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의 등(燈)
기사입력 2012.12.2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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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끝나고 승자와 패자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그동안 나라는 두 쪽으로 갈라져 진흙탕 속에서 서로 물고 뜯느라 혼란스러웠다. 막판에는 상대방의 치부를 들추어내기 위한 온갖 폭언과 출처를 알 수 없는 유언비어들이 난무하면서 저잣거리의 민심조차도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는 비아냥거림으로 나타났다.
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
같은 시기에 일어난 주변국들의 동향에는 거의 관심을 촉구하지 않았던 것도 자조 섞인 푸념에 일조했다. 북한은 광명성 3호 위성을 발사함으로써 전 세계적인 비난을 자초했지만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김정은 체제의 내부결속을 강화시켰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역시 한반도 안보문제에 큰 위협세력으로 상존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일본은 극우세력이 다시 전면에 부상하면서 재무장을 선언함으로써 동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군국주의의 부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동시에 영토분쟁과 군사력 증강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 중국의 움직임도 우리는 불안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 후보자들은 안보와 외교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하며 불안해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정성으로 투표했다. 대선 역사상 가장 높은 투표율이 말해주듯이 사람들에게는 어느 때보다 이번 선거가 장차 우리나라의 국운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그만큼 위기의 시대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깔려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치권은 알아야 한다. 국민 모두가 내가 찍은 한 표가 혼탁한 세상을 밝히고 우리나라의 안보를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희망의 등불이 되어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정성을 들인 것이라는 것을.
석가모니가 사위국(舍衛國)의 어느 정사(精舍)에 머물고 있을 때, 국왕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석가모니를 찾아가 각각의 신분에 걸 맞는 공양을 하였다. 늘 비구니(比丘尼)가 되고 싶었던 한 가난한 여자도 남들처럼 석가모니를 찾아가 공양을 하고 싶었지만 매일매일 구걸로 겨우 연명하는 궁색한 형편이어서 자신의 신세를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녀는 등(燈)이라도 하나 만들어 어떻게든 석가모니를 만나 볼 생각으로 저잣거리에 나가 구걸을 하기 시작했다. 단 몇 푼이라도 돈이 생기면 기름을 사 가지고 등을 밝힐 요량이었다. 그러나 하루 종일 구걸하며 저녁 무렵에 이르렀지만 그녀의 손에 쥐어진 것은 겨우 한 푼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한 푼어치 기름으로 등을 밝히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긴 망설임 끝에 기름집을 찾은 그녀의 사연을 듣고 주인은 갸륵하게 생각했다. 그리고는 한 푼의 몇 배나 되는 양의 기름을 주었다.
난타(難陀)라는 이름의 이 여인은 그 기름으로 정성스럽게 등을 하나 만들어 석가모니에게 바쳤다. 그런데 그 수많은 등불 속에서 이상하게도 난타가 바친 등불만이 새벽까지 남아서 밝게 타고 있었다. 손으로 바람을 보내거나 옷자락으로 휘둘러도 불은 꺼지지 않았다. 사람들로부터 난타의 정성을 전해들은 석가모니는 마침내 그녀를 비구니(比丘尼)로 받아들였다.
여기에서 유래한 ‘빈자일등(貧者一燈)’이란 성어는 가난한 자의 등불 하나라는 뜻으로, 가난하면서도 정성을 다해 공양하는 태도를 말한다. 국민 모두가 방법은 달라도 나름대로 나라를 위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등불 하나를 밝힌다는 마음으로 선거에 참여했다. 불경(佛經)인 《현우경(賢愚經)》의 ‘빈녀난타품(貧女難陀品)’에서 비롯된 말이다.
오늘날 대통령의 권위는 옛날 전제왕권시대의 절대적 권위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선거에 나서는 모든 후보가 ‘국민과 함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백성과 함께 권력을 나누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처럼, 그 옛날 ‘만 백성의 어버이(一人之下 萬人之上)’로 대변되던 제왕적 권위는 사라지고 어느 새 우리 서민들 곁으로 내려와 있는 것이다. 청와대를 리모델링하여 참모들과의 소통이 쉽도록 하겠다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아예 청와대를 없애고 대통령 집무실을 정부청사로 옮기겠다는 약속을 내놓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낄만하다, 그러나 역대 모든 후보가 던진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실패한 정권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들어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늘 반복되었다.
