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린 대로 돌아온다.
기사입력 2013.09.17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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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
춘추시대 제(齊)나라는 환공(桓公) 이후 오랫동안 강대국으로 군림했지만 전국시대 들어서면서 국력이 크게 쇠퇴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즉위한 위왕(威王)은 나라의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자신의 뜻을 드러내지 않고 신중하게 처신하면서 짐짓 술과 오락으로 세월을 허비하는 척 하면서 기회를 보고 있었다. 위왕은 무려 9년 동안 술과 오락으로 세월을 허비하는 척하며 정사(政事)에 관한 일에 대해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이 같은 신중한 처신 때문에 생겨난 고사가 ‘구년불언(九年不言)’이다.
어느 날, 추기(鄒忌)라는 신하가 거문고를 들고 찾아와 자신의 처신을 혹독하게 비판하자 위왕은 그를 재상에 임명하고 국정개혁을 시도했다. 추기는 위왕에게 어진 사람을 등용하고 신하들의 간언(諫言)을 받아들이라고 충고했다. 또 백성을 가까이 하고 법률을 정비하여 나라의 기강을 엄정하게 세우며 간신배를 멀리하라고 건의했다. 아울러 군기(軍紀)를 바로세우고 정치적 원칙을 고수할 것도 강조했다.
위왕은 추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면밀하게 국정을 살펴가며, 함께 일할 만한 사람과 축출해야 할 대상을 가려내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무르익자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제나라는 다시 한 번 전국시대 후기의 강국으로 위세를 떨칠 수 있었다. 위왕이 남긴 업적 가운데 훗날 두고두고 후한 평가를 받는 ‘장일인(奬一人), 팽일인(烹一人)’이란는 일화가 있다. 즉, ‘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한 사람은 가마솥에 삶아 죽였다’는 뜻이다.
이 이야기는 당시 제나라의 지방관이었던 대부(大夫) 두 사람의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아(阿)라는 지역을 다스리는 대부는 칭찬이 자자한 반면, 즉묵(卽墨) 지방을 다스리는 대부에 대해서는 온통 비난하는 소리만 보고되었다. 위왕은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몰래 사람을 보내 두 지방을 면밀하게 조사했다. 돌아온 감찰관의 보고는 딴판이었다. 아 지방은 농사를 안 짓고 노는 땅이 부지기수이며 지방관 대부는 늘 음주가무에 취해 있었던 반면, 즉묵 지방은 수리사업이 잘되어 농사도 풍년이고 백성들이 다 잘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위왕은 두 지방의 대부를 각각 소환했다. 대신들은 당연히 즉묵 지방의 대부가 벌을 받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아주 검소한 차림에 눈빛도 초롱초롱하고 당당한 즉묵의 대부는 상을 받고 승진을 하였다. 이를 ‘장일인’이라 한다. 반면 아 지방 대부는 아주 호화로운 옷을 입고 거들먹거리면서 들어왔다. 상을 받을 생각에 만면에 웃음을 짓고 싱글거렸다. 그러나 위왕은 아 대부를 잡아 기름 솥에 넣고 삶아 죽였다. 사실을 알고 보니 아 지방 대부는 그동안 조정 실권자에게 아부하고 뇌물을 써서 좋은 평점을 얻었던 것이다. 이를 ‘팽일인’이라 한다. 위왕은 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한 사람은 팽형을 시켜 조정의 기강을 바로잡았다. 위왕은 9년 동안 놀고먹은 게 아니라, 나름대로 나라의 상황을 파악하면서 개혁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능한 지도자의 기준에서 상벌의 공정한 행사는 필수 요건이다. 큰 잘못을 했음에도 지도자가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여 벌을 늦추거나 그냥 넘어가는 것은 지도자의 무능함을 자인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지도자의 무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직자의 기강이 흔들리고 나아가서는 나라의 안위마저 위태롭게 한다.
구속 중인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 음모’와 ‘여적죄(與敵罪)’ 적용 사건으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국가정보원의 발표를 두고 처음에는 설마하며 허탈해 하던 국민들이 이제는 곳곳에서 점차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경험한 세대들에게는 그 충격의 강도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듯하다.
