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비록 혼탁하다 해도

기사입력 2013.01.23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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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
중국 남조 때 제나라와 양나라에서 벼슬을 한 사람 가운데 사기경(謝幾卿)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릴 때 신동으로 소문난 그는 장성하여 벼슬에 나아가서는 대범한 성품이 되어 조정의 규정 따위에는 아예 신경을 쓰지 않은 자유인이었고 술을 좋아하여 주변에 친구가 많았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왕조(王朝)의 부침(浮沈)이 극심하던 때였다. 그가 정치에 흥미를 잃고 술과 친구를 가까이 한 것도 그런 시대적 배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번은 잔칫집에 갔다가 모처럼 취하지 않은 채 돌아오는 길에 마침 술집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는 수레를 술집 앞에 세워놓고 일행 3명과 술판을 벌었다. 술 마시는 품이 얼마나 요란했던지 구경꾼이 담을 치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마구 마셔댔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면서 그에 대한 소문은 조정에까지 알려지게 되었고, 그의 이런 무분별하고 방탕한 행동은 양무제(梁武帝)의 미움을 사게 되어 결국은 관직에서 파면되고 말았다. 무제는 그를 지방 토벌군에 보냈다가 싸움에 패한 것을 구실로 그를 내친 것이다. 그러나 파직 후에도 그와 교제하기를 좋아하는 벼슬아치들의 출입으로 그의 집은 항상 붐볐다고 한다.

친구인 좌승(左丞) 유중용(庾仲容)도 비슷한 시기에 파직되었다. 두 사람은 곧바로 의기투합하여 뚜껑 없는 수레를 타고 이 거리 저 골목을 돌아다니며 날마다 술을 펐다. 당시의 관습으로 보면 뚜껑 없는 수레는 곧 죽은 사람이 타는 수레였다. 즉, 장례식 때나 쓰는 ‘장의차’였던 것이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뭐가 좋은지 온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방울을 흔들며 조가(弔歌)까지 불러댔다. 권주가 대신 장송가였던 것이다.

두 사람이 일으키는 행태를 놓고 주위에서 이런저런 말들이 나왔다. 그래도 그들은 여전했다. 그들은 ‘세상의 평판(物議)’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양서(梁書) 사기경전(謝幾卿傳)》은 기록하고 있다. (時左丞庾仲容亦免歸, 二人意志相得, 並肆情誕縱, 或乘露車歷遊郊野, 旣醉則執鐸挽歌, 不屑物議.(梁書 卷50 謝幾卿傳))

이 고사에서 비롯된 ‘물의(物議)’란 의론이 일어난다는 뜻으로, 어떤 사람의 행위나 생각 등이 여러 사람의 시비(是非)를 일으키면서 빚어지는 말썽을 이른다. 오늘날에는 남의 주목을 받아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대상이 되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새해가 되자마자 정치인들의 한심한 행태들이 또다시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면서 물의를 빚고 있다. 국회 예결위 계수조정소위 소속 여야 의원 9명이 해를 넘겨 예산안을 처리한 직후 외유성 해외 출장을 떠나며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그 중 5명은 중남미, 4명은 아프리카로 떠났다. 이들은 출국 목적을 “예산 심사 시스템 연구”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우리나라보다 나을 것이 없는 나라에 가서 무엇을 배우고 연구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정이다.

대선을 앞두고 새 정치를 외치며 표심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국회의원들이 대선이 끝나자마자 보여준 ‘국회의원 연금법’ 통과와 외유성 해외 출장 논란에 누리꾼들은 “세금이 아깝다”며 한 목소리로 비난하고 있다.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으로 이번에는 전국 도의회의장단 20여명도 여기에 질세라 외유를 떠났다. 세간의 인심에 개의치 않고 저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두둑한 배짱을 생각하면 그저 마냥 부럽고(?) 신기할 뿐이다.

교수신문이 지난해의 사자성어로 ‘거세개탁(擧世皆濁)‘을 선정했다. 거세개탁은 전국시대 초나라의 충신 굴원(屈原)이 지은 ‘어부사(漁父辭)’에 실린 성어다. 온 세상이 혼탁한 가운데서는 홀로 맑게 깨어있기가 쉽지 않고, 깨어있다고 해도 세상과 화합하기 힘든 처지를 나타내는 의미로 쓰인다. 즉,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다 바르지 않다는 의미인 것이다.

교수들이 지난해의 사자성어로 거세개탁을 뽑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사회의 혼탁함이 정치권은 물론이고 공무원과 지식인 사회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만연했다고 본 것이 그 이유다.

굴원은 현명한 인재를 등용하고 정치를 혁신할 것을 간하다 간신들의 모함으로 관직을 박탈당하고 양쯔강 이남으로 추방되었다. 유랑생활을 하던 어느 날 홀로 강가를 거닐며 초췌한 모습으로 시를 읊고 있는데, 고기잡이 노인이 그를 알아보고 삼려대부였던 당신이 어찌하여 그 꼴이 되어 이곳에 이르렀느냐고 물었다.

