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어(三語)와 직언(直言)

기사입력 2011.04.25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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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

후한(後漢) 말 환제(桓帝, 147∼167)는 환관(宦官)의 힘을 이용해 외척 양기(梁冀)를 제거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환제(桓帝)와 영제(靈帝) 때에는 환관들이 내정에 간섭하고 자기 일족을 지방으로 파견시켜 토지겸병(土地兼倂)을 자행하는 등 횡포가 극심했다.

 

환관들이 정치를 농락하면서 국정이 문란하고 관료들의 부패가 극심해지자 마침내 184년 지방에서 황건적(黃巾賊)의 난이 일어났고, 결국 후한은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렇게 ‘당고(黨錮)의 화(禍)’로 많은 고절(高節)한 선비가 횡사하면서 귀족적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난세(亂世)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세속(世俗)으로부터 도피하거나, 재야(在野)로 물러앉아 정치적 비판과 인물평론을 중심으로 한 정치비평이 크게 유행하였다.

 

청담을 숭상하는 사회풍조가 성행하자 어떤 사람들은 한 마디 묘한 청담으로 벼슬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한 번은 당시 사도(司徒)로 있던 저명한 청담가 왕융이 원첨(阮瞻)이란 자에게 물었다.
“유가의 성인들은 명교를 중시하고 노자, 장자는 자연을 중시하는데 당신이 보기에는 두 학설이 비슷한가, 다른가?” 이에 원첨은 한 마디로 잘라 말했다.
“같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將無同).”

 

같다는 말인지 다르다는 말인지 분명치 않게 말하여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입장에서 해석하기 좋은 방향으로 유도하는 교묘한 말솜씨가 아닐 수 없다. 왕융은 원첨의 대답에 무척 감탄하며 그에게 벼슬자리를 주었다. 난국을 피해가는 그의 처세술이 워낙 뛰어났기에 사람들은 그를 일러 ‘삼어관리(三語官吏)’라고 비꼬았다.

 

이렇게 묘한 말 한 마디로 어느 날 갑자기 벼슬자리에 오르는 소인배나 위선자들이 늘어나면서 관직에 따른 권위가 무너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겉으로는 군자인 척하지만 실제로는 소인배나 다름없는 사람들이 청담가로 이름을 날리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었다.

 

이들 중에는 당시 청담가로 이름을 날리던 서진(西晉)의 왕연(王衍)이라는 자도 있었다. 그는 능력 없는 소인배임에도 불구하고 교묘한 몇 마디 말로 어느 사이에 모든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적인 인물로 칭송을 받고 있었다. 왕연의 벼슬은 날이 갈수록 높아져 갔고 조정의 상하 대신들 가운데도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나 마침내 반란군을 토벌하는 대장군에 임명되었지만, 곧 그의 무능함 때문에 군대가 대패하는 바람에 반란군에게 붙잡혀 참형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왕연은 한탄했다.
“우리가 허풍을 떨지 않고 천하를 다스렸다면 나라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순간적으로 말을 뒤섞어 윗사람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적당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면 무능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럴 때 말을 대강 흐려 위아래 사람의 뜻을 적절히 아우르는 요령은 예로부터 지식인들이 갖추어야 할 필요한 기교로 통했다. ‘삼어(三語)’는 그래서 생겨난 고사이다.

 

역사상 중국인들로부터 최고의 명장(名將)이자 충신(忠臣)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는 남송(南宋) 악비(岳飛)의 억울한 죽음에도 안타까운 이야기가 전해온다. 금(金)나라 침입을 물리친 구국의 영웅인 명장 악비의 공(功)을 시기한 재상 진회(秦檜)는 그를 죽이기 위해 갖가지 내용을 조작해 죄를 만들어 그를 옥(獄)에 가둔다.

 

악비와 함께 전장에서 악전고투하면서 싸웠던 장수 한세충(韓世忠)이 분개하여 진회를 찾아가 따져 물었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죄가 있다는 건가?”
중국 역사상 최고의 간신(姦臣)으로 지탄을 받는 진회 역시 만만치 않은 인물이었다. 그의 대답도 단 세 글자였다.
“아마 없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걸(莫須有)”

 

알듯 모를 듯한 진회의 대답에 기가 막힌 그는 이미 악비를 구할 수 없음을 느끼고 곧바로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고 말았다.

 

역사적 사건 속에서 ‘장무동(將無同)’이나 ‘막수유(莫須有)’ 같은 화법은 능력이 없으면서도 출세를 지향하는 소인배들과 권력을 가진 간신들이 자신의 처신을 교묘하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바람에 후세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뜻으로 회자되고는 있지만, 때로는 분쟁을 조정하고 시비를 하는 양쪽 모두를 만족하게 만들어주는 현명한 화술(話術)이 되기도 했다.

 

이런 화술을 멀리하고 목숨을 걸고 직언(直言)을 한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한결같이 곧은 선비정신과 양심을 바탕으로 처신했다. 공자(孔子)의 제자 가운데 가장 뛰어난 효(孝)의 이론가이자 실천가인 증자(曾子)가 임종을 앞두고 있었다. 마침 노(魯)나라의 대부(大夫) 맹경자(孟敬子)가 문병을 왔다. 맹경자에게 증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새가 죽으려 할 때는 울음소리가 애처롭고, 사람이 죽으려 할 때는 그의 말이 착합니다(鳥之將死 其鳴也哀 人之將死 其言也善). 군자로서 지켜야 할 도(道)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몸을 움직임에는 사납고 거만함을 멀리하고, 얼굴빛을 바르게 함에는 믿음직하게 하고, 말을 함에는 비루하고 어긋남을 멀리할 것입니다.”

 

여전히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말을 두고 갖가지 해석이 분분하다. 의사당 내에서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잘 말하다가도 밖에 나와서 기자가 그 정확한 뜻을 확인하려고 마이크를 들이대면 안색을 바꾸면서 삼어(三語)와 같은 선문답을 늘어놓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중적인 지지를 많이 받고 있는 정치지도자일수록 이런 식의 삼어식 화법에 아주 익숙해져 있다. 이들은 다툼의 현장에서 피해나갈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 한쪽 편을 들기를 주저한다.

 

바야흐로 봄이다. 코끝을 스치는 벚꽃 향기를 음미할 사이도 없이 또 다시 선거철이다. 내년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현장에서 뛰는 사람이나 숨고르기를 하면서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들 모두 하나 같이 쏟아내는 삼어(三語)가 난무하는 걸 보면 여전히 정국은 오리무중이다.

 

우리 정치판에도 증자(曾子)와 같이 목숨을 걸고 소신 있게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음을 확인하고 싶다. 비록 당장은 귀에 거슬리는 말 때문에 손해를 보더라도 긴 안목으로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는 곧은 정치인이 그리운 시기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바깥 공기를 들이마시고자 창문을 연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봄은 아직도 멀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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