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으리라” 정담 장군과 웅치전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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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규
지난 8월 29일 전북특별자치도청 공연장에서 임진왜란 웅치전투 추도행사가 열렸다.
왜란 당시 조국을 수호하는데 공이 큰 웅치전투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고, 역사적 중요성과 가치를 알리기 위한 기념행사이다.
행사에는 김관영 전북도지사를 비롯해 유희태 완주군수, 전춘성 진안군수, 구자희 울진부군수와 도내 기관·단체장들이 참석했으며, 웅치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정담 장군, 황박 장군 등 임진왜란 웅치전투 참전 후손들이 전국 각지에서 참석해 선조들을 추모하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됐다.

(지난 8월 29일 전북특별자치도청 공연장에서 열린 임진왜란 웅치전투 추도행사에 김관영 전북지사를 비롯한 내빈과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제시에서 완주군과 진안군 산악 지역을 넘으면 전주로 가는 길목에 웅치고개가 있다.
임진년 1592년 음력 7월 7일과 8일 양일간 큰 전쟁이 있었다.
임진왜란 웅치전투에서 김제군수인 정담 장군(1548~1592)은 구국 정신으로 싸우다 순국하였고, 후일 권율 장군은 육상대첩의 1등 공신은 정담 장군이라 말씀하시었다.
정담 장군은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에 있는 해월 선생 종택에서 태어났으며, 5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10세 때 부친 정창국씨마저 돌아가셨다.
이 무렵 큰 누님이 결혼을 하였는데 매형인 황응징(해월 황여일 선생의 부친)씨가 처남에게 글을 가르쳐 주었다.
장군은 18세 무렵 상시라는 시험에 낙방하고 무사의 길을 택해, 함경도 일대 여진족인 니탕개의 난을 진압 시 돌격대장으로 공을 세우고 내금위(임금의 호위대)에 근무하였고, 제주도에서 근무할 때는 배가 풍랑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살아온 적도 있었다고 전해져 온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잘 훈련된 30만 대군을 이끌고 부산에 상륙하여 20여 일만에 한양까지 진격하니 조정에서는 선조가 남해 바다를 지킬 장수와 전주로 넘어오는 길목에 자리한 김제 군수를 불탁채용(이유 불문하고 막을 장군)을 지시하니 당시 40여 명의 장군이 추천되었다.

(추도행사에 참여한 울진군 관계자들)
이에 바다에서는 이순신 장군, 김제 군수에는 정담이 임명되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1년 전부터 시작된 전쟁 준비는 훈련과 장비 등 모든 면이 부족한 상태였으나 군, 의병, 승병 모두가 합심하여 잘 싸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1만여 명으로 추정되는 왜군이 호남을 향해 쳐들어와 정담을 비롯한 장수들이 관군과 의병 등 1천여명의 병력으로 대항하였으나 역부족으로 부하들이 일단 후퇴를 건의했지만, 정담 장군은 “갈 사람은 가라. 나는 한 놈의 적이라도 더 죽이고 살기 위해서는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으리라"고 단호히 말씀하시어 모든 장졸들이 장군의 의지에 동조하여 잘 싸워 주었다.
음력 7월 8일은 정담 장군을 비롯한 모든 지휘관이 장렬히 전사한 날이었다. 장군은 백마를 타고 올라오는 적장을 죽였으나 결국 왜군이 쏜 총에 맞아 쓰러지고 말았다.
이 전투는 왜군이 우리나라를 침입한 전투 중 가장 큰 피해를 보았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일본군은 나무를 베어 '조 조선국 중간의담弔 朝鮮國 忠肝義膽'이라는 표목을 세우고 여러 곳에 시체를 모아 흙을 덮어주었다고 한다.
이때 장군의 시신은 전주관아에서 무덤을 만들어 주었고, 전사한 장병들의 일부는 험준한 산에서 시신을 찾아 무덤을 만들었지만 연고가 없는 많은 시신은 산골짜기에 방치되었다.
그로부터 약 200년이 지나 산아래 마을이 생겨나 주민들이 산 중턱에 화전밭을 일구다 보니 화살촉도 발견되었고, 꿈에 전쟁하던 모습이 많이 보여 수소문하니 옛날에 큰 전쟁이 있었다고 알려져 마을 주민들이 서낭제를 지내다가 차츰 군수와 도지사 등이 참배하였고, 마침내 2022년 12월 웅치 전적비 일대가 국가 사적지로 고시되었다.

(웅치 전적비 참배하는 울진군 관계자들)
2023년부터 전북 도청이 개최한 정담 장군 추도행사에 울진군은 전쟁 433년 만인 2025년 8월 29일 구자희 부군수, 윤은경 문화관광과장, 김성준 문화원장, 안순자 군의원 등 30여 명이 참석하였다.
추도 행사가 끝나고 울진에서 참석한 일행들은 전북도청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웅치 전적비를 참배하였다.
향을 피우고 구자희 부군수를 비롯한 일행들은 모두 예를 표하였으며, 장군이 자란 기성 사동리 마당에서 준비한 흙과 남대천 모래를 탑 주위에 뿌려 장군의 넋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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