굴원이 말했다.
“세상이 모두 흐린데 나 홀로 맑고 깨끗하며, 모두가 취해 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었기 때문에 쫓겨났소(擧世皆濁我獨淸 衆人皆醉我獨醒 是以見放)”

어부가 말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흐려 있으면 어찌하여 그 진흙에 더렵혀지고 같은 세파에 어울리지 아니하고, 사람들이 모두 취해 있으면, 어찌하여 그 술 찌꺼기라도 배불리 먹고 그 박주라도 마시면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지 않고 홀로 깨어 있는가(世人皆濁 何不淈其泥而揚其波 衆人皆醉 何不飽其糟而歠其醨)”.

굴원이 이르기를,
“머리를 씻은 사람은 반드시 관을 털어 쓰고 몸을 씻은 자는 반드시 옷을 털어 입는다고 했으니, 어찌 맑고 깨끗한 몸에 더러운 수치를 받게 할 수 있겠는가(新沐者 必彈冠 新浴者 必振衣 安能以身之察察 受物之汶汶者乎)”

굴원의 대답을 들은 어부는 미소를 지으며 노를 저어 떠나면서 노래를 불렀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을 것이요,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굴원은 비통하고 상심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혼탁한 세상 나를 알아줄 이 없고 인심이란 믿을 수 없는 것 … 군자들이여 말하노니 앞으로 나를 본보기로 삼으라(世溷不吾知 心不可謂兮 … 明以告君子兮 吾將以為類兮)’라는 내용의 시를 남기고 멱라수에 몸을 던진다.

어부는 굴원의 그런 처신에 대해 오히려 비웃고 있다. 굴원에게 왜 그들과 더불어 더러운 진흙탕에서 뒹굴면서 어울리지 않았느냐고 나무라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또 지식인으로서 왜 세상을 적극적으로 바꾸려 하지 않고 혼자 깨끗한 척 현실을 도피했느냐고 질타하는 의미로서 절묘한 반어법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난세의 치욕 앞에 굴원처럼 절명하는 이도 있고 묵묵히 견디는 이도 있다. 굴원의 열전을 기록한 사마천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무제의 노여움을 사 생식기가 잘리는 궁형의 치욕을 당하고서도 살아남아 불멸의 기록인《사기(史記)》를 썼지 않았던가. 인간으로서 당할 수 있는 가장 치욕적인 상황에 처하면서도 역사가로서의 사명감을 잊지 않았던 결과였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좌절을 겪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인을 찾아 교훈을 얻을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이 시대를 잘못 만났다며 세상을 원망하고 운(運)이 없음을 탓하곤 한다. 또 세상을 향해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 없다고 원망한다.

교수신문이 교수 62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2012년의 사자성어로 '거세개탁(擧世皆濁)'을 선정한 용기(?)도 대단하다. 사람들은 선정내용을 놓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이명박 정부의 공공성 붕괴, 공무원 사회의 부패 등을 빗댄 것이라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대선 과정을 지켜본 지식인들의 우울한 생각을 담은 것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선거에서 이긴 쪽이나 진 쪽을 막론하고 거기에 가담하여 저마다의 영달을 위해 곡학아세(曲學阿世)를 마다하지 않았던 일부 무리들은 ‘거세개탁’이 자신들과는 상관이 없으며, 오히려 뒷 구절에 나오는 ‘나만 홀로 깨끗하다(我獨淸)’ 라는 말이 저들에게 맞는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곡학아세하는 자신들이 세상을 얼마나 흐려놓았는지를 진솔하게 성찰하기보다는 ‘나는 아직도 맑다.’라는 착각과 아집을 앞세우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어찌 혼탁하기만 하겠는가? 세상을 향해 어찌 감히 모두가 혼탁하고 나만 홀로 깨어있다고 말할 수 있으리오. 교수신문의 선정 이유를 어떻게 이해하든 세상을 향한 그들의 외침은 참으로 염치도 체면도 없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거운 밤에는/ 이 세상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소설가 박경리의 시 ‘옛날의 그 집’의 한 구절이다.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하는 동안 그 시절 어둡고 외로운 마음을 시로 남기면서 견딘 것이다. 좋은 시가 한 인간의 품에서 어떻게 태어나는지를 잘 보여준다.

동서고금을 통해 지난 역사 속의 시류에서 불이익을 기꺼이 감수하면서도 자신의 청렴한 가치를 행동으로 보여준 숱한 충신들의 슬픈 생애를 반추하면서, 나는 이 시대의 위정자와 지식인들을 향해 묻는다. “당신은 우리 사회를 위해 무엇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려 하는가. 저잣거리의 평가에는 귀를 닫고 살아도 될 정도로 오로지 그대 홀로 맑고 깨끗하며 깨어 있는가?”라고.

풍요와 복, 지혜의 화신으로 여겨지는 뱀(巳)의 해가 밝았다. 우리 모두 세상이 모두 혼탁하고 나만 홀로 깨끗하다는 독선과 아집을
버리고, 뱀과 같이 낮은 자세로 지혜롭게 처신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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