이번 사건의 핵심 피의자로 지목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은 1980년대부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차례 사정당국 수사선상에 올랐던 인물이다. 법원에서 실형을 확정 선고받은 전력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두 차례나 특별사면과 복권을 받았다. 실제로 이석기 의원은 당시 광복절 특사 15만 여 명 가운데 유일한 공안사범이었다. 한 정부에서 두 차례나 특사 대상이 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적행위로 선고된 징역형을 사면 받은 것에 이어 피선거권까지 회복한 것이다. 그리고는 마침내(?) 국회에 입성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과거 인권 변호사로서 노동현장이나 인권운동 등 현장에서 언제나 공정한 법 적용을 요구해왔고 보편타당한 가치가 우선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대통령 재임기간의 업적을 보면, 결코 보편타당한 가치기준으로 엄정하게 법을 집행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결코 준비된 대통령이 아니었다.
출이반이(出爾反爾)라는 고사가 있다. ‘너에게서 나온 것은 너에게로 돌아온다.’라는 말로, 자기가 뿌린 씨는 자기가 거두게 된다는 말이다. 그가 뿌린 씨앗은 불과 몇 년도 채 되지 않은 지금, 국론을 분열시키고 우리 사회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전국시대 추(芻)나라와 노(魯)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싸움에서 패한 추나라 임금 목공(穆公)이 맹자에게 물었다.
“이번 전쟁에서 우리 장수들이 33명이나 죽었는데도 백성들은 그것을 보고만 있었지 누구 하나 자기 지휘관을 위해서 죽은 자가 없었습니다. 이 괘씸한 자들을 죽이자니 모두 다 죽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 두자니 앞으로도 자기 지휘관의 죽음을 보고서도 구원하지 않을 것이 뻔하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부족한 해에 노약자는 시궁창에 굴러 떨어져 죽고 젊은이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는데 그 수가 수천 명이나 되었지요. 당시 임금의 창고에는 곡식과 보물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도 지휘관들은 이것을 꺼내어 백성을 구하자고 간청하지도 아니하였으니 이것이야말로 윗사람이 게을러 아랫사람을 죽이는 것이지요.” 맹자는 다시 말을 이었다.
“증자가 이르기를 ‘조심하고 조심하라. 너에게서 나온 것은 너에게로 돌아온다.(戒之戒之 出乎爾者 反乎爾者也)’고 했습니다. 백성들은 지난 날 지휘관들한테 당한 것을 이렇게 보답한 것이니 어찌 백성들을 나무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탓하지 마십시오. 임금께서 어진 정치를 베푸신다면 백성들은 윗사람에게 친하게 대할 것이고 그들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입니다.”
맹자는 증자의 ‘출호이반호이(出乎爾反乎爾)’를 인용하여 세상 모든 게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임을 말하면서, 목공에게 백성들의 불충을 탓하기 전에 먼저 어진 정치를 베풀어 덕으로써 백성들을 감화시킬 것을 권고하였다.《맹자(孟子)》의〈양혜왕(梁惠王)〉 하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번 사건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주도권 싸움에 여념이 없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애국가를 인정하지 않으며 민중봉기를 획책하는 등의 ‘반국가 내란 혐의’와 ‘여적죄’ 혐의를 받고 있는 종북세력을 앞에 두고 벌이는 행태가 가관이니 말이다. 게다가 지난 총선에서 ‘야권연대’라는 명분으로 종북세력의 국회 진출을 도와 이번 사태의 빌미를 제공했던 야당은 대국민사과 한 마디도 없다. 오히려 ‘총선부정‘이니 ‘국정원 개혁’ 운운해가며 물타기에다 조작설까지 들먹이고 있으니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두고 어찌 정치권의 잘못이라고만 추궁하겠는가. 그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판단을 잘못 내린 우리 국민의 잘못도 크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책임을 느껴야 한다. 엄정하고 철저한 수사를 통해 종북세력의 실체를 만천하에 밝혀내고 이들을 분명하게 단죄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요 후세의 교훈이다. 제 위왕의 ‘장일인’과 ‘팽일인’과 ‘출이반이(出爾反爾)’의 고사를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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