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섭 교수의 자투리 한국사] 경징이풀 2회

강화도 개펄에 펼쳐진 피맺힌 저주의 풀
기사입력 2025.12.2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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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도 의주 백마산성 성문

 

임경업이 올린 장계를 통해 청군의 침공을 확인하고도 조선의 조정은 비교적 여유가 넘쳤다. 

조선 조정에서는 조선군의 저항으로 청군이 한양까지 진격해 오지 못하고 평안도에서 안주(安州) 정도에서 조선군의 저항에 막힐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서 인조는 청나라 군대가 한양에 이르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판단하고, 차분하게 대응하여 적을 격퇴하라고 어명을 내렸다. 이처럼 조선 조정에서는 당시 청군 기병의 이동속도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판단 착오가 있었다. 

청군 선발대를 뒤이어 순차적으로 압록강을 건넌 주력부대는 압록강에서 한양에 이르는 길목을 지키는 산성(山城)을 하나하나 포위하고 조선군 섬멸 작전에 들어갔다. 


다음날 12월 14일(양력 1637년 1월 9일), 마침내 청군이 개성을 지나 한양으로 진격하고 있다는 급보가 올라왔다. 

임경업의 장계를 받은 후 대응 방안을 놓고 느긋해하던 인조는 긴급 어전회의를 소집했다. 조정 대신들은 집에서 한가하게 쉬고 있다가 인조의 긴급 소집과 함께 청군이 개성을 통과했다는 소식을 듣고 화들짝 놀라 긴급하게 입궐했다. 

하나둘 모여든 조정 대신들이 놀라 황망해하며 그 대응책을 놓고 갑론을박하기 시작했다. 밤이 늦도록 회의는 길어지고 결론을 내리기 어려워지자 인조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강화도로 파천을 결정하였다. 

 

인조는 대신들에게 하나하나 물어가며 긴급하게 강화도 파천 행렬의 지휘관과 도성 수비를 위한 인물을 지명했다.

먼저, 어가가 옮겨 갈 강화도 수비의 총책임자는 영의정 김류(金瑬)의 아들로 당시 한성부 판윤이던 김경징(金慶徵)에게 강화도 검찰사(檢察使)에 임명하고 강화도 방어의 총책임을 맡겼다. 

 

그리고 병조판서 이성구(李聖求)의 아우 부제학 이민구(李敏求)를 부책임자인 부사(副使), 좌의정 홍서봉(洪瑞鳳)의 아들 홍명일(洪命一)을 종사(從事). 강화유수 장신(張紳)을 강화도 해상방어(海防)의 책임자인 주사대장(舟師大將)으로 임명하여 김경징을 도와 강화도를 수비할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원임대신 윤방(尹昉)과 김상용(金尙容)이 종묘사직의 신주를 받들고 소현세자빈 강씨(姜氏)와 원손(元孫), 인조의 둘째 아들인 봉림대군, 셋째 아들 인평대군(麟坪大君) 등을 모시고 강화도로 피난하도록 했다.

 

인조는 김경징에게 즉시 행장을 꾸려 먼저 떠날 것을 지시했다. 인조의 명령을 받은 김경징은 즉시 행장을 꾸려 피난길에 올랐다. 

종묘사직의 신주와 왕손, 대군, 비빈을 모신 행렬이 숭례문을 나와 강화도로 향했다. 그 와중에도 김경징은 집으로 급히 사람을 보내 가족들이 피난 행렬에 따라나서도록 조치했다.

한편, 조정 회의가 길어지며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동안 선봉장 마부대(馬夫大)가 이끄는 청군 선발대는 강행군으로 개성에서 한양에 이르는 조선군이 지키는 산성을 우회하여 마침내 한양 외곽에 이르렀다. 

 

마부대의 청군 선발대는 한양 서북쪽 외곽의 무악재를 넘어 홍제원에 도착하자마자 진영을 펼치고 곧바로 군사를 보내 한양도성에서 강화도로 들어가는 길목인 양천강(陽川江) 주변 지역 주요 지점을 장악했다. 

사실,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9년 전인 1627년 정묘호란 때에도 인조는 급히 강화도로 피난하여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당시 청군은 강화도를 효과적으로 공략하지 못해 시일을 상당히 끌었던 경험이 있었다. 

