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육점의 개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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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산을 올랐다. 사방이 훤하게 트인 세상을 바라보며 기지개를 켜고 심호흡을 한다. 오색찬란한 색으로 치장을 한 산과 들판은 얼마 전에 올라 감상했던 세상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들게 올랐던 동료들은 늦가을의 정취에 묻혀 감상할 틈도 주지 않고 또 다시 세상사를 들먹이며 서로 갑론을박한다. 물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이다. 그 가운데 특히 도마 위에 오른 이야기는 단연 이번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
여야를 대표하는 두 후보. 한 사람은 조용하면서도 정직하며 이지적인 모습으로 귀족적인 이미지를 갖고 활동해온 여성 정치인이고, 또 한 사람은 그동안 자기희생을 통해 나눔과 상생을 실천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자는 구호로 서민과 함께 활동해온 시민운동가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두 사람 모두 사회적으로 꽤나 존경 받는 위치에 있었고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많은 지지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베일에 가려 있던 두 후보의 이력과 성향 등 진면목이 하나 둘 드러나면서 그동안 지지하는 정당을 떠나 각각의 후보에게 나름대로 호감을 갖고 있던 사람들을 실망시키거나 심지어는 황당하게 만드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의혹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는 허위 학력과 경력, 겉과 속이 다른 행동, 그리고 지난 시간들을 통해 드러나는 특정 사안에 대한 말 바꾸기 등, 이른 바 비겁하고 치졸하기까지 한 ‘포장(包裝)의 기술’에 대한 비판이었다.
정확하고 정직한 귀족적 법관의 이미지를 풍기면서도 친서민적인 아이콘을 가졌다고 자랑해오던 사람답지 않게, 실상은 서민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삶을 추구하면서 살아온 그녀에게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서민적이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또, 아름다움과 참여, 나눔, 상생 등과 같이 이 세상에서 값나가고 좋은 단어를 내세우며 서민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포장해 왔던 그 역시 막상 검증이 시작되자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드러나는 등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늘 회자되어 오던 각종 의혹을 피해가지 못했다.
사람들은 두 사람의 검증에 대한 공방 과정을 지켜보면서 처음에는 갸우뚱거리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실망하기 시작했고 때로는 황당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동안 사회적으로 엄청난 공익(公益)을 실천해왔다고 자랑해왔던 포장의 이면에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온갖 의문들이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은 사람들로 하여금 ‘양고기를 걸어놓고 실상은 개고기를 팔았다,’는 양두구육의 고사를 떠올리게 했다.
원래 양(羊)의 머리를 걸어 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으로 회자되는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는 고사성어는 “懸羊頭賣狗肉”의 준말이다. 즉, 실제로는 나쁜 물건을 팔면서도 좋은 물건을 간판으로 내세우거나, 속으로는 좋지 않은 본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표면으로는 그럴 듯한 대의명분을 내걸고 있는 것을 풍자하는 말이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여러 관문이 있다. 그 관문의 마지막은 바로 국민들 앞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진솔하게 꺼내놓고 당당하게 검증을 받는 것이다.
그 과정은 너무나 혹독하여 때로는 자신도 감내하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심판대에 오르기를 주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엄정한 도덕성과 청렴함 또 민주적 절차와 방법을 통해 성장과 분배, 개발과 보존, 교육과 선진복지정책 등 장차 이 나라를 작지만 강한 나라로 이끌어 갈 정책과 비전을 철저하게 검증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무대에 오른 사람의 이력을 검증하며 선택의 여부를 저울질한다.
이런 속성 때문에 장차 그 무대에 오르려고 마음을 먹은 사람이라면 평소부터 한 길로 올바르게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고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가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즉, 왕도(王道)나 지름길이 없다는 뜻이다. 모든 일은 반드시 훗날 그 흑막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송나라 신종(神宗) 때 왕안석의 신법(新法)이 시행되자, 반대파인 구법당(舊法黨)에 속했던 소동파(蘇東坡)는 호북성(湖北省) 황주(黃州)로 좌천되었다. 그는 시름을 달래기 위해 틈나는 대로 주변의 명승지를 유람하였는데 어느 날 자주 다녔던 적벽(赤壁)을 찾았다. 늦가을이 되어 다시 찾은 적벽의 경관은 물이 가득 차 있던 여름날의 모습과는 또 달랐다. 그는 떠오르는 시상(詩想)을 적어 2수의 부(賦)를 지었다. 바로 오늘날 명문으로 전하는 후적벽부(後赤壁賦)이다.흐르는 강물 소리 요란한데, 깎아지른 낭떠러지는 천 길이나 되누나(江流有聲 斷岸千尺).