하(夏)나라의 걸왕(傑王)은 총희 말희의 환심을 사기 위한 사치와 환락으로 국정을 돌보지 않다가 은(殷)나라의 탕왕(湯王)에게 멸망당했다. 은 왕조도 주왕(紂王)에 이르러 달기의 환심을 사기 위해 폭정을 하는 바람에 하 왕조와 같은 운명의 길을 걷게 된다. 주왕의 포학을 간(諫)하다가 많은 충신이 목숨을 잃는 가운데 왕의 보좌역인 삼공(三公) 중 구후(九侯)와 악후(鄂侯)까지 처형당하고 서백(西伯, 훗날 주문왕(周文王))은 유폐되었다. 당시 서백은 ‘은 왕조의 시조인 탕왕에게 주벌당한 하 왕조의 걸왕을 거울삼아 그 같은 멸망의 전철을 밟지 말라(殷鑑不遠 在夏侯之世)’고 간하다가 화를 당했는데, 그 내용이 《시경(詩經)》 〈대아(大雅)〉 ‘탕문편(湯問篇)’에 실려 있다. 즉, ‘은나라의 거울은 먼 데 있지 않다(殷鑑不遠)’는 뜻으로, 남의 실패를 본보기로 삼아 그 잘못을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정권이 바뀌면 새 정부는 항상 지난 정권에 대한 심판이라는 이름으로 그 공과(功過)를 도마 위에 올렸다. 그런데 공통적인 것은 그 도마 위에는 오로지 허물(過)만 놓여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는 공개적인 여론몰이를 하면서 난도질을 했다. 국민들의 눈에는 그저 맺힌 한(恨)을 푸는 복수극에 불과했다. 이번에도 과연 그럴까?
명(明)나라 말기에는 관료들의 부패와 극심한 당쟁, 환관(宦官)들의 전횡과 만주에서 새로 일어난 청(淸)나라의 침입 등으로 국력이 날로 쇠퇴하였다. 특히, 대기근으로 인한 농민들의 반란이 이어지면서 정부는 통제력을 거의 상실하고 말았다. 명나라 군대가 청나라의 침략에 대비해 산하이관(山海關)에 머무르는 틈을 노려 이자성(李自成)이 이끄는 반란군은 베이징(北京)으로 쳐들어가 수도를 함락시켰다. 측근을 지키던 관리들까지 반란군에 가담하자 마지막 황제 숭정제(崇禎帝, 재위 1628∼1644)는 황후와 함께 만세산(萬歲山)에 올라 나무에 목을 매고 죽었다. 숭정제는 죽을 때 “내 몸이 적의 손에 찢어질지라도 백성 한 사람이라도 상하게 하지 말라(無傷百姓一人)"라는 글을 옷깃에 적어 두었다. 백성들만은 다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황제의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는 간절한 의지를 표현하는 말이다. 《명사(明史)》 〈장렬제기(莊烈帝紀)〉에 실려 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내 형제요 내 백성이 아닌 사람이 없거늘, 선거 때마다 국민들에게 표를 달라고 애걸하면서 내걸었던 “국민과 함께‘라는 구호가 거짓된 마음이 아니라면, 지난 일에 대해서는 굳이 공과를 논할 일이 아니다. 마땅히 허물(過)은 용서하고 공(功)은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승자의 도리이다.
“강산이 모두 싸움에 들었으니 살아남은 백성이 어찌 나무를 하고 풀 뜯는 것을 즐길 수 있으리오. 그대에게 부탁하노니 후를 봉하는 일을 말하지 말라. 한 장수가 공을 이루는 데는 만 명의 뼈가 마르노니.(澤國江山入戰圖 生民何計樂樵蘇 憑君莫話封侯事 一將功成萬骨枯).”
당(唐)나라 말기에 황소(黃巢)의 난이 일어났을 때 조송(曹松)이 지은 〈기해세(己亥歲)〉라는 시(詩)에 나오는 말이다. 그는 이 시에서 무수한 생명의 희생 위에 한 사람의 영웅이 탄생하게 되는 전쟁의 잔학성과 모순을 말하고 있다. 후(侯)를 봉하는 일은 곧 공(功)을 세우는 일을 말한다. 관군을 지휘하던 장군은, "소위 위정자들이란, 나라가 위급하면 병사를 사랑하고 상 주기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태평한 세월이 돌아오면 병사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죄까지 뒤집어씌운다.“고 한탄했다. 그래서 마지막 구절 ‘일장공성만골고(一將功成萬骨枯)는 ’한 장수의 전공은 만 명의 군사가 싸움터에서 죽은 결과‘라는 뜻으로, 일이 끝나면 모든 공이 오로지 장수에게만 돌아가는 것을 개탄하는 말로서, 서로를 위하여 서로가 상처받지 않고 더불어 잘살기 위하여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뜻으로 회자되고 있다.
위정자들에게 바란다. 급변하는 주변정세 속에서 한 치 앞의 일도 가늠하기 어려운 요즈음이다. 이번만은 제발 지난 정부의 공과에 연연하지 말고 국민에게 큰 비전을 보여주는 정부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절대로 잊지 말기를 바란다. 우리 국민 모두가 앞으로 우리나라가 어디로 갈 것이며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두고 노심초사하면서, 가난한 여인이 밝히는 등(燈)과 같은 간절한 마음으로 그대들을 선택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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