 

그 당시 바로 눈앞에 조선 국왕이 도망간 강화도를 눈앞에 두고도 함락시킬 수 없었던 청나라는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선 국왕이 이번에도 틀림없이 강화도로 피신할 것을 예상하였다. 강화도의 지정학적, 군사적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부대는 용골대와 함께 조선에 사신으로 왕래하는 등 정묘호란 때부터 여러 차례 조선을 다녀가면서 조선 외곽의 지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궁궐에서 강화도로 이르는 요소요소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는 정묘호란 때처럼 조선 조정이 강화도로 피신할 것을 미리 짐작하고 궁궐에서 강화도로 이어지는 길목을 차단해 버린 것이다. 

다행히 먼저 출발한 검찰사 김경징의 행렬은 청군 선발대가 도착하기 직전에 무사히 홍제원(弘濟院)을 통과했다. 운 좋게도 실로 간발의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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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군의 살육

 

청나라 군대가 압록강을 건넌 지 불과 며칠 만에 개성을 점령하고 선발대가 한양으로 진격해 오고 있다는 소식은 빠르게 저잣거리에 퍼져나갔다. 백성들은 거리에 나와 바삐 오가며 허둥대고 있었다. 

대군과 비빈 일행이 먼저 강화도로 들어가도록 한 인조는 서둘러 어가를 마련하고 뒤따라 강화도로 가기 위해 숭례문으로 향했다. 어가를 호위하며 따라나서는 등불이 길게 이어졌다. 

 

마침내 왕이 강화도로 피난을 결정했다는 소식은 빠르게 저잣거리로 퍼져나갔다. 

조정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백성들은 서둘러 보따리를 꾸려 남부여대(男負女戴)하여 왕의 피난 행렬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모여드는 백성들 때문에 피난 행렬은 길게 이어졌다.

밤은 이미 삼경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인조의 어가가 미처 도성을 모두 벗어나기도 전에 숭례문 앞에서 갑자기 멈추어 섰다. 선발대로부터 긴급 소식을 전하는 전령이 달려온 것이다. 

 

놀란 인조가 장막을 걷으며 고개를 내밀었다. 횃불에 비친 그의 얼굴에는 긴장하는 빛이 돌았다. 

“무슨 일인가?”

진두에서 어가를 호위하던 대장이 급하게 인조 앞으로 달려와 헐떡거리며 보고했다.

“전하. 강화도로 향하는 길이…… 강화도로 가는 길이 청군에 의해 장악되었다고 합니다.”

“뭐? 뭐라고?”

놀란 인조가 어가에서 내려 허둥대자 뒤따르던 대신들이 화들짝 놀라 모두 말에서 내려 인조 곁으로 모여들었다.

“그게 뭔 소린가? 아니……? 초저녁에 청군 선발대가 개성을 통과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예. 그러하옵니다. 신(臣)도 그리 알고 있었습니다만…… 청군이 벌써……”

“벌써? 그래서 어떻게 됐다는 건가?”

인조가 호위대장의 말을 끊었다. 왕은 당황하고 있었다. 대신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혔다.

“전하. 고정하시옵소서. 우선 호위대장의 보고를 들으시고 판단하소서.”

영의정 김류(金瑬)는 호위대장에게 보고를 계속하라고 손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안절부절하고 있던 호위대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청군의 선봉 부대가 이미 사현(沙峴)에 이르러 강화도로 향하는 길이 차단당했다는 보고가 올라왔사옵니다. 전하.”

사현은 오늘날 서울 서대문구 독립문과 홍제동 사이의 무악재 일대를 이르는 지명이다. 백성들은 이곳을 ‘모래고개’라고 불렀다. 

청군이 이곳을 지났다는 것은 홍제동에서 행주산성 방향으로 가는 길이 이미 막혔다는 것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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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인조는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잠시 눈을 감았다. 별조차 없는 흐린 하늘이었다.

“그러면 대군과 비빈 일행은 어떻게 됐느냐? 그들도 막힌 거야? 응? 어떻게 된 거냐고?”

인조가 역정을 내 고함을 지르며 발을 동동 굴렀다. 대신들이 다시 일제히 허리를 숙이며 고개를 조아렸다.

“전하. 고정하소서.”

“경들은 지금…… 내가 지금…… 고정하게 됐소? 보고가 응? 지금까지 제대로 올라오는 게…… 하나도 없지 않소? 지금까지…… 경들은 대체 뭣들 하고 있는 거요?”

