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 그들의 대한민국

기사입력 2011.09.0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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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제(漢武帝)는 오랫동안 대외전쟁에 국력을 소모하여 재정이 궁핍해지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소금과 철을 국가가 전매하는 균수평준법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법들은 모두 국가가 상업 경영에 나서서 국고의 수익을 올리기 위한 정책이었다.

막상 이 제도가 시행되자 여러 가지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염철을 집행하는 관리들의 부패와 전횡, 그리고 수량과 규격에만 집착하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품질의 문제, 수요와 공급의 조절을 제때에 맞추지 못하는 문제와 판매가 저조할 때 국가에서 강매하는 등 염철 전매의 폐해 때문에 백성의 원성이 날로 높아져갔다. 무제(武帝)가 죽고 나자 민심을 등에 업고 이 제도를 계속 시행해서는 안 된다는 유가사상가들과 그렇지 않다는 편에 선 조정 대신들 사이에 논쟁이 가열되었다.

마침내 B.C. 81년 2월, 한(漢)나라 소제(昭帝)는 간의대부(諫義大夫) 두연년(杜延年)의 건의로 천하의 현량(賢良)과 문학(文學)을 모아 당시의 경제정책을 논하게 했다. 이때 모인 현량과 문학은 모두 60명이나 되었는데, 이들은 조정의 관리들과 무려 5개월 동안 소금과 철의 전매를 두고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이른 바 ‘염철논쟁(鹽鐵論爭)’으로 불리는 이 토론에서 조정의 관리들은 법가사상(法家思想)을 내세우며 주로 경제의 주체로써 국가의 기능, 국가가 국민생활에 크게 영향을 주는 술, 소금, 철기에 대해 독점공급의 필요성과 국유화의 정당성을 강조하였다. 또, 농업증산보다는 광업개발이나 상업부흥이 경제성장과 부의 창출에서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 제도들이 국가 재정의 안정에 이바지할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생활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오경교수(五經敎授)를 주축으로 한 현량과 문학들은 유가사상(儒家思想)을 근거로 인의(仁義)를 내세우며 끈질기게 소금과 철, 술의 전매제도와 균수법의 폐지를 주장하였다. 즉, 국가가 나서서 독점공급하는 상품은 질도 낮고 시장의 수요와는 맞지도 않아 시장의 혼란을 부르다는 것이다.

오히려, 국가의 독점공급 체제가 과거 소금과 철 생산자들이 관료로 고스란히 임용되어 더 많은 자신의 부를 쌓아 올리는 수단, 정경유착의 부정부패 온상이라고 비난하면서 차라리 생산과 유통은 민간에게 넘기라고 질책을 한다. 한마디로, 국가는 민생의 안정을 위해 농업을 장려하고, 윤리도덕을 강조하는 것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들이 벌인 논쟁을 소제의 뒤를 이어 즉위한 선제(宣帝) 때 환관(桓寬)이라는 지방관리가 정리하여 책으로 펴낸 것이 바로《염철론(鹽鐵論)》이다.

오늘날 기록문학의 선구적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 책의 내용을 보면, 당시 이들의 논의가 염철의 전매제도 존속여부 뿐만 아니라 당시의 국가경영, 경제정책, 국방정책, 관료선발, 도덕문제 등 국가의 제반 정책과 운영에 관하여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 논쟁이 일어난 1년 후, 논쟁에 참여했던 조정의 고급관리였던 승상(丞相) 차천추(車千秋) 와 어사대부(御史大夫) 상홍양(桑弘羊) 등 죽은 황제의 관료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동안 사회적으로 엄청난 논란을 빚어온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투표함을 개봉하지 못한 채 막을 내리면서 정치권에 커다란 후폭풍이 불고 있다. 이 문제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사퇴를 선언하고 10월 보궐선거가 불가피해지면서 곧바로 향후 정국의 최대 변수로 등장했다. 특히 이번 주민투표율 25.7%에 함축된 의미에 대해 여야 사이에 해석이 크게 엇갈리면서 무상복지를 둘러싼 논쟁은 다시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이번에는 경기도의회가 무상급식을 위한 예산 확대를 요구하고 나서 집행부와 갈등을 빚고 있다. 이제 이 문제는 점점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갈 조짐을 보이고 있어, 앞으로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중대한 이슈로 무게감을 더해가고 있다.

