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우리 항일역사는 반쪼가리, 남북항일투쟁사를 공부해야

민족문제연구소 중남미 지부장, 정갑환 선생
기사입력 2025.12.2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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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정갑환(71세, 민족문제연구소 중남미지부 상임 대표/멕시코시티 거주) 

일시: 2025년 10월 29일(수)

장소: 중국 심양타오센국제공항

대담·기록: 김진문(시인 / 민족문제연구소 /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이석영 선생 탄생 170주년 기념 신흥무관학교 옛터 답사가 지난 2025년 10월 25일(토)∼29(수) 4박 5일간 있었다. 이 답사기행은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민족문제연구소, 역사와 책임, 위스키주조회사<기원>, 이석영선생후손 김창희, 여행사 후라 등 관련 단체가 주최하고 후원한 바 있다. 

필자는 이 답사 과정에서 저 멀리 중남미 멕시코에서 오신 정갑환 선생과 일정을 함께 하였다. 이분은 1990년대 후반 멕시코로 이주하여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다. 대학에서 국사를 전공하신 분답게 대화에서 근현대사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에 관해 지식이 해박하시다. 멕시코시티에 거주하시면서 한인 사회에서도 겨레 사랑 정신이 남다른 것 같다. 

정 선생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민족문제는 광복 후 친일파를 철저히 척결하지 못한 것이 그 근본 원인이라는 것, 필자도 공감하는 바라 마침 시간을 쪼개어 중국 답사기행 마지막 날 심양타오센국제공항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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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식당에서(사진 오른쪽 첫째·둘째가 정선생 부부)

 

김진문(이하 김) 선생님 정말 반갑습니다. 멀리 멕시코에서 신흥무관학교를 답사하러 왔는데 오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까?


정갑환(아하 정) 저는 민족문제연구소 중남미지부 상임 대표입니다. 저는 원래 한국에 살다가  1999년도 멕시코에 이민을 가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최근 2022년도에 가입했지요. 현재는 멕시코시티에 살고 있습니다.


김: 왜 멕시코로 가게 되었나요.


정: 한국에서 제가 하던 봉제업이 사양화되니까 멕시코에서 그걸 계속하기 위해서 이민을 가게 되었지요.


김:아, 그래요. 그래도 수십 년 동안 계셨는데 지금은 듣기로는 사업 성공을 하셨다는데 참 잘 됐습니다. 그런데 지금 민족문제연구소가 멕시코에 지부를 설치한 그런 특별한 연유가 있을까요?


정: 본래 저는 멕시코에서 통일 운동을 한 20년 넘게 했습니다. <6.15공동선언실천민족공동본부중남미지부> 위원장을 했더랬습니다.


이민가서도 통일 운동 등을 펼쳐


김: 그래요? 아니 이민 가셨지만, 그래도 모국에 대한 애정과 통일 운동까지 앞장서서 실천하셨다니 그 열정이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로는 한말 1905년 전후로 멕시코로 이주한 조선인들이 <애니깽>이라는 사탕수수밭 농장에서 품팔이를 하면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혹 애니깽에 관한 이야기와 그곳에 정착한 후손들의 이야기를 좀 해 주십시오.


정: 아마 민족문제연구소가 멕시코에 지부를 둔 것은 그 지역 한인 이민의 역사와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겠지요. 1905년 영국 화물선 일포드(Ilford) 호 등을 통해 1,033명의 조선인들이 유카탄반도 애니깽(henequén) 농장으로 이주했어요. 이들 가운데는 실제로 조선 군인 출신들이 일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후 열악한 환경에서도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한인회 조직과 학교 설립을 추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숭무학교(崇武學校)’라는 이름의 교육기관이 세워졌다는 이야기가 있고요. 

또한, 3년 계약 노동 기간이 지나 일부가 농장을 벗어나자, 1910년대 후반부터 멕시코·쿠바 등지의 한인 사회에서 독립운동 지원 움직임이 활발해졌다고 합니다. 

특히 1919년 3·1운동 이후, 약 110여 명 이상의 한인들이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고, 임시정부와 연결해 독립운동을 지원하려는 결의를 모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숭무학교도 지역 청년들의 단련과 결속의 장으로 후원을 받았습니다. 

그곳에 참여한 청년들은 애니깽 농장에서 노동을 마친 뒤 방과 후에 모여 간단한 군사훈련·체력훈련을 지속하며 공동체 의식을 다졌다고 전해집니다. 이때 110여 명의 수료자들이 한인 행사에서 공동체를 대표해 메리다 시내에서 퍼레이드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멕시코 한인 사회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교육·단련·모금 활동을 결집하여 독립운동을 지원했고, 그 과정에서 ‘숭무학교’는 상징적 역할을 한 셈입니다.


