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亡國)의 유랑민(流浪民)도 아닌데…

기사입력 2013.06.26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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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
 
“이렇게 자유로운 땅에서 사는 게 너무나 감사하다는 걸 느꼈어요.”
“배곯지 않고 저 북한의 백성들처럼 근심 걱정 안하고 살아가는 데 대해 감사합니다.”

지난해 가을 중국에서 촬영된 동영상에는 아이들의 수줍은 모습과 함께 희망에 가득 찬 생생한 육성이 담겨 있다. 비록 소박한 음식이지만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기쁨도 감추지 않았다. 동영상 속의 아이들은 북한에서 중국으로 탈출했다가 라오스로 이동한 후, 자유대한의 품에 안기기를 열망하던 9명의 탈북청소년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라오스 정부에 의해 강제 북송되었다. 이들의 비극적인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탄식했다.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가장 가엾고 불쌍한 사람들은 고향을 등지고 떠도는 유랑민들이다. 그들 대부분은 나라가 망해서 쫓겨났거나, 전쟁이나 기근으로 인한 생활고 등으로 살 길을 찾아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다.

우리 역사 속에도 이러한 예는 많다. 백제의 멸망과 함께 수많은 백제유민들이 당나라로 끌려가거나 일본열도로 피신했다. 또, 고구려와 발해의 멸망으로 신라로 들어온 소수의 유민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나라와 거란의 치하에 남아 망국의 한(恨)을 달래며 살아야 했다. 그들은 정복자들의 사민정책(徙民政策)에 의해 중국과 만주의 각지로 분산되어 엄청난 민족적 차별을 감수하면서 고통을 받았다. 고려 때 몽골의 침입과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역사상 크고 작은 외침의 과정에서 언제나 힘없는 백성들은 정든 고향을 등지고 살길을 찾아 낯선 이국땅을 헤매야만 했다.

예나 지금이나 낯선 땅에 삶의 뿌리를 내리는 데는 고통과 슬픔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그때마다 우리 민족은 강인한 근성과 성실성, 근면성을 발휘하며 꿋꿋하게 삶을 개척해 나갔다. 일본열도로 건너간 백제 유민은 찬란한 백제문화를 전파하면서 일본 역사무대에 주역으로 등장하였고, 당나라로 끌려간 유민 가운데 흑치상지(黑齒常之)와 같은 무장은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당나라 정예군을 이끄는 장수로 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망국 백제인 출신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의 뛰어난 전공을 시기한 당나라 장수들의 모함으로 결국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당나라로 끌려간 고구려 유민 역시 타고난 성실성과 강인한 의지로 곳곳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활약했다. ‘세계의 지붕’이라 일컫는 파미르 고원을 주름잡은 희대의 명장 고선지(高仙芝, 702~755) 장군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는 11년 동안(740~751년) 다섯 차례나 대군을 이끌고 파미르고원과 힌두쿠시산맥, 톈산산맥의 험산준령을 넘어 서역원정을 단행하면서 실크로드를 개척하는 등, 중세 동서(東西) 문명교류사와 전쟁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20세기 초에 고선지 장군의 서역원정길을 세 차례에 걸쳐 직접 답사한 영국의 탐험가 오렐 스타인(Sir Aurel Mark Stein)은 “현대의 어떠한 군대라도 이룰 수 없는 공적으로, 로마를 정복한 한니발은 물론 나폴레옹의 알프스 돌파보다 더 위대한 업적”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 역시 고구려인이라는 민족적 차별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의 전공을 시기해온 당나라 장수들의 모함에 걸려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감한다.

근세에 이르러 민족 최대의 수난사였던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은 가장 처절하고 처참한 비극적 수난을 당했다. 일제의 무단정치를 피해 잠시 만주에 정착하여 생활터전을 마련하기도 했으나, 일본군의 집요한 추격과 보복을 견디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다시 연해주 지역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가혹한 비극적 수난을 당한다. 1937년 제정 러시아 당국에 의해 저질러진 이른바 ‘황화(黃禍)’라고 불리는 18만 극동 고려인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가혹한 역경 속에서도 근면성과 성실성, 강인함을 바탕으로 꿋꿋하게 삶을 개척해 나갔다. 아무리 척박한 땅이라도 그들의 손이 닿기만 하면 황무지가 농경지로 바뀌었으며, 생산량은 다른 민족이 개척한 땅의 2배가 넘었다.

