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人材)를 고르는 지혜

기사입력 2013.12.0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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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

당(唐) 나라 때 한유(韓愈)가 쓴〈진학해(進學解)〉라는 글에 ‘파라척결(爬羅剔抉)’이라는 말이 있다. 글자 그대로 손톱으로 긁거나 후벼 모조리 파내고 발라낸다는 뜻인데, 남이 숨기고 있는 비밀이나 결점을 파헤친다는 뜻과 숨어 있는 인재(人材)를 널리 찾아내 치밀하게 살펴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캐서 밝히고 등용(登用)함을 이르는 말(爬羅剔抉 刮垢磨光)이다.

제대로 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노력은 동서고금을 통해 다양한 과정과 방법으로 계속되어 왔다. 쓸 만한 인재에게는 가혹한 비난과 모략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군주의 입장에서는 냉철한 판단으로 인재를 골라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예로부터 좋은 인재를 뽑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모든 일을 잘 풀리게 하는 기본이라는 뜻으로 ‘인사만사(人事萬事)’라는 말을 쓴다.

태종 이방원은 경복궁에 새 누각을 짓고 그 이름을 경회루(慶會樓)라 지었는데, 그 경위를 밝힌 경회루기에서 “내가 일찍이 들으니, 공자께서 노나라 애공(哀公)의 물음에 대답하시기를, ‘정사를 잘하고 잘못하는 것은 사람을 잘 얻고 잘못 얻는 데 있다.’ 하셨다. 대개 인군(人君)의 정사는 사람을 얻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니, 사람을 얻은 뒤에라야 ‘경회(慶會)’라 이를 수 있을 것이다.”라 하고 있다. 좋은 인재를 얻는 것이 정치의 기본임을 강조한 것이다.

당나라 현종 때 재상 한휴(韓休)는 매우 곧은 성격의 인물이었다. 현종이 궁중에서 연회를 베풀거나 후원(後苑)에서 사냥을 할 때, 조금이라도 지나친 점이 있으면 좌우를 돌아보면서 “지금 이 사실을 한휴가 아는가?”고 물었다. 하지만 언제나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곧바로 한휴의 상소가 올라오곤 했다. 이 때문에 현종은 기분이 우울해져 몸이 수척해질 정도였다고 한다.

어느 날 몇몇 신하들이 “한휴가 재상이 되고 난 뒤 폐하께서는 옥체가 쇠약해지셨습니다.”라면서 한휴를 비방했다. 그러나 현종은 “비록 짐의 몸은 쇠약해졌지만, 천하는 한휴 때문에 살쪘다. 내가 한휴를 기용한 것은 사직을 위해서이지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다.”고 말했다고 한다.

예로부터 인사 문제는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집단 사이에 항상 옹호와 동시에 비난의 대상이 되곤 했다. 오늘날에 이르러 과거보다 더 엄격하게 도덕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민심이 흐르면서 인사를 검증하는 시스템도 훨씬 가혹해졌다. 현미경을 들이대듯 후보자를 철저하게 검증한다는 명분으로 개인의 민감한 사생활 분야까지 샅샅이 뒤지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동안 숱한 검증과정에서 유력한 많은 인재들이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낙마하곤 했다. 어느 새 이런 상황에서는 흠결 없는 인물을 찾기가 어려워졌다고 하소연할 정도에 이르고 말았다.
 
《한비자(韓非子)》〈대체편(大體篇)〉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현명한 군주는 지혜로써 마음을 더럽히지 않으며, 사리를 추구함으로써 몸을 더럽히지 않는다. 또한 법에 의해 국가의 어지러움을 다스리고, 상벌에 의해 시비를 분별하며, 저울에 의해 물건의 경중(輕重)을 분명하게 하고, 그리하여 하늘의 법칙에 역행하지 않으며, 사람의 본성을 상하게 하지도 않는다. 터럭을 불어가며 작은 흠집을 찾지 않고, 알기 어려운 것을 때를 씻어내면서까지 살피지 않는다(不吹毛而求小疵, 不洗垢而察難知).”

여기에서 유래한 ‘취모구자(吹毛求疵)’라는 성어는, 입으로 불어가며 털을 헤쳐서 그 속에 있는 상처를 찾아내는 것처럼, 없는 먼지도 일부러 털어가며 남의 약점을 악착같이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즉, 상대를 별것도 아닌 것으로 굳이 흠을 잡으려고 노력하는 것을 가리킬 때 쓰인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도 “털어서 먼지 안 날 사람이 어디 있느냐” 고 하지 않았는가. 굳이 흠 잡으려고 들면 피해나갈 사람이 어디 있으랴?