산 높고 달은 기우는데, 물이 빠지니 바위 드러나네(山高月小 水落石出).
일찍이 세월이 얼마나 흘렀다고(曾日月之幾何),
이리도 강산을 다시 알아볼 수 없단 말인가(而江山不可復識矣)!이 싯귀에 나오는 ‘수락석출(水落石出)’이라는 말을 옛 어른들은 예사롭게 넘기지 않았다. 여름철 물이 가득한 호수에 숲이 우거져 아름답던 적벽도, 가뭄이 이어진 늦가을 물 빠진 호수바닥에 돌이 드러난 황량한 모습으로 바뀐 모습처럼, 세상의 어떤 일이라도 반드시 훗날 흑막(黑幕)이 걷히고 진상이 드러남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인용하면서, 늘 처음처럼 초심(初心)을 잃지 말고 성실하게 살아가라는 경고의 메시지로 삼아 후세에 전한 것이다.
초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살다보면 때로는 심한 유혹에 망설이기도 하고 뜻을 잃고 방황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떤 일을 하든 적어도 지도자의 반열에 오르려는 뜻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기관리에 엄격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항상 기본기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남에게는 관대하면서도 자신에게는 엄격한 기준을 가진 잣대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을 ‘진정한 선비상’으로 제시했다.
자하(子夏)가 공자(孔子)에게 당시 위(衛)나라 사람들 사이에 널리 애창되고 있던 노래의 내용에 대해 그 의미를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다음이니라(繪事後素)” 이에 자하가 다시 물었다.
“예(禮)는 나중입니까?” 공자가 칭찬하며 말했다.
“나를 일깨워 주는 이는 바로 그대로다. 비로소 더불어 시(詩)를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起予者商也, 始可與言詩已矣)”
공자는 동양화에서 하얀 바탕이 없으면 그림을 그리는 일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소박한 마음의 바탕이 없이 눈과 코와 입의 아름다움만으로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일러준 것이다. 이에 자하는 밖으로 드러난 형식적인 예(禮)보다는 그 예의 본질인 어진(仁) 마음이 중요하므로, 형식으로서의 예는 본질이 있은 후에라야 의미가 있는 것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깨끗한 바탕이 있은 뒤에야 가능하다. 따라서 여기에 나오는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말은 오늘날 ‘모름지기 사람은 좋은 바탕을 먼저 기른 뒤에 문식(文飾)을 더해야 한다.’는 말로 회자되는 고사성어다. 이 말은《논어(論語)》〈팔일(八佾)〉에 나온다.
서울시장 선거라는 대형 이슈로 한바탕 소동을 겪은 우리 사회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임기가 불과 2년여밖에 남지 않은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치르면서 국민들로 하여금 마치 대통령선거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었던 당선자의 무지개빛 공약들을 우리는 기억한다.
더불어 우리가 결코 잊지 않는 게 또 있다. 당선만 되고나면 후보시절의 그 찬란했던 공약(公約)들이 슬그머니 허공에서 안개로 바뀌는 오리무중의 공약(空約)이 되곤 하는 바람에, 자신의 선택을 자책하면서 거짓 공약에 분노하던 기억들을 말이다.
정말 며칠 동안 우리는 너무나 행복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당장 우리 앞에는 어지간한 선진국이 부럽지 않은 대한민국이 활짝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번만큼은 검증과정에서 터져 나왔던 갖가지 비판에 대해 자신이야말로 세상의 공익을 위해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여가며 항변했던 것처럼 제발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는 책임 있는 정치인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들로 하여금 또 다시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자책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정육점을 찾는 소비자들은 적어도 한 눈에 양고기와 개고기 정도는 구별할 줄 아는 수준에 이르렀다. 혹시라도 살아오면서 자의든 실수였든 한 때 양고기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내다판 이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면서 사람답게 사는 새로운 삶을 구상해 보는 것도 늦지는 않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