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학부모의 깨달음
-
어느순간 나는 딸아이가 잠시라도 놀고 있는 것만 보면 "공부 좀해라"고 잔소리하는 것이 입버릇처럼 되어 버렸다.
물론 내가 따라다니면서 잔소리를 해도 딸애가 바로 책상에 앉아 책을 편다든가 하는 행동의 변화가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딸애가 숙제나 그날 해야할 공부를 먼저 하지 않고 TV에 넋이 빠져있거나, 아님 동생이랑 티격태격 하는 것도 큰 문제이지만 내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한마디로 노는 꼴을 못 본다는 것이 문제다.
지난 6월에 초등학교에서 학력평가시험을 치루었다. 평소에 반에서 치루는 쪽지시험과는 틀리게 전 초등학생들이 다 보는 시험이라고 생각하니 시험치기 몇 주전부터 딸애를 닥달하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여 어떻게든 공부를 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리게 하려는 나의 의도는 학교와 학원 숙제를 하느라 잠자는 시간 전까지 쩔쩔매는 딸아이 앞에서 어이없이 무너지기 일쑤였다.
나중에는 제풀에 지쳐서 '그래, 너 평상시에 공부 그렇게 하지 않다가 시험 점수나오면 뒤로 까무라칠 걸'하는 생각으로 잔소리를 잠시 접었다.
시험 당일날 저녁에 시험 잘 봤냐고 물었더니 관심도 없다는 투로 잘 모르겠다는 대답을 했다.
저 반에서 그래도 애살있게 공부 좀 하는 애들은 다 자기 점수를 알아서 못나온 과목 보충하느라 정신없던데 이건 강건너 불구경하는 꼴이다.
정말 속이 터져서 뒷머리가 당기고 가슴이 벌렁벌렁거렸다.
우째 이런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지만 하룻밤 지나고 나니 딸애의 모습에서 옛날의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내가 어릴땐 엄마가 장사하느라 딸이 공부하는 것에 신경을 미처 쓰지 못하셔서 내 맘대로 숙제만 하고 나면 공부는 뒷전이었었는데, 개구리 올챙이시절 생각하지 못한다고 엄마의 옛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고 야단만 쳤으니...
내가 어릴 땐 지금처럼 사교육이 발달되지 않아서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외엔 별다른 과외활동이 없었지만, 지금은 너도 나도 과외다, 영어학원이다, 속셈학원이다 해서 학원을 몇 군데나 다니다 보니 한편으론 아이들이 자유를 잃어 버린 것 같아서 너무 불쌍하다.
만나는 엄마들마다 자녀들이 학원이나 뭐다 하면서 밤 늦게까지 다니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안스럽다고 한다.
하지만 "어쩌겠냐, 현실이 맘놓고 놀지 못하고 다른 집 애들과 비교하면 시키지 않고 내 버려두면 자꾸 불안해 진다"는 것이 엄마들의 결론이었다.
며칠 뒤 딸애와 함께 차분히 이야기를 했다.
공부가 네 삶의 전부는 아니지만 학생 때는 공부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며, 너도 마음만 먹고 열심히 하면 잘할 수 있다고 격려를 해 주었더니 야단칠때보다 받아들이는 반응이 순조로웠다.
그리고 순순히 책상 앞에 앉아 (비록 숙제를 하긴 했지만)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는 스스로의 마음가짐도 가지게 되었다.
나 또한 딸아이의 달라진 모습을 보면서 다짐했다.
앞으론 공부하라고 아이를 닥달만 할 것이 아니라 먼저 책을 펴놓고 공부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