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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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 동원대 교수
연말연시에 정치판도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곧 치러질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자기 업적을 홍보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다.
모양새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이들이 공통으로 강조하는 말은 역시 ‘소통’이다. 저마다 자신이 국민과 소통해온 정치인이었음을 강조한다.
‘소통(communication)’, 참 듣기 좋은 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그동안 국민의 여론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당리당략을 위해 정치를 해 온 것으로 비친 것과 비교해 보면 참으로 가소롭다.
전국시대 제(齊)나라에 추기(鄒忌)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키가 크고 외모도 준수하여 거울을 볼 때마다 자신의 잘생긴 용모에 감탄하곤 했다.
당시 제나라에서는 서공(徐公)이라는 자가 최고 미남이라고 소문이 나 있었다.
그가 어느 날 아내에게 자기를 서공과 비교할 때 누가 더 미남이냐고 물었다. 아내는 “당연히 당신이 더 잘생겼지요.”라고 대답했다. 첩에게 물어도, 자신을 찾아온 손님에게 물어도 돌아오는 답은 마찬가지였다.
며칠 후 서공을 만난 추기는 그를 자세하게 뜯어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그가 훨씬 더 미남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추기는 ‘이들은 왜 모두 하나같이 내가 더 잘생겼다고 할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부인은 오로지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고, 첩은 총애를 잃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며, 손님은 내게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 날, 그는 바로 조정으로 들어가 깨달은 바를 위왕을 만나 말했다.
“지금 왕의 주변을 살펴보면, 왕의 총애를 받는 왕비와 후궁들은 물론, 측근으로서 왕께 아부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조정의 신하들은 모두 왕을 두려워하며 각별한 은혜를 얻으려는 욕심을 품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왕께서는 어떤 일의 진상을 알고 싶어도 제대로 알기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왕이 매사에 바른 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위왕은 크게 깨닫고 다음과 같이 명령을 내렸다.
“내 앞에서 내가 잘못한 일을 지적하면 상등(上等) 상을 주고, 상소를 올려 간언(諫言)하면 중등(中等) 상을 주고, 저잣거리에서 한 욕이 내 귀에 들어오면 하등(下等) 상을 주겠다.”
다음 날부터 사람들은 왕에게 할 말이 있다면서 다투어 입궐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궁궐의 문 앞과 뜰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붐비는 바람에 마치 시장이 열린 것 같았다. 몇 개월이 지난 뒤에도 왕에게 할 말이 있다며 찾아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이웃 나라 사람들도 이 소문을 듣고 제나라 위왕을 찾아왔다. 그렇게 1년 정도 지나자, 위왕의 잘못을 지적하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완전히 사라졌다. 위왕은 자신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충실히 귀를 기울여 즉시 잘못을 바로잡았기 때문이다.
‘대문 앞과 뜰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마치 시장(市場)이 열린 것과 같았다.’라는 뜻의 ‘문정약시(門庭若市)’라는 고사성어의 유래이다. 오늘날에는 주로 ‘문전성시(門前成市)’라고 사용하고 있다. 『전국책(戰國策)』 의 「제책(齊策)」에 실려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사회상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이 필요했지만, 오늘날에는 다양한 계층의 소리를 담아내는 ‘소통의 리더십’을 요구한다.
복잡한 사회 속에서 다양한 계층과 격의 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소통의 리더십’은 오늘날 리더가 갖추어야 할 필수 덕목이 되었다.
‘진정한 리더는 노력하고 섬기는 자’라는 말이 있다. 오늘날의 리더는 늘 노력하는 자이고, 남을 섬기며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공적인 영역에서 지위가 높을수록 그 지위의 기반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데 있다.
우리 역사에서 최고의 성군으로 칭송받는 세종대왕은 재임 동안 총 1,898회의 경연(經筵)을 통해 신하들과 끊임없이 학문과 국정을 토론했다. 월평균 5회에 달할 정도로 자주 개최한 것이다.
세종은 백성에게 닥치는 좋지 않은 일들과 정책 실패가 있으면 그 원인을 다른 데에 돌리지 않았다. 언제나 자기의 잘못으로 인정하고 책임을 다하는 모습으로 신하와 백성들로부터 신뢰받았다. 세종이 펼친 정치의 바탕에는 ‘소통의 리더십’이 있었다.
초(楚)나라의 대부 섭공(葉公)이 공자를 찾아와 정치에 관해 물었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기쁘게 만들고, 멀리 있는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드는 것입니다. (近者說 遠者來)”
공자는 모름지기 정치를 제대로 하는 첩경은 백성에게 믿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백성이 믿지 않으면 정치는 성립될 수 없다(民無信不立),’라고 일갈한다. 공자가 가르치는 ‘믿음’은 바로 백성과의 ‘소통’인 것이다.
오늘날 정치인의 일거수일투족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다시피 하는 상황에서 리더의 자세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해졌다.
적어도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려는 욕심을 내는 자라면 큰 그림만 강조할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면서 사회통합을 위한 작고 섬세한 부분에 승부를 걸어야 할 것이다.
추기와 같은 신하는 물론 제나라의 위왕과 같은 정치인을 보기 힘들어진 요즈음에는 더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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