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망의 계절

기사입력 2012.11.05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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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
한 조직의 리더를 보좌하는 참모는 리더의 뜻에 순응해야 하는 부하와 달리 자신의 창의적 인 견해와 거침없는 조언을 자유로이 전달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지닌 협력자를 뜻한다. 흔히 “난세(亂世)에 영웅이 난다”고 하지만,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난세에 훌륭한 참모를 둔 자가 영웅이 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漢) 고조 유방(劉邦)에게는 장량(張良)이 있었기에 초패왕 항우를 제압할 수 있었으며, 유비(劉備)에게는 제갈량(諸葛亮)이라는 걸출한 참모가 있었기에 20여 년의 길고 길었던 떠돌이 생활을 마감하고 촉(蜀)의 황제로까지 등극할 수 있었고, 조조(曹操)에게는 순욱(荀彧)이라는 명 참모가 있었기에 중원을 제패할 수 있었다.

특히, 조조로부터 “나의 장자방"이라는 극찬을 들었던 순욱은 “헌제를 옹립한 뒤 중원에 세력을 키워야 한다.”는 결정적인 전략을 조언하였다. 천하의 흐름을 정확히 읽어내는 안목을 갖추고 있었던 그는 사심을 버리고 곽가(郭嘉)와 정욱(程昱) 등 수많은 인재를 발탁하여 천거함으로써 훗날 조조로 하여금 중원의 패자가 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말 그대로 진정한 참모의 전형인 셈이다.

《삼국지》〈순욱전(荀彧傳)〉에서는 그를 일러 뛰어난 재능을 지닌 사람으로 제왕을 보좌할 만한 큰 그릇, 즉 ‘왕좌지재(王佐之材)’라고 평하고 있다.

조조가 순욱과 같은 많은 명 참모들을 휘하에 거둘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그가 3차례에 걸쳐서 내린 인재를 초빙하는 칙령 때문이었다. 특히 건안(建安) 8년에 발표한 포고령에서는 신분의 높고 낮음을 묻지 않으며, 그 사람의 청빈함이나 덕성 등은 보지 않고 오로지 능력 제일주의로 사람을 뽑겠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조조가 건안(建安) 15년(AD 210)에 공포한 〈구현령(求賢令)〉의 내용을 보면 곳곳에서 인재를 갈망하는 그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중략)… 예로부터 천명을 받아 임금이 되었거나 또는 중흥(中興)한 임금 중에서 일찍이 현인(賢人), 군자(君子)를 얻어 그들과 더불어 천하를 다스리지 않은 자가 있었던가! 그러나 현인을 구하려 애를 써도 그들이 은거해 있는 곳을 나오지 않는다면 만날 수 없으니 뛰어난 사람은 구할 수 없도다. 지금 천하가 아직 평정되지 아니하니, 특히 현인을 급히 구해야 할 시기이라. …(중략)… 만약 반드시 청렴한 선비라야 등용할 수 있다면, 제 환공은 어떻게 세상을 제패하였겠는가? 지금 천하에 갈옷을 입었으나 옥 같은 마음을 품고서 위수(渭水)가에서 낚시질하는 자가 없겠는가? 또, 형수를 도적질하고 금을 받았지만 위무지(魏無知)를 만나지 못한 자가 없겠는가? 그대들도 나를 돕고자 한다면 비록 흠결이 있는 자라도 오직 재능만 보고 천거하여 내가 그들을 얻어 기용할 수 있도록 하라.(自古受命及中興之君,曷嘗不得賢人君子與之共治天下者乎!及其得賢也,曾不出閭巷,豈幸相遇哉?上之人不求之耳。今天下尚未定,此特求賢之急時也。…(中略)…若必廉士而後可用,則齊桓其何以霸世!今天下得無有被褐懷玉而釣於渭濱者乎?又得無有盜嫂受金而未遇無知者乎?二三子其佐我明揚仄陋,唯才是舉,吾得而用之)”

칙령의 내용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조조는 관중(管仲)과 강태공(姜太公), 한(漢) 고조(高祖)의 책사 진평(陳平)의 예를 들어가면서 비록 흠결이 있더라도 재주와 능력이 출중하다면 누구나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조조는 그 이유로 ‘태평성세에는 덕성을 봐야 하지만, 난세에는 재능이 우선한다(治平尙德行, 有事賞功能).’고 밝히고 있다. 당시 엄격한 유교적 전통이 이어져오는 현실에서 이러한 파격적인 내용을 칙령으로 발표한 것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대선후보들 사이에 ‘인재 모시기’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각 후보 진영에서는 이른 바 천하의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해 온갖 그럴듯한 대책을 발표하면서 막바지 공을 들이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각 후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소통과 통합’을 부르짖으며 저마다 자신의 행보가 소통을 위한 국민 대통합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소통과 통합’이 이번 대선의 주요 화두로 떠오른 것은 바로 중도층 공략 때문이다.