화가 난 인조는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대신들은 일제히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시각은 삼경을 훌쩍 넘어섰다. 


침묵이 조금 길어지자, 그때까지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이조판서 최명길(崔鳴吉)이 앞으로 나섰다.

“전하. 신(臣) 이조판서입니다.” 

최명길이 앞으로 나서자 인조의 안색이 조금 풀렸다. 그는 반색하며 최명길을 보았다. 어둠 속에서 기척을 내는 사람이 없었다. 

“오호. 경이구려. 그러면 무슨 뾰족한 수라도 있소? 어서 말해 보시오.”

“예. 전하.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강화도로 가는 길은 이미 막힌 듯 하옵니다. 그러니 전하.……”

그는 잠시 주변을 힐끗 돌아보고는 말을 이었다.

“즉시 말머리를 돌리시어 대책을 강구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시면 상황이 더 어려워집니다. 지금 어가를 따라나서는 백성들의 수가 점점 불어나고 있사옵니다. 여기서 더 머뭇거리다가는 민심을 제어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사오니……”

최명길의 조리 있는 설득에 인조는 망연자실하여 다시 도성으로 들어가 그의 말대로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인조가 말머리를 돌려 다시 도성 안으로 향하자, 어가를 따라 길거리로 몰려나온 백성들은 ‘전하. 우리는 어찌하라는 말씀입니까?’라고 아우성쳤다. 

인조는 애써 못 들은 척하며 군사들에게 길을 빨리 터라면서 신경질을 냈다. 저잣거리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마침내 청군은 애초의 작전대로 선발대를 먼저 보내 인조의 강화행을 막는 데에 성공했다.

조정으로 다시 돌아온 인조는 대신들의 회의를 직접 주재하면서 빨리 대책을 마련하라고 다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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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군(영화 최종병기 활)

 

그러나 사전에 청나라의 침입에 대비해 어떤 준비도 하지 않고 있던 터라 당장 효과적인 대안을 내놓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회의의 새벽이 다 되도록 길게 이어졌다.

대신들 사이에 고성이 오가며 갑론을박이 길어지자 최명길이 또 나섰다.

“전하. 강화도로 들어갈 수 없사오니 남한산성으로 들어가시는 것이 옳을 듯하옵니다.”

영의정 김류가 앞으로 나서며 반대했다.

“아니…… 지금 이판(吏判)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남한산성이라니요? 아니 되옵니다. 전하. 거기는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곳이라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청군의 공격을 감당할 수 없사옵니다. 그러니 무슨 다른 방도를 내서 강화도로 가셔야 종묘사직을 지킬 수 있사옵니다. 통촉하소서.”

김류의 말이 끝나자 최명길이 다시 나섰다.

“영상 대감의 말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도성 주변에 잠시 피신할 곳이라고는 남한산성 밖에는 없사옵니다. 지금 청나라 군대가 도성을 에워싸고 강화도로 들어가는 길을 차단한 마당에 우리가 선택할 방법은 이것밖에 없사옵니다. 그러하오니 일단 잠시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다음에 다른 방도를 모색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이라고 생각하옵니다. 지금 이대로 여기에 그냥 있다가는 언제 청군이 궁궐 안으로 들이닥칠지 알 수 없사옵니다. 전하. 통촉하시옵소서.”

 

최명길은 남한산성의 지형적 이점을 설명하고 지금은 당장 궁을 나가 그곳으로 피난하는 것이 제일 나은 방법이라고 역설했다. 그리고 지금 당장 파발을 지방으로 급파하여 왕명으로 삼남 지방의 수령들이 군사를 징발하여 남한산성으로 와서 어가를 호위할 것을 명하시라고 주청했다.

 

최명길이 말을 마치자 다시 그와 김류의 의견에 동조하는 대신들이 각각 갈라서서 서로 자기주장이 옳다고 맞서며 장내가 금방 소란스러워졌다. 

인조는 몹시 피곤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당장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최명길의 주청을 받아들여 남한산성으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인조가 남한산성행을 결정하자 최명길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섰다.

“전하. 지금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듣자 하니, 청군 선발대의 대장은 마부대라고 합니다. 그는 지난 정묘호란 때에도 용골대와 함께 청군을 인솔해 왔던 자입니다. 또 얼마 전에는 인열왕후 조문 목적으로 다녀갔던 자로 저와 자주 만난 인연이 있습니다. 

