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에 부모님을 뵈며

기사입력 2011.02.16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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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

춘추시대(春秋時代) 노(魯)나라의 몽산(蒙山) 남쪽 기슭에 세상을 피해 은둔해 사는 ‘노래자(老萊子)’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효심이 지극하여 부모님을 봉양하는 일에 정성을 다해왔기 때문에 효자로 칭송이 자자했다.

 

세월이 흘러 어느 새 그의 나이도 칠십이 넘는 백발노인이 되었지만 그의 부모는 아들의 지극한 효성 덕분에 여전히 건강하게 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나이든 모습을 부모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부모 앞에서는 항상 어린 아이처럼 얼룩무늬 색동옷(斑衣)을 입고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재롱을 떨곤 했다. 이는 부모가 늙은 아들의 재롱을 보면서 자신들의 나이를 잊게 하기 위함이었다.

 

‘색동옷을 입고하는 놀이’라는 뜻의 ‘반의지희(斑衣之戱)’라는 말은 지극한 효성을 나타내는 의미로서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 고사성어이다. 즉, 늙으신 어버이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기 위해 색동저고리를 입고 아이처럼 어리광을 부리면서 논다는 말이다. 이 말은 당(唐)나라 때 이한(李澣)이 요순(堯舜) 시대부터 남북조(南北朝)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저명한 인물들에 관한 일들이 널리 수록하여 아동용 교과서처럼 만든 책,《몽구(蒙求)》의 <고사전(高士傳)>에서 ‘노래반의(老萊斑衣)’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조선 중기 때 문인 정희득(鄭希得, 1575~1640)은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왜군에게 포로로 잡혀 일본으로 끌려가 3년을 살았다. 그곳에서 사귄 일본인 친구와 작별하면서 지은 ‘쿄토로 가는 사스케를 보내면서(送左助赴倭京)’라는 시(詩)의 한 구절에, 고국에 계시는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지 못하는 애타는 마음을 ‘반의(斑衣)’라는 고사를 써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斑衣雲海思千里 어버이 그리는 마음은 바다 건너 천리인데
長被鴒原夢一春  한 이불 덮던 형제들 꿈만 같네.

 

공자(孔子)의 제자 자로(子路) 역시 소문난 효자였다. 어느 날 자로가 부모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공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저는 집이 가난했으므로 부모님을 봉양하기 위해 녹봉이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고 관리가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부모님께 나쁜 음식을 대접할 수 없어 백리 밖에서 직접 쌀을 지고 왔습니다(百里負米).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 초(楚)나라 관리가 되었을 때는 수레가 백 대나 되었고 창고에는 쌀이 수 만석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수명(壽命)은 마치 말이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순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 말에 공자는 “부모님에 대한 자로(子路)의 효성은 지극하도다. 살아계실 때는 정성을 다해 섬기고 돌아가신 후에는 한없이 그리워하는구나.”라고 말하였다.

 

‘백리부미(百里負米)’라는 고사성어는 ‘부모에게 쌀밥을 드리기 위해 백리 길을 멀다하지 않는다.’는 말로, 비록 가난하게 살지만 부모를 잘 봉양하기 위해 노력했던 자로(子路)의 지극한 효성(孝誠)에서 유래한 말이다. 부모를 섬길 때 물질적인 면을 결코 도외시할 수는 없지만 그 보다는 정성이 담긴 봉양이 부모를 더 기쁘게 할 수 있다는 교훈으로서《공자가어(孔子家語)》의〈치사(致思)〉에 실려 있는 이야기이다. 효(孝)에 대한 의식이 점점 퇴색되어 가고 있는 오늘날 ‘백리부미’라는 말은 우리에게 진정한 효(孝)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귀한 말씀이 아닐 수 없다.

 

명(明)나라 때 이시진(李時珍, 1518~1593)이 지은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까마귀의 습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까마귀는 부화해서 60일 동안은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며 키운다. 그러다가 새끼가 다 자라게 되면 이번에는 먹이사냥에 힘이 부친 어미를 위해 새끼가 먹이를 물어다 주며 어미를 돌본다고 한다. 이렇게 새끼까마귀가 자라 어미를 되먹이는 습성을 반포(反哺)라고 하는데 이 때문에 옛 어른들은 까마귀를 일러 자오(慈烏, 인자한 까마귀) 또는 반포조(反哺鳥)라고 불렀다.

 

오늘날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되고 있는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말은 까마귀의 이런 습성에서 비롯된 고사성어로서 어버이의 은혜에 대한 자식의 지극한 효도를 뜻한다. 사람들은 까마귀를 불길한 징조의 대명사로 인식하고 있지만, 이 미물(微物)에게도 인간이 반드시 본받아야 할 간과할 수 없는 습성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버이와 자식의 관계를 ‘천륜(天倫)’이라 한다. 스스로 희망하여 맺은 인간관계가 아니라 서로간의 의사나 선택과는 상관없이 나면서부터 맺어진 이를테면 하늘이 맺어준 관계, 즉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하늘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천륜의 섭리를 중시해 왔고 그 가운데서도 특히 어버이에 대한 자녀의 효도를 가장 중요한 덕목(德目)으로 강조해 왔다.

 

민족의 명절인 설날이다. 그동안 각지에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모처럼 한 자리에 모인다. 그 모임의 중심에는 언제나 나를 키워주신 어버이가 있다. 반가움에 잡은 손을 놓지 못하시는 어머니. 지난해보다 더 기력이 떨어져 예전 같지 않으신 두 분을 뵈니 세월이 무심하고 야속하기만 하다. 그저 송구스럽고 죄송한 마음이 들어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아이들은 내가 어버이에게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란다. 아이들이 장성한 다음에는 내가 어버이에게 대해온 그 모습 그대로 아이들은 나를 대할 것이다. 자식에게 굳이 효도할 것을 일일이 강조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비록 노래자(老萊子)나 자로(子路)와 같은 지극한 효(孝)를 실천하지는 못하더라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되어 어찌 미물인 새만도 못한 처신을 할 수 있겠는가!

 

까마귀만도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뉴스거리로 등장한다. 오늘날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전통적 가치관인 효(孝) 사상이 희미해져가는 상황에서 어버이에 대한 자식으로서의 도리(道理)가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몇 가지 고사성어(故事成語)를 통해 자신과 주변을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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