지지율 격차가 장기간 오차범위 내에서 초접전 양상을 보이는 상황에서 각 후보 진영은 대선승리를 위해서는 확실한 지지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중도층을 어떻게 끌어안느냐가 승부의 관건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유권자들의 이목을 모을만한 외부 인사 모셔오기 싸움은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일이지만, 이번 대선에서 더욱 유별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각 선거캠프는 어떤 인물들이 지지 대열에 합류하느냐에 따라 대선 판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보고 인재 모시기에 사활을 걸다시피 하고 있다.
이렇듯 인재 모시기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최근에는 ‘묻지 마 인재 영입’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다. 상대 진영의 인재 영입을 두고 이념과 노선을 초월해 아예 다른 혈액형의 피까지 수혈하고 있다면서 비판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단세포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동서고금의 역사적 교훈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런 난세에는 싸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보잘 것 없는 능력이라도 내세우는 사람이 있으면 조건 없이 끌어들여야 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기 때문이다.

조조가 〈구현령〉을 통해 관중과 진평의 예를 언급하면서 천하에 던진 메시지는 간결하고 분명하다. 오직 능력제일주의, 그것만 보겠다는 것이었다. 먼저, 춘추시대 관중(管仲)의 예를 들었다. 흔히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고사를 통해 알려진 관중은 자신의 둘도 없는 친구인 포숙아(鮑叔牙)와 장사를 같이 했지만, 항상 친구보다 이익을 더 많이 챙기는 부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제(齊) 환공(桓公)은 그의 능력 하나만을 보고 등용하여 천하의 패자(覇者)가 될 수 있었던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두 번째는 진평(陳平)의 예를 들고 있다. 한 고조 유방이 항우와 천하의 패권을 다투고 있을 때, 진평이란 인물이 위무지(魏無知)의 천거를 받아 그를 찾아왔다. 이때 측근인 주발(周鉢)과 관영(灌嬰)은 진평이 형수와 간통하고 뇌물을 받았다는 결정적 흠결이 있음을 들어 극렬하게 반대했다. 유방은 즉시 위무지를 불러 왜 그렇게 흠결이 많은 자를 천거했느냐고 문책했다. 그러자, 위무지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대답을 한다.
“신(臣)이 진평을 천거한 것은 오로지 그의 능력 때문이었는데, 지금 폐하께서 물으시는 것은 그의 행실입니다(臣所言者, 能也 陛下所問者,行也). 행실이 바르다 한들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한 고조는 크게 느낀 바 있어 그를 책사로 등용하였고, 결과적으로 훗날 몇 번이나 죽음의 위기에서 그의 도움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

오늘날 세계 강국으로 부상한 중국을 보면서 모택동(毛澤東)의 ‘홍전론(紅專論)’과 등소평(鄧少平)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떠올린다. ‘홍전론’이란 ‘又紅又專’ 개념, 즉 이데올로기(紅)도 중요하고, 또한 국가발전을 위한 전문성(專)도 중요하다는 개념이다.

사람을 쓸 때 개인의 덕성과 능력을 모두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이다. 그러나 등소평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중국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는 ‘고양이는 쥐만 잘 잡으면 그뿐, 그 색깔이 희건 검건 상관하지 않는다.(不管黑猫白猫,能捉老鼠的就是好猫)’는 말로서 개인의 능력만을 보겠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천명하였다. 등소평은 당시의 중국을 난세로 간주하였으며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인재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흑묘백묘론’이야말로 바로 조조의 〈구현령〉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이후 중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어 마침내 오늘날 세계 속의 강국으로 부상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나폴레옹도 “인재가 있다는 소문이 들리면 나는 앞뒤 가리지 않고 그에게 달려가 도움을 청할 것이다. 인재를 얻을 수만 있다면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염치를 무릅쓰고 아부하는 일조차 마다하지 않겠다.”라고 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전을 펼치는 이런 시기에 각 후보 진영 내에서 먼저 자리 잡은 사람들이 자꾸 문턱을 높이고 장막을 치고 있다. 이 사람은 이래서 안 되고, 저 사람은 저래서 안 된다면서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있다. 너무나 어리석은 하수의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주군을 위해 닭 울음소리라도 낼 수 있고 개구멍을 드나들며 도둑질 잘하는 하잘 것 없는 재주도 능력이라 여기며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소통과 통합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람 저 사람 가리며 인재를 고르다가 때를 놓치고 천하를 잃은 다음에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허물을 캐는 일은 천하를 도모한 후에라도 늦지 않다. 그때 가서 비로소 각자의 능력에 맞는 공정한 인사를 통해 적재적소에 사람을 기용하면 될 일이다.

조조는 적벽대전을 앞두고 읊은 시(詩), ‘단가행(短歌行)’의 말미에서 인재를 갈망하는 애타는 마음을 다음과 같이 토해낸다. “산은 높아지기를 마다하지 아니하고 물은 깊어지기를 마다하지 않는 법, 주공처럼 인재를 얻기 위해 먹던 음식을 뱉어내는 정성을 보인다면 천하의 인심이 나에게로 돌아오리(山不厭高, 海不厭深, 周公吐哺, 天下歸心).

천하를 움켜쥐려는 자들이여. 그리고 그를 도와 천하를 도모하려는 참모들이여. 눈을 들어 세상을 다시 바라보라. 천하의 패권을 다투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바로 조조가 말했던 난세요, 뭇 인재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당장 문턱을 없애고 장막을 걷어라. 천하의 인심은 항상 열린 곳에 모여든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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