멕시코, 애니깽 4세대 후손들 독립운동 정신 이어가고 있어


김: 쿠바에도 지금 그분들이 갔다고 하던데, 멕시코 등 그 후손들은 어떠합니까?


정: 후손들이 지금 한인 4세대까지 나왔는데 한 3만 명이 있습니다. 그다음에 1921년도에 288명의 한인이 쿠바로 재이민 가서 쿠바에 만 명 정도 한인 후손이 있습니다. 지금 4세대죠.


김: 쿠바에도 지금 그분들 후손들은 선조들의 독립투쟁정신을 이어가기위한 관련 단체를 만들어서 활동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정: 후손들이 지금 한인 4세대까지 나왔는데 한 3만 명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1921년도에 288명의 한인이 쿠바로 재이민 가서 쿠바에 만 명 정도 한인 후손이 있습니다. 지금 4세대죠.

쿠바는 좀 많이 흐트러졌고, 멕시코는 이제 메리다라는 동네에 그 사람들 모여 사는데 한인 후손회라는 한인회가 있어요. 그래서 해마다 광복절 날 만나서 모여서 광복절 행사도 하고 한복도 입고 사물놀이도 하고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멕시코에 한 10개월 계셨다 가셨어요. 그때 모금 독립 자금 모금 운동도 많이 하고 그래서 그때 독립운동을 했던 세분이 한국 정부로부터 독립 서훈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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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갑환 선생과 대담 모습(심양국제공항. 2025. 10. 29)

 

정율성, 논란 자체가 역사를 제대로 모르는 것


김: 한국에서는 아직 낯설지만 최근 논란이 있었죠. 중국에서 혁명 음악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전남 광주 출신 음악가 정율성 기념관을 견학했는데요. 소감이 어떠하나요?


정: 정율성은 사실 광주 출신인데요. 중국에서 조선 의용군 활동을 했어요. 그는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음악인이죠. 그런데 광주에서 제가 알기로 일베 애들이 그 흉상을 훼손하고 한 모양인데 말이 안 되죠. 정율성은 이미 벌써 평가되었어요. 그들의 역사의식이 웃기고 우스운 일이지요.


김: 저도 이번에 전시관을 보고 정율성에 대해 그냥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는데 많은 것을 새로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왜 그 일베나 이런 쪽에서 그분들을 격화, 폄훼하려고 그러나요.


정: 지금 저희들이 1945년 해방 후에 반민특위가 이승만과 친일 경찰들에 의해서 와해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친일 청산 작업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고요, 그 친일파들이 그대로 반공이라는 이름을 내세웠고, 두 번째는 기독교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김: 일부 기독교가 왜 그러죠?

정: 우리나라 개신교는 130년 전, 초기에는 선교사들이 의료·교육 활동을 통해 긍정적 기반을 닦았지만, 해방 후 미군정 시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정치적 성격이 강해졌어요. 미군정은 일본 식민지 시기 종교시설을 불하받은 뒤 상당수를 교회에 이전했고, 이승만 정권 역시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후원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북한에서 내려온 기독교인 공동체가 남한 교회의 중요한 중심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대표적으로 한경직 목사 등이 참여한 영락교회가 있었어요. 일부 월남 기독교인들은 북한 정권과 공산주의에 대한 강한 반감을 지니고 있었고, 이는 이승만 정권의 반공 노선과 결합하면서 정치적·이념적 활동으로 확대되었다고 봐야지요. 특히 서북청년회와 같은 단체는 반공을 명분으로 활동했으나, 이 과정에서 민간인 학살 등 심각한 인권침해도 발생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이 누적되면서, 일부 보수 기독교계에는 지금까지도 ‘반공’과 ‘반북 이데올로기’를 신앙의 정체성과 결합하여 강조하는 경향이 지속되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도 극우 기독교인들이 빨갱이, 공산당 척결 운운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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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양고궁에서(정갑환 선생 부부)

 

남북항일투쟁사 전체를 공부해야


김: 아니 지금 보니까 선생님께서는 역사에 대해 많이 알고 계신데요. 혹시 역사 전공을 하셨나요? 이번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한 역사 현장을 답사한 소감이 어떻습니까?


