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가 흔들린다.

기사입력 2013.11.13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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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 
 
교사로 첫발을 내디딜 때 흔히 ‘교편(敎鞭)을 잡는다.’고 한다. 문자 그대로 채찍을 들어 학생의 종아리를 때리며 가르친다는 뜻으로 바로 회초리를 의미한다.

《예기(禮記)》에 ‘싸리나무 회초리와 가시나무 회초리, 이 두 개는 교육의 권위를 위한 것이므로 약간의 체벌이 필요하다’는 구절이 나온다. 조선시대에는 자식을 서당에 맡길 때 싸리나무 회초리를 한 다발 만들어 훈장에게 바쳤는데 이런 관습도 바로 여기에서 연유했다. 자식을 잘 가르쳐 달라는 뜻이다. 이를 두고 ‘초달(楚撻)’이라고 하는데, 초(楚)는 광대싸리로 만든 회초리를 뜻한다. 율곡 이이도 《학교모범(學校模範)》에서 ‘잘못을 저지른 학생은 회초리로 때려라’고 썼다.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서당’에서도 배강(背講)을 못한 학동의 종아리를 때린 훈장이 우는 아이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모습이 익살스럽게 묘사돼 있을 정도로, 회초리를 들어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집안에서 못된 짓을 한 자식을 조상 묘에 데려가 아이로 하여금 아비의 종아리를 때리게 하는 ‘조상매’도 있었고, 가문의 규율을 어긴 족인(族人)을 회초리 치는 ‘가문매’도 있었다. 성경의 잠언에서도 ‘매를 아끼는 자는 자식을 미워함이니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동서고금을 통하여 자식교육과 학생교육에는 회초리가 필요하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한나라에 한백유(韓伯兪)라는 학자가 있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홀어머니에게 회초리를 맞으며 자랐으나, 아무리 종아리가 아파도 얼굴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그 매 속에 어머니의 사랑이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종아리를 맞던 그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의아하게 생각한 어머니는 “네가 평소에는 종아리를 맞고 우는 일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울고 있으니 어미에게 불만이 있느냐?” 하고 물었다. 이에 백유는 “아닙니다. 전에는 어머니께서 매질하시면 종아리가 많이 아팠는데 오늘은 아프지 않으니 어머니가 연로하시며 근력이 없어지신 것 같아 슬퍼서 울었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그 후 매를 들지 않았다고 한다. 한백유에게 있어 회초리는 애틋한 어머니의 마음이었고 가르침이자 효를 생각하게 만드는 매개체였다. 백유읍장(伯兪泣杖), 또는 백유읍태(伯兪泣笞)라는 고사성어의 유래다.

부모의 책임도 막중하다. 슬하(膝下)에서 금지옥엽으로 키운 자식이 불초(不肖)를 넘어 패륜(悖倫)이 되지 않게 하려면 부모도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바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식은 부모가 하는 대로 보고 배운다. 그러므로 자식의 잘못은 일차적으로 그 책임이 부모에게 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 사양하고 양보하는 정신, 어른을 공경하는 자세는 부모가 먼저 본보기를 보여서 자식이 느껴 따라오게 해야 한다. “자식도 슬하의 자식”이란 말이 있다. 곁에 있을 때 자식이지 출가하여 떠나고 나면 남과 같다는 뜻으로 쓴다. 그래서 속담에 “슬하가 쓸쓸하면 오뉴월에도 무릎이 시리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자식은 태어난 후 적어도 3년을 부모의 품안에서 자란다. 3년이 지나 제 발로 걸어 다니게 되어도 결혼하여 부모의 슬하를 떠날 때까지 애지중지(愛之重之) 아끼는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한다. 예전에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자식은 3년 동안 상복을 입었다. 갓난아이 때 3년간 품에 안고 길러 주신 그 은공(恩功)을 차마 잊을 수 없기 때문에 그 기간을 생각하면서 보은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용돈과 생활비를 대 준다고 해서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효’가 아니다. 어버이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몸소 곁에서 든든한 지팡이 역할을 해 주어야 진정한 효다.

