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한 노인, 나의 아버지...
기사입력 2006.01.1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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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우리네 인생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너무 슬펐습니다.
허름한 바지에 넥타이끈으로 허리를 엉성하게 메어서 자칫 속옷까지 보일거같은 차림에 걸쳐입은 윗옷은 때가 묻어 꾀재재하고.. 상상만해도 얼마나 뵈기싫은 모습인가? 아마 길거리에 다니는 부랑자나 정신이상자의 전형적인 차림이 아닐까? 그런 차림의 남자가 옆으로 온다면 우선 겁나서...아님 더러워서...다들 피하리라. 나도 그랬다.
젊은 사람이나 나이든 사람이나 넥타이끈으로 아무렇게나 허리띠를 졸라매고 세수도 안한거같은 부시시한 모습으로 있는거만큼 보기 싫은 모습은 없었다. 돈이 있어서 잘 차려입고 못차려입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건 그 사람의 게으름탓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너무나 너무나 보기싫은 차림....... 친정집 들어가는 길목은 언제봐도 따뜻하고 정감어린 모습이다. 몇백년이나 나이를 먹었는지 아무도 알수 없는 늙은 느티나무랑 뽀쪽한 교회탑이 있는 좁은 길로 들어서면 엄마의 푸근한 젖냄새도 느껴진다.
아버지가 편찮으시단 소릴 듣고도 매번 노환이었든게 기억나서 금방 달려가지 못한 무심한 딸. "괜찮다. 오지마라" 형편어려운 딸을 배려한 엄마의 말인줄 알면서도 은근히 그말을 100% 믿으며 '괜찮으시겠지...' 내 스스로를 합리화시켰던 치졸한 딸인 내 모습에 가슴아픈 서러움이 밀려온다.
좁은길이라 속도를 낮추며 천천히 친정집쪽으로 코너를 도는데 저 멀리서 노인 한분이 지팡이를 들고서는 느린 걸음으로 구부정하게 걸어오신다. 거리가 제법 먼데도 불구하고 앙상한 몸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그냥 무심하게 바라본 내눈길에 허름한 바지에 넥타이로 허리를 엉성하게 졸라맨 한없이 초라한 노인한분이 투영되어왔다.
차가 가도 옆으로 비켜서실 생각도 않고 그냥 한복판으로 걸어오는데 크략숀을 누를수도 없다.
저리 늙고 초라한 모습의 노인분은 뉘실까? 자식도 며느리도 없나? 노인분과 내 차가 거의 마주칠 정도가 되어 일단 차를 세웠다.
그리고 내렸다. 근데 노인앞으로 다가간 나는 그만 그자리에서 풀썩 주저 앉아버렸다. 폭포수같은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 초라한 노인. 내가 평소에 그리도 협오스러워하든 차림의 노인이 다름아닌 내 아버지였으니... "아버지. 어디 가세요?" "뉘시드라?" 아아........ 아버지를 집으로 뫼시고 들어왔다.
노인네 두분만 사는 시골집은 엉성하고 을씨년스러웠다. 세살먹은 어린애처럼 쉰살이 넘은 딸의 손에 이끌려서 고분고분 들어오는 아버지는 더이상 옛날의 내 아버지가 아니었다. 정신이 멀쩡하다가도 한번씩 치매끼가 보여서 감시하는 엄마눈을 피해 나가신다니... 어딜가냐믄 동구밖으로 딸네 마중을 간단다.
내가 보긴 분명히 치매끼인데 그냥 한번식 정신이 나간거외엔 아무렇지도 않다는 엄마의 자가 진단. 하긴 당신조차도 떠먹여주는 밥도 먹기싫을 정도의 나이신데 누가 누굴 진단한단 말인가? 병원엘 가도 사실만큼 사신 나이탓으로 돌리고 별 뽀족한 수가 없다니... 그냥 집에서 조용히 눈 감으실날만 기다리란다.