정: 제가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했고요. 안중근의사기념관은 중국 당국에서 건립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하얼빈에 처음 왔고요. 예전부터 꼭 한번 와 봐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최근에 뉴라이트라는 학자들이 그 사람들이 최고 존경하는 게 이승만이거든요. 그 대척점에 있는 김구 선생을 욕하고 그러다 보니까 윤봉길 의사와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헛소리를 하고 있어요.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사살한 현장이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 가보았는데 거기에는 안 의사와 동지들이 단지 동맹한 그런 곳도 있어요. 거기서도 독립운동을 하였죠. 이런 분들을 폄하하는 것은, 또 다른 친일행위이자 역사반역자라고 하고 부르고 싶어요.


김: 어제죠. 우리가 길림성 통화 추가가 양세봉 장군 동상이 있는 곳에 가봤잖아요. 저는 이분 이름을 처음 들어요. 이분은 남북한에서 다 인정받는 독립유공자이네요. 


정: 양세봉 장군이 남한에서 왜 인정을 하냐면 이 양반은 사회주의자가 아니었거든요. 김일성이가 만주에서 활동할 때 양세봉 장군에게 합작해서 투쟁하자고 몇 번을 만나고 그래요. 그 제의에 양세봉 장군이 끝까지 거절을 했습니다. 이분은 항일 독립무장 투쟁을 하다가 1934년도에 일찍 죽었단 말이에요. 일찍 죽었으니까 흠결이 없죠. 북한에서도 인정하는 항일투사입니다.


육군사관학교의 뿌리는 신흥무관학교다


김: 어제 어느 분이 우리 국군의 뿌리가 신흥무관학교다. 그래서 육군사관생도들이 이런 유적지를 답사해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공감이 가는 말인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 지금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사라는 것은 임시정부 위주로 하고 있거든요. 그게 3분의 1밖에 안 돼요. 그 또 반이 조선 의용군이고 그 다음에 김일성의 항일 문제고요. 그래서 남한에서는 반쪼가리 항일투쟁사를 공부하고 있는 거죠. 물론 그래요. 육군사관학교 학생들이 이런 곳도 와보면 좋겠지요. 전체적으로 입체적으로 공부해야죠.

그 당시 백범 김구가 창단한 광복군은 장개석 지원을 받아 무장 투쟁 준비만 하다가 해방을 맞았기 때문에 일본군하고 직접 싸운 적이 없어 임시정부 입장에서는 아쉬운 부분이죠. 

조선 의용군이 중요합니다. 조선 의용군은 일본군에게『조선인 항일무장세력』으로 공포의 대상이었고요. 중국 항일부대 내에서도 전투력과 조직력을 인정받은 무장 항일투쟁 군사 조직체입니다. 그 사람들은 해방 후에 북으로 많이 가서 6.25 전쟁 때 참전을 했단 말이에요. 나중에 김일성한테 거의 숙청을 다 당합니다. 그래서 남한에서는 신흥무관학교가 육군사관학교의 뿌리라고 생각합니다.


김: 이제 화제를 돌려보겠습니다. 지난 코로나 유행 시 선생님이 지극한 애처가로서 모습을 보여 화제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어제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 좀 해 주시죠.

정: 그때 코로나가 유행해서 와이프가 코로나에 걸렸는데 멕시코 의료진의 과잉 진료로 잘못해서 심폐가 날아갔습니다. 그래요. 패혈증에 걸려 멕시코에서 의사가 죽는다고. 방법이 없잖아요. 그래서 긴급히 사비를 들여서 에어엠밸런스 회사에 연락, 26시간 한국으로 날아와 아산병원에서 폐 수술을 해 살았어요.


김: 대단하십니다. 멕시코에서 급하게 비행기로 이송해 한국에서 목숨을 살렸네요. 이번 기행에서 두 분의 다정한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하여튼 건강하시고 사업도 번창하시길 바라고요.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요.


정: 지금 이재명 정부가 정권 초기에 잘해야지. 대통령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그 밑에 참모들이 잘 받쳐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민족문제연구소 같은 시민단체가 아주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1948년 국회에서 일제 강점기 친일파 척결을 위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의 방해로 반민족특위가 와해되었는데요. 그 일을 지금 우리 민족문제연구소가 하고 있다고 봐요. 앞으로 기대가 됩니다. 그래서 더 많은 일을 하자면 지지하고 공감하는 시민들이 회원으로 많이 가입했으면 좋겠어요


김: 예,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더욱 건강하시고, 사업이 번창하기를 바랍니다.


정: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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