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海賊) 유감

기사입력 2012.04.05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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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
“내가 죽으면 호국용(護國龍)이 되어 왜적을 막아 나라를 평안하게 지키겠으니 내 시신을 화장하여 동해바다에 묻어 달라”

삼국통일을 이루었던 신라 문무왕(文武王)이 남긴 유언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역사에서 왜구의 침입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역대 왕조의 정치, 사회적 변화에 많은 피해를 주었다. 왜구의 침략과 약탈에 시달리던 신라의 내물왕은 급기야 적대관계에 있던 고구려에 원군을 요청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광개토대왕은 군대를 보내 도망가는 왜구를 추격하여 김해지방까지 진출한다. 그 바람에 엉뚱하게도 가야세력이 크게 위축되어 결국 연맹체가 해체되는 결과를 낳았으니 왜구는 우리 고대사의 세력판도 변화에 엄청난 영향을 준 해적집단이었다.

이렇듯 당시 우리나라 연안 바다는 해적들의 천국이었다. 중국의 많은 역사책에 등장하는 ‘신라노(新羅奴)’는 해적에게 잡혀 노비로 팔리는 신라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당나라에서 무령군소장으로 근무하던 장보고(張保皐)는 신라노의 참상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아 신라로 돌아와 흥덕왕으로부터 군사 1만을 얻어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흥덕왕 3년, 828)하고 해적들을 소탕하였다. 그는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신념으로 중국, 일본을 연결하는 장대한 해상항로를 개척하였으며 중계무역을 실시하고 이슬람 세계와도 교역한 아시아 최초의 민간기업인이자 세계적 무역왕이 되었다.

장보고가 암살되고 청해진이 해체되면서 우리나라 연안은 다시 왜구가 장악했다. 일본의 이키(壹岐), 쓰시마(對馬), 기타큐슈(北九州),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 등을 근거지로 하여 출몰하던 왜구는 고려 중기에 이르면서 그 규모가 100~500여 척의 선단을 이루며 떼를 지어 한반도 전역의 해안은 물론 내륙의 깊숙한 곳까지 활동무대를 넓히면서 노략질을 하였다. 왜구는 지방에서 조세(租稅)를 거두어 서울로 올라가던 곡물운반선(漕船)을 노렸으며, 재물은 물론 사람까지 잡아다 노예로 팔아넘기는 등 만행을 일삼았다. 뿐만 아니라 왕릉을 도굴하는 등 각종 문화재를 훔쳐갔다. 급기야 왜구를 소탕하면서 명성을 얻고 세력을 키운 신흥무장이었던 이성계는 이를 바탕으로 마침내 새로운 왕조를 세우는 데 성공하였으니 어쩌면 조선왕조의 개창에는 왜구의 역할이 상당(?)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해적(海賊, Pirate)이란 해상에서 배를 습격하여 재화를 강탈하는 도둑을 일컫는 말이다. 국제법에서는 공해상(公海上)에서 국가 또는 정치단체의 명령 내지 위임에 의하지 않고, 사적(私的) 목적을 위해 선박에 대한 약탈과 폭행을 자행하여 해상 항행을 위험하게 하는 자를 해적이라 하고 그 약탈과 폭행을 해적행위로 규정짓고 있다. 해적은 '인류의 공적(公敵)'으로 간주되어 어느 나라의 군함도 이를 나포하고 자국(自國)의 국내법에 의거하여 처벌할 수 있다.

해적의 발생은 인류의 해상교통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된다. 해적의 창궐은 국가의 통제능력과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다. 강력한 정부가 있는 지역에서는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해 우리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소말리아 해적 사건’을 떠올리면 쉽게 알 수 있다. 소말리아 해안에서 해적들이 창궐하고 있는 이유도 소말리아의 정치적 혼돈과 중앙정부의 통제력 상실 때문이다.

소말리아가 옛날부터 해적의 소굴이 된 것은 아니다. 1980년대에 내전이 시작되면서 제대로 된 단일 통치력은 물론 대외적으로도 주권을 수호할 강력한 권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외국 배들은 주인이 없는 소말리아 영해를 마음대로 드나들며 물고기를 잡고 자국에서 처리하기 곤란한 독성 폐기물들을 쏟아 버렸다. 말 그대로 주인 없는 바다가 된 것이다.

90년대 초부터 소말리아 어부들은 나라가 지켜주지 못하는 바다를 스스로 지키기 위해 단체를 조직하고 무장했다. 그리고 자국 바다에서 불법행위를 하는 외국 선박들을 응징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지금 국제적인 공공의 적으로 간주되는 악명 높은 소말리아 해적의 출발이다. 해적 조직들이 ‘자원 해안경비대(National Volunteer Coast Guard)’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된 자발적 해안 경비는 언젠가부터 공세적인 해적질로 바뀌었다. 고기를 잡는 것보다 사람을 잡는 편이 더 수익이 된다는 점을 소말리아 어부들이 깨닫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바로 이들이 지난 날 우리의 연안을 장악하고 날뛰던 왜구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일명 ‘고대녀의 해적기지 발언’이 우리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모 정당의 청년 비례대표의 유력한 후보였던 김지윤(28)씨가 자신의 트위터에 “제주 해적기지 건설을 반대한다.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 지켜냅시다”라는 글과 사진을 올리고 해군을 해적으로 지칭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해군은 즉각 “전 해군 장병의 고결한 명예를 심대하게 훼손하고 모욕했다”며 김 씨를 고소했고, 김씨는 “개개인 장병을 ‘해적’이라 비난한 것은 절대 아니다. 국방부와 해군이 왜곡하며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문제가 불거지자 당황한 듯 뱉어낸 그녀의 변명은 설득력도 없고 초라해 보인다. 물론 그녀가 말한 ‘해적’이 장병 개개인을 겨냥한 것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 20대 젊은이의 대부분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복무를 하는 현실 속에서 적어도 정치활동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군에 대한 발언에 좀 더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 발언의 진의가 어떻든 이렇게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해군기지 건설 반대단체들도 계속해서 말을 바꿔가며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 그들이 반대 근거로 내세우는 논리에는 허위와 모순이 너무 많다. 관광지이며 평화의 섬에 군사시설을 들일 수 없다는 주장은 해양의 평화를 지켜야 제주도도 지켜낼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과거 자신들의 주장과도 상반된다. 제주해군기지가 미군기지라는 주장 역시 국제 정치의 균형감각을 잃은 소리이다. 미군 주둔을 위해 300만평 규모의 지상시설을 갖춘 일본 요코스카(横須賀) 항과 달리 제주해군기지에는 미군함정이 주둔할 수 있는 지상시설이 없다. 요코스카항을 모항으로 미 제7함대가 옮겨오기에 제주도는 지리적, 전략적으로 가치가 떨어진다.