하오니, 제가 약간의 고기와 술을 준비하여 청군 진영을 찾아가 청군 선봉대장 마부대를 만나보겠습니다. 전하께서 무사히 남한산성으로 피신할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끌어보겠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인조의 얼굴에 비로소 화색이 돌았다. 

“그래. 그래. 그리하시오. 여봐라. 내관은 지금 즉시 이판(吏判)에게 음식을 준비하여 청군 진영에 다녀올 수 있도록 하라.”

어명을 받은 내관들이 일제히 대답하며 자리를 빠져나갔다. 

 

인조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궁 뜰로 나섰다. 대신들이 그의 뒤를 따라 나왔다. 눈이 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날씨에 길도 미끄러웠다. 궁 뜰에는 타고 왔던 가마가 그대로 있었다. 인조가 다시 가마에 오르고 세자와 비빈들도 가마에 오르자 호송 대장이 앞에서 길을 열었다.

아직 동이 트지도 않은 시각이었다. 매서운 바람이 궁 뜰을 한 차례 후비고 지나갔다. 마부들은 잔뜩 웅크리면서 귀를 감쌌다. 

 

인조를 태운 가마는 숭례문(崇禮門) 대신 죄수의 시신들을 운반하는 문인 수구문(水口門)을 통해 궁궐을 빠져나와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궁궐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궁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백성들이 궁에서 어가가 나오자 뒤를 따랐다. 

인조의 어가 뒤로 또다시 긴 피난 행렬이 이어졌다. 병자년의 겨울바람은 그해 상황만큼이나 혹독했다. 


궁궐을 나와 홍제원으로 향한 최명길 일행은 고개를 넘어 홍제천 앞에 이르렀다. 어둠이 서서히 걷히면서 주변이 밝아왔다. 

고개를 넘어오느라 최명길은 몇 번이나 미끄러지며 엉덩방아를 찧어 허리가 아프고 다리를 절뚝거리기도 했지만 지금 그런 것이 문제가 될 수는 없었다.

청군 막사에 가까워지자 보초를 서던 청군의 군사들이 최명길 일행을 발견하고 달려왔다. 

최명길은 자기 신분을 밝히고 조선의 왕명으로 마부대 장군을 찾아왔노라고 말했다.

최명길의 신분을 확인한 청군 병사들은 그가 쓴 서신이 든 두루마리를 들고 마부대의 막사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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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강화도 함락

 

청군 병사들은 그의 일행을 마부대(馬夫大)의 군영 막사로 안내했다. 보초병의 전달을 받은 마부대가 부장들과 함께 막사에서 나와 최명길을 향해 걸어왔다.

 

최명길은 마부대를 만나 반가운 모습으로 악수를 청했지만, 마부대의 표정에는 웃음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마부대는 아무 말도 없이 손짓으로 최명길을 자기 막사로 안내했다. 그는 성큼성큼 위엄이 넘치는 무장의 자세로 앞서 걸었고 그의 부장들이 조용히 최명길 일행의 주위를 포위하듯 둘러싸고 이동했다.

 

마침내 이조판서 최명길은 홍제원에 주둔한 청군 진영에서 그동안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마부대와 마주 앉았다. 

“추운 날씨에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소. 이렇게 추운 날에 무슨 일로 급히 국경을 넘어 여기까지 온 이유가 뭐요?”

그는 마부대가 내놓은 찻잔을 들고 입으로 가져가면서 마부대를 향해 물었다. 향긋한 냄새가 콧속을 후비고 들어왔다. 

 

지금은 적장을 설득할 수도, 군대를 물리게 할 수도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저 인조와 세자 일행이 무사히 남한산성으로 들어갈 시간을 벌어야 할 뿐이었다. 

그는 마부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준비한 술과 고기를 내놓았다. 그리고 마부대에게 대뜸 출병 이유를 물었다. 

 

마부대는 정묘호란 때부터 조선을 몇 차례 오가면서 조정 대신들의 면면과 성향을 미리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최명길이 어떤 인물인지 잘 알고 있었다. 

최명길은 청나라 조정에서도 조선의 대신들 가운데 비교적 합리적인 중도파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마부대는 조선의 왕이 그를 청군의 진영으로 보내기에는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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