정작 이번 사태를 보면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은 투표를 둘러싼 거부운동이다. 투표 참여에 대한 현수막은 하나도 안 보이는데 거리마다 길목이 좋은 곳에는 ‘나쁜 투표 거부’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주민투표를 통해 민심을 확인하자는 것인데 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리는 투표제도를 부정하자는 것인가.

‘나쁜 투표’와 ‘좋은 투표’의 기준은 무엇인가? 국민은 여전히 무상급식에 대해 찬반으로 나뉘어 있고, 모든 선거에서도 여권의 지지층과 야권의 지지층이 나뉘어 있는데 말이다. 내 의견에 찬성하면 ‘좋은 투표’이고 반대하면 ‘나쁜 투표’인가. 그래서 ‘좋은 투표’는 해야 하고 ‘나쁜 투표’는 거부해야 하는가?

국민의 기본 권리이자 의무인 투표를 거부하자고 하면서 그들은 왜 툭하면 민심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민주주의를 부르짖는가? 그들의 이분법적 사고는 곧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이며 나라 전체를 분열에 빠뜨리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이상한 그들의 나라, 그들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환관은《염철론(鹽鐵論)》의 ‘잡론(雜論)’에서 토론을 주도했던 관료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상대부 상홍양은 고금에 정통하고 박식하나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예의를 존중하지 않고 도덕으로 백성을 교화시키지 않았다.(중략) 도덕을 떠난 행동을 하였으니 그 결과 목숨과 이름을 부지하지 못하고 친족까지도 연루되었다. 승상 차천추는 주공(周公)이나 여상(呂尙)과 같은 지위에 있으면서 회의에서는 수레 축과 같은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함에도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아 자신을 보존하였다. 관리들은 국가를 도의에 맞는 정론으로 재상을 보좌할 수 없었고, 한 무리가 되어 행동에 동조하고 위에 있는 자의 뜻에 영합하여 윗사람의 환심을 얻으려 하였으니, 재주는 부족하고 학문은 얕으며 아첨하는 말이나 해대는 무리들이야 어찌 말할 가치조차 있겠는가?”

역사는 흐른다. 그러나 그냥 흐르는 것이 아니다. 역사의 평가는 언제나 냉정하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 아니겠는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것이 역사의 준엄한 평가이다. 그래서 어제의 패배가 오늘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패배가 아니듯이 오늘의 승리도 또한 영원한 승리라 장담할 수 없다.

“곡식이 아무리 창고에 가득 차 있어도 이것을 찧어 밥을 해먹지 않는다면 배고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有粟不食 無益於饑). 바다에서 소금이 나지만 사람이 소금을 만드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것은 소금이 되지 않는다. 산에서 쇠가 나지만 광석을 캐내어 쇠를 가려내고 제련하지 않는다면 쇠가 되지 않는다. 가지고 있는 풍부한 자원을 활용하려는 지혜와 노력이 보태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창고에 있는 조가 그대로 밥이 되어 입으로 들어오기를 바라는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환관(桓寬)이《염철론(鹽鐵論)》에서 경고한 말이다. 여기에서 비롯된 ‘유속불식(有粟不食)’이라는 고사성어는 곡식이 있어도 먹지 못한다는 뜻으로 아무리 귀중한 물건도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쓸모없음을 이르는 말로 회자되고 있다. 즉, 아무리 좋은 제도와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으면 제대로 쓰임을 받지 못한다는 이 말은 현대적인 용어를 말하면 부가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어느덧 민주주의를 회복하자고 애타게 부르짖던 소리도 잠잠해졌고 지방자치가 도입된 지도 벌써 십 수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우리의 정치 현실은 제 자리에서 게걸음을 하고 있다. 여전히 반복적인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을 뿐이다.

무상급식으로 대표되는 무상복지 주장의 이면에는 바로 이렇게 우리 사회의 근본체제를 부정하는 당리당략과 독재적인 요소가 숨어 있음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무리 당리당략이 중요하다고 해도 우리 사회의 근간인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하는 가치에 비길 수 있겠는가?

“옷이 해어졌는데 깁지 아니하면 날로 심해지고, 둑이 새는데 막지 아니하면 날로 불어난다.(衣缺不補 則日以甚 防漏不塞 則日益滋)”고 했다. 갈라진 국론을 다시 결집시키고 상처투성이인 우리 사회를 하루 빨리 치유하려는 대승적인 자세가 필요한 시기이다.

 

 

 
[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 기자 uljin@ulji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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