가장 큰 문제는 환경이 파괴된다는 허위 주장이다. 기지가 건설되면 멸종한다는 말똥게는 강정마을 이웃에서도 서식이 확인됐고 300여 마리는 포획해 인근 개울로 옮겼다. 말똥게 논란을 보면 한때 해프닝으로 끝났던 ‘천성산 도룡농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그들이 보존하자고 목 놓아 외치는 구럼비 바위는 강정마을 뿐만 아니라 제주도 전 해안에 약 10%에 걸쳐 나타나는 지질학적으로 그저 평범한 바위에 불과하다.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구럼비 바위에 페인트로 구호를 써놓은 행각은 차라리 엽기에 가깝다. 강정마을이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이라는 주장도 명백한 허위로 밝혀졌다.

중국은 2050년 대양해군 건설을 목표로 빠르게 해군력을 증강하면서 2006년부터 이어도가 중국의 관할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제주도 남쪽 바다를 중국의 내해(內海)로 만들겠다는 의도가 내포된 것이다. 최근 중국이 이어도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하고 나선 것도 그들의 치밀한 전략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해양 위협이 가시화 되면서 우리나라는 북한에 의한 육지 도발뿐만 아니라 해양안보의 위협에도 직면하게 됐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노무현 정부에서 제주도에 해군기지 필요성을 호소하면서 건설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뀐 후 그들은 말을 바꾸었다. 중국의 해양 세력화와 우리가 처한 안보 위협에는 눈감은 채 반미(反美), 반정부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말 바꾸기를 상습적으로 하는 모습보다는 입만 열면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정치를 한다는 자신들의 주장에 충실해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한때 모 정당 비례대표로서 국회 입성의 유력 선두주자였던 고대녀 김지윤씨의 추락을 보면서 ‘입(口)이 재앙의 근원(口禍之門)’이라고 했던 옛 어른들의 말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입방정을 떨었어도 자신의 실언을 바로 인정하고 자세를 낮추었더라면 이렇게 추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상용(商容)은 노자(老子)의 스승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세상을 뜨려 하자 노자가 마지막으로 가르침을 청했다. 상용이 노자를 향해 입을 벌리며 말했다.
“혀가 붙어 있느냐?”
“네 있습니다.”
“이(齒)는?”
“하나도 없습니다.”
“알겠느냐?” 노자가 대답했다.
“예. 강한 것은 없어지고 부드러운 것은 남는다는 말씀이시군요.” 상용은 미소를 지으며 돌아누웠다. 부드러움과 낮춤의 철학, 즉 노자의 유약겸하(柔弱謙下)는 여기에서 나왔다. 허균(許筠, 1569~1618)의 〈한정록(閑情錄)〉에 보인다.

1945년 8월 “조국광복에 즈음하여 이 나라 해양과 국토를 지킬 동지를 구함”이라는 광고를 하고, 200여명의 장병들을 모아 그해 11월 11일 11시 서울 관훈동 표훈전에서 해방병단(海防兵團) 결단식을 가진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해군의 모체이다. 1894년 조선수군이 폐지된 이후 51년 만에 조국의 바다를 스스로 지킬 수 있게 된 우리 민족의 역사적인 재출발이었던 것이다. 그 후, 지난 60여 년을 철통같이 우리의 바다를 지키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 최전선에서 희생하고 있는 이들을 두고 ‘해적’이라고 폄하한다면, 도대체 이들로부터 보호 받고 있는 우리 국민은 해적들의 부모형제에 불과하단 말인가? 그런 망언을 쏟아내는 당신들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제주해군기지 건설은 새로운 시대 해양 위협에 대처하고 전략물자의 수송로를 확보하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우리나라 물동량의 99.8%가 바다를 통해 수송된다. 해로(海路)는 우리의 생명선이며 제주 남방해로는 우리나라의 중요한 해양 방어선이다. 제주도와 이어도, 7광구와 어족자원, 해저 광물자원 등을 지킬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인 제주해군기지에 대한 소모적인 반대를 하루 빨리 끝내고 해양안보 확보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우리의 영토는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한다. 우리가 강력한 해상통제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우리 해상영토는 또 다시 왜구와 같은 해적들이 날뛰는 무법천지로 전락할 것이 아니겠는가? 하루라도 빨리 제2의 쳥해진이라 할 수 있는 제주 해군기지를 전진기지로 삼아 해상왕 장보고가 이루었던 옛 영광을 우리의 해군력으로 재현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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