바다를 건너 하와이와 미국, 멕시코로 건너간 이주민들도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농장 주인이 쉴 새 없이 휘두르는 채찍에 무자비하게 얻어맞고 주먹밥으로 연명을 하며 억척스럽게 정착해 나갔다. 그들 역시 타고난 근면과 성실성을 바탕으로 오늘날 미주 한인사회에 굳게 뿌리내린 밀알이 되었다.

이번 라오스 탈북 청소년 북송사태와 관련하여 탈북자 처리 과정에 드러난 정부의 안이한 태도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대한민국 외교의 한계라느니, 무능력하다느니 등등 정부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요란하다. 현재 우리 외교부는 이번 강제송환 사건에 대해 큰 유감을 표하고 북한 정부에 이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고 부당한 처벌과 대우를 하지 말 것을 촉구하며, 유엔 인권이사회에 이번 탈북청소년 북송사건에 대해 강력하게 문제제기를 했다. 그야말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니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안토니오 구테레스 유엔난민기구(UNHCR) 고등판무관도 최근 성명에서 이들 탈북청소년들이 북한으로 되돌아갔을 때 받게 될 기본적인 인권과 안전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말하고, “생명과 자유가 위협받을 수 있는 국가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는 어떠한 직, 간접적 조치도 자제해야 한다.”라고 하며 국제 관습법상의 강제송환 금지 원칙을 준수할 것을 촉구했다.

그런데, 세계가 모두 주목하며 라오스의 무책임한 조치를 비난하는 가운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이번 사건을 대하는 국내 정치권의 동향이다. 툭하면 ‘인간의 기본권 보장’ 운운하며 아주 사소(?)한 일에도 데모 현장으로 달려가던 그 많은 인권운동가, 국회의원들은 다 어디로 가고 없는가. 기회만 있으면 마치 피를 토하는 듯 절규하며 ‘인권’을 부르짖던 소위 진보 정치집단들은 왜 말이 없는가. 그들에게 탈북 청소년들의 인권은 남의 일이며 먼 나라 이야기란 말인가.

진(晉)나라 때, 유익(庾瀷)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그는 서법(書法)이 매우 뛰어나 당시 유행하던 명필 왕희지(王羲之)와 견줄만하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그의 서법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찾아왔다. 유익은 찾아오는 이들을 모두 제자로 받아들이고 그들을 정성껏 가르쳤다. 하지만 정작 그의 가족들은 당시 유행하던 왕희지의 서법을 배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마음이 상한 유익은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이들이 집안의 닭은 천하게 여기고 들판의 꿩만 귀하게 여겨 모두 왕희지의 서법을 배우고 있으니, 이는 나를 그보다 못하게 여기는 것이니 한탄스럽다”고 답답하고 서운한 심경을 토로했다. 여기에서 유래한 ‘가계야치(家鷄野雉)’는 ‘집 안에서 기르는 닭과 들판의 꿩’이란 뜻으로, 일상의 흔한 것은 천하게 여기고 새롭고 진기한 것은 존중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즉, 본시 사람이란 ‘드물고 먼 것을 귀하게 보고 흔하고 가까이 있는 것을 천하고 가볍게 생각하기 마련’이라는 의미로서, ‘집을 떠나 멀리 있는 사람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라’는 훈계하는 말로 쓰고 있다. 

우리는 나라를 잃고 이국을 떠돌며 애환의 민족사를 겪으며 살아온 유랑민의 후손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집 떠난 자식을 더 생각하는 것이 세간의 모정일진대,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정착지를 찾아 이국을 떠도는 탈북자들을 ‘집안의 닭’ 보듯 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라는 망하지도 않았는데 고국으로의 정착지를 찾아 이국을 떠도는 탈북자를 방치하는 나라. 세계 모든 나라들이 다투어 이번 사태를 걱정하고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는데도, 정작 안에서는 조용한 나라라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언제쯤 이들을 ‘들판의 꿩’으로 제대로 볼 수 있을까. 그 옛날, 역사 속 나라 잃은 한(恨)을 품고 이국을 떠돌던 유랑민들처럼 망국의 난민도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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