1453년 6월에 계유정란(癸酉靖亂) 쿠데타를 성공으로 이끈 주력들이 단종 복위운동으로 처형된 사육신 이개(李塏)가 조카였다는 이유로 병조판서 이계전(李季甸)의 처벌을 청했을 때, 세조는 “이계전은 원훈(元勳)으로 마음이 충직하다. 죄의 정상이 드러났다면 죄를 주는 것이 옳으나, 그 정상이 드러나지도 않았는데 굳이 취모구자(吹毛求疵)한다면, 대체(大體)에 손상이 있으리라”하며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세조는 굳이 터럭을 불어가며 흠집을 찾아 그를 연좌시키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황희(黃喜)는 조선 왕조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능력을 지닌 청백리로 칭송되고 있다. 세종대왕 치세에서 18년 동안 영의정을 맡아 농사 개량, 예법 정비 등 숱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성품이 너그럽고 신중했으며, 사리가 깊고 충효가 지극했다. 벼슬이 높을수록 겸손했으면서도 의기가 곧아 바른 말을 잘 했다. 2번이나 좌천되고 4년 동안 귀양을 갔다. 그는 조선 초기 국가 기틀을 마련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유능한 정치가로서, 유교사회에서 인재가 지녀야 할 능력과 자질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반면에, 그는 권력의 중심에 선 ‘실세 중 실세’였지만 그의 주변에는 늘 소인배들이 들끓었고 유혹에 시달렸다. 그는 자신이 연루된 뇌물수수, 관직알선 등은 물론, 자신의 사위가 연루된 사건에 대해 고위층을 총동원해 축소, 은폐했다는 내용 등으로 단골 탄핵대상에 오르내리곤 했다. 심지어 간통 의혹까지 받기도 했다.

하지만, 세종은 그의 능력과 충성심을 높이 평가했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마다 잠시 벼슬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뒤 다시 기용했다. 세종은 그의 도덕성이 아닌 탁월한 능력과 정치력을 보고 그를 감싸 안았다. 군주로서 재상에 대한 존중과 배려, 관용이 만들어낸 걸작이라 하겠다.

삼국시대 조조는 210년 인재를 널리 구한다는 ‘구현령’(求賢令)을 발표했다. 내용 가운데 “청렴하고 깨끗한 선비가 아니면 안 된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으면, 언제 인재를 구할 수 있겠는가”라는 구절이 눈에 띤다. “큰 재주를 지녔지만 뇌물을 받았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한(漢) 고조의 일등공신이 된 진평(陳平)과 같은 인재가 어딘가 분명 있을 것이다. 오직 능력만으로 인물을 천거하도록 하라.”는 대목도 있다. 난세에는 도덕성보다는 능력을 지닌 인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이 때문에 조조 주변에는 다양한 인재들이 몰려들었고 마침내 위나라는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다.

이와는 반대로, 공자는 노나라 대사구(大司寇)직을 3년 정도 재임한 이후엔 평생 이렇다 할 공직에 등용되지 못했다. 당대 최고의 석학이었으니 학식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예나 덕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오히려 너무 어질고 능력이 출중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뛰어난 인재들이 소인배들의 견제에 가려져 조용히 사라져버리는 그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뜻 있는 사람들은 꼭 필요한 인재, 쓸 만한 인재들이 적재적소에 등용되는 일은 한낮에 이슬을 구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한탄하곤 했다. 권력의 주변에는 늘 주군의 눈을 가리고, 정신을 혼미하게 해 결국 일을 그르치게 만드는 간신배들이 득실거리기 마련이어서 그 벽을 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사청문회가 직무를 맡아 그 소임을 다해낼 수 있는가에 대한 역량 검증은 뒷전이고 흠집만 찾아내어 면박과 망신주기로 변질된 지 오래다. 자신들도 예외일 수 없는 사소한 흠까지 다 찾아내는 바람에, 후보자는 순식간에 파렴치하거나 도덕적으로 대단한 흠결을 가진  사람이 되어 나락으로 떨어지곤 한다. 굳이 흠을 잡겠다고 불어대는데 안 걸릴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러므로 지금과 같은 인사 검증 시스템으로는 좋은 인재를 찾아내기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므로, 보다 현실적이고 효율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청렴성과 도덕성을 중시하게 되었는지 한 번쯤은 돌아볼 일이다. 개발과 성장이라는 과제를 걸어놓고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 사회에서, 오늘날 이렇게 엄격하고 가혹한 잣대로 획일적으로 검증하려 든다면, 우리 모두 큰 자기모순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은 많은데 정작 쓸 사람은 없다고 한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 관용의 자세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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