《한비자(韓非子)》에 ‘자모유패자(慈母有敗子)’라는 말이 있다. ‘자애로움이 지나친 어머니 밑에서는 몹쓸 자식이 나온다.’라는 뜻으로,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나치면 그 자식이 방자하고 버릇없는 사람이 됨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자주 인용되고 있다.《한비자》의〈현학(顯學)〉편에서는 “무릇 엄한 집에는 사나운 종이 없지만, 자애로운 어머니에게는 집안을 망치는 자식이 있다. 그러므로 위세는 난폭한 행위를 금할 수 있지만, 후덕함으로는 어지러움을 그치게 할 수 없다(夫嚴家無悍虜, 而慈母有敗子. 吾以此知威勢之可以禁暴, 而德厚之不足以止亂也)”라고 하였다. 이를 두고,《사기(史記)》의〈이사열전(李斯列傳)〉에서는 “그러므로 한비자가 ‘자애로운 어머니 밑에서 몹쓸 자식이 자라지만 엄격한 집에는 거스르는 종이 없다’라고 하였으니, 왜 그렇겠습니까? 바로 벌을 줄 만한 일은 반드시 벌을 주기 때문입니다(故韓子曰, 慈母有敗子而嚴家無格虜者, 何也. 則能罰之加焉必也)”라고 해석하고 있다. 

가풍이 엄격한 집안에는 이를 거스르는 사나운 종이 있을 수 없지만, 어머니가 지나치게 사랑을 쏟으면 그 자식은 응석받이가 되어 점점 버릇없고 방자하게 자라 결국에는 집안을 망치게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은 참으로 가슴 아프다. 옛날에는 엄부자모(嚴父慈母)라 하여 엄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를 이상적인 부모상으로 삼기도 하였으나, 자애로움이 지나치면 자식을 망치게 된다는 것을 경고하는 말이다. 부모로서 자식을 어떻게 훈육해야 하는가에 대한 지침이라고 할 만한 이 지적을 통해 오늘날 우리 부모들은 더 많은 것을 깨우치지 않으면 안 된다.

부모와 자식, 형제 사이의 관계는 끊고 싶다고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 하늘이 맺어 준 윤리라 해서 천륜(天倫)이라 한다. 전통적인 효(孝) 윤리가 땅에 떨어지고 보니 자식이 부모를 버리거나,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엽기적인 패륜(悖倫) 사건이 가끔 일어난다. 윤리는 인간이면 누구나 지켜야 할 떳떳한 가치이다. 이른 바 ‘패륜아’란  위아래를 알아보지 못하고 부모나 윗사람에게 제멋대로 구는 젊은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얼마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2건의 모자(母子) 살인사건은 결국 돈 때문에 벌어진 끔찍한 일로 밝혀졌다. 한 건은 아들과 며느리가 공모하여 어머니와 형을 살해했고, 다른 한 건은 조카가 숙모를 죽인 존속살인이었다. 필경 그들 모두 자신이 죽인 어머니와 숙모에게는 귀한 자식이자 조카였으리라.

예로부터 불효 중에 가장 큰 불효는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이라고 하였다. 자식은 부모를 땅에다 묻지만,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고 하여 그 아픈 심정을 가리켜 ‘상명지통(喪明之痛)’이라 하였다. 옛날 자하(子夏)가 아들이 죽자 상심한 나머지 밤낮으로 울다가 마침내 눈이 멀고 말았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로서, 자식을 앞세운 어버이의 아픔은 빛을 잃어 천지가 캄캄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자식의 죽음은 배우자 상실에서 오는 후유증보다 강도가 훨씬 커 자식을 잃은 부모는 오래 살지 못하고, 특히 자녀가 급사한 경우 부모의 사망 위험이 훨씬 높아진다는 연구보고서도 있다. 인간의 정리(情理)가 이러하거늘 하물며 자식에게 죽임을 당한 부모와 동생으로부터 죽임을 당한 형의 마음은 대체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당(唐)나라 때 한유(韓愈)가 지은 작품으로 ‘제십이랑문((祭十二郞文)’이 있다. 그가 어려서부터 서로 의지하면서 함께 자란 조카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인데, 문구 하나하나가 너무나 간절하여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이 글을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형제 사이의 우애(友愛)를 모르는 자’라고 하였다.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 이밀의 진정표(陳情表)와 더불어 중국 3대 명문 중 하나로 꼽히는 이 글을, 이들이 단 한 번이라도 읽어보았더라면 어땠을까.

이제 더 이상 학교에서는 회초리를 드는 선생님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못 들게 해놓고 진정한 스승이 없다고 우긴다. 돈 때문에 아무런 죄의식 없이 부모와 형제를 버리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회초리 대신 무조건적인 과잉보호가 빚어낸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자화상이다. 우리 사회가 뿌리 채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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