유난히 깔끔스러우신 아버지라 엄마의 맘고생을 많이 시키셨다. 공직을 물러나서 낙향하여 오랫동안 노인회장을 맡으셨는데 그것도 뭔 벼슬이라고 항시 양복과 다림질한 와이셔츠 차림으로 나가셔서 엄마의 푸념아닌 원성을 샀던 아버지. 나처럼 놀기 좋아하고 돌아다니는걸 좋아해서 얼마전가지만해도 자전거로 이동네 저동네 마실을 댕기셨고... 아버지의 뚜렷한 정신은 맨날 까먹고 허둥대는 내가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작은땅 한평이라도 놀리지 않는 부지런함과 객지에 있는 자식을 위해 안심어도 될 농작물을 고집스레 심어 나눠주시던 아버지가 너무나 초라한 모습으로 내 앞에 계시니.... 이웃동네 잔치에 잠시 들렸다오신 엄마는 아버지 옷입은 모습을 보고 불같이 화를 내셨다. 여름날씨에 빨아놓은 겨울옷을 어디선가 꺼집어내 입으셨으니... 엄마도 이미 옛날의 엄마가 아니었다.
아버지 말한마디면 세상없어도 복종하던 연약한 모습이 아니고 누나처럼 너무나 당당하게 군립하는 모습이니... 나이먹어 남과 여의 뒤바뀐 모습에 쨘한 연민의 정이 가슴을 타고 왔다. 한숨이 나왔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오신 아버진 옷을 갈아입으시고 그제서야 나를 보고 왔냐며 그리도 좋아하셨다. 막막했다. 깍쟁이같은 올케에게 시부모는 먼 이방인였다. 장남도 아니고 맏며느리도 아닌데 왜 자신이 부모를 책임져야 하난 소리는 나를 절망케했다.
그럼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된 장남과 맏며느리를 불러오란 말인지... 효자인 오빠가 이꼴을 봤다면 지하에서도 얼마나 가슴을 치실까? 남동생 역시 깍쟁이같은 올케와 부모문제로 얼마나 싸우며 괴로울껀지 이해가 갔다. 누가 누굴 탓하랴.... 옛날의 내 처지였다면 두말도 않고 우리집으로 모셨으리라 그러나 나도 이젠 옛날의 내가 아니었다. 좁아빠진 집에서 내 여건상 도저히 친정부모를 모실 형편이 안되니... 그렇다고 내가 못하는걸 여동생에게 떠넘길수는 더더욱 없었다.
여동생도 직장 나가는데다 홀시어머니를 뫼시고 사니... 이도 저도 못한 난 그냥 망연자실해서 하루 하루 시간만 개기고 있었다. 유료양로원은 가난한 사람에겐 꿈같은 소리다. 첨으로 가난하다는걸 피부로 체험했다. 내가 돈이 있으면.... 그러나 어쩌랴. 그건 꿈이고 희망이며 현실은 내가 돈이 없으니...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그 누가 말했든가? 엄마는 괜찮다고 자꾸만 올라가라고 재촉을 하셨다. 반찬해놓고 대청소 해놓고 빨래해놓고 내가 할일은 돈 안드는 그것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연신 빵이랑 내가 만든 간식을 드시면서 어린애처럼 좋아하셨다. 벽을 쳐다보니 대통령과 웃으면서 찍은 사진이 처량하게 걸려있는데.... 한사람의 인생이 사라져가는 과정인가보다. 88세 오래 사셨지만 자식에게 있어서 오래란 소린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 부모니까... 무거운 마음으로 일주일만에 상경을 했다. 떠나는 사람 남아있는 사람 다 힘들고 괴롭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진 또 쌀을 담아주신다. 쌀. 쌀.... 맨정신으로 주시는 쌀을 어떻게 안가져올수 있단말인가? 오늘은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내 마음만큼이나 서럽게... 전화를 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엄마의 대답은 똑같다.
"괜찮다. 걱정하지 말어라" 그말에 애써 위안을 얻어며 억지로 내 일상으로 돌아온다. 인제는 돌아가셔도 고통없이 잠자는듯 돌아가시기만을 빌면서...오래 사시란 소린 차마 못하겠다. 인생은 이런건가보다. 다음은 내 차례겠지....
[-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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