신 일행은 길을 재촉했다. 

 

남태령 내리막길이 끝나는 부근에서 남쪽으로는 들판이 길게 이어졌다. 개울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둑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다가 맞은편 계곡으로 접어들었다. 

“아씨. 다 왔습니다요. 저기가 마님 집이구먼요.”

실구지가 가리키는 계곡 쪽으로 멀리 아담한 기와집과 초가집 몇 채가 보였다. 계곡 주변으로는 아직도 녹지 않은 잔설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계곡 입구에 들어선 내은이 일행을 발견한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뛰어오고 있었다. 실구지가 목에 걸친 수건을 꺼내 땀을 닦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다 왔나 보다. 힘들었지?”

 

내은이는 동생들을 보면서 웃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동생들은 어느새 달구지에서 내려서 뛰어가고 있었다. 

“아씨. 조심하세요. 미끄러워요.”

연지가 동생들을 따라가며 소리쳤다. 바람이 한차례 휘감고 지나가자 내은이는 풀고 있던 목도리를 다시 감았다. 바람은 아직도 차가웠다.

해는 어느새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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