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니가 내 돈 가져갔제~”
기사입력 2014.03.05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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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석경(울진군 주민복지과
희망복지지원팀 사회복지사)
2000년 9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되기 한 달 전 사회복지공무원으로 첫 발령을 받고 맘 설레며 사회복지사로 첫발을 내딛던 그때가 지금도 생생한데 복지 업무와 함께 울고 웃으며 벌써 10여년이 훌쩍 지나갔다.
2012년 5월 희망복지지원단의 출범과 함께 군청 희망복지지원단으로 이동하면서 첫 발령 때의 기분을 마치 그대로 느끼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한다. 열심히 교육을 쫓아다니며 통합 사례 관리와 자원 관리라는 업무에 공감은 하면서도 10년 넘게 복지 업무를 했는데 왠지 머릿속에 든 게 하나도 없고 정말 바보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자기 개발을 너무 안 한 탓일까?
왜 이렇게 감을 못 잡고 있지?
다시 학교를 다녀야 할까?를 고민하며 2013년 자원 관리에서 통합 사례 관리로 업무를 이동하게 되었고, 1년 동안의 고민이 무색하게 본격적인 사례 관리 업무에 푸욱 빠져들게 되었다.
그 집 어떻게 좀 해줘야 되는데...... 늘 생각에만 있던 바로 그 집!
해당 면사무소 팀장님께서 사례 관리를 요청하셨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요청한 대상자와의 인연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사무소에서 30분째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하고 있다.
나는 속으로 연신 뱃속의 아가에게 이야기한다. ‘저 할매가 엄마나 아가를 미워해서 그러는 게 아니고 마음에 병이 들어서 그러는 거란다. 불쌍한 할매지’ 그렇지만 이것도 한두 번이지 길어지면 자연스레 목청이 높아지게 되어 있다. 복지팀장님이 호통을 쳐서 겨우 문밖으로 나간다.

찾아가는 사례회의
소문으로만 듣던 그 할매네~ 전산망을 확인해 보니 집에 국가유공자로 하지절단장애가 있는 거동 불편한 할아버지도 있었다. 마당에 커다랗고 사나운 개 두마리 때문에 들어가지를 못하니 생사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어 순간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할아버지는 다행하게도 방문 간호사로부터 담 너머로 대화를 나누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영~ 안 되면 SOS 방송에다가 내가 먼저 신고해 버릴 꺼다 정말’
또 하루는 노인회장님을 만나기 위해 농협에 들어서는 순간, 어디선가 익숙한 냄새와 함께 오른편 저쪽 끝에 할머니가 서서 이쪽을 바라다보고 있지 않은가!! 순간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들이 지나갔다.
할매는 ‘오늘 니 딱 걸렸다. 돈 빼가는 현장을 목격했다’고 생각하고 있었겠지만, 나는 어떻게 빨리 할매의 눈앞에서 사라질까 농협 뒷문을 향해 달렸다.
문을 다 나오기도 전에 “어이~ 어이~”하며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농협에서 도둑년으로 몰려 봉변을 당할 것만 같아 못들은 척하고 사무실로 급히 왔다. 휴우~ 이렇게 시작된 할매와의 불편한 만남은 출산 휴가를 가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할머니는 집안에 있는 돈을 훔쳐간다며 항상 주변 사람들을 의심한다.
‘이 도둑놈~ 천하에 몹쓸 도둑놈~ 니가 내 돈 가져갔제’ 한번 터지기 시작한 의심은 극도의 흥분으로 이어지며 욕설과 뒤섞어 1시간 정도는 내뿜어야 잦아든다.
이 지역의 토박이 팀장님이 자녀분들과 상담하여 정신병원 입소 동의를 얻었다고 하셨다. 제일 큰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이번엔 반드시 결론을 보리라~!!
몇 년 만에 방문한 할머니의 집은 다행히 크고 사납던 개들은 어디로 갔는지 없었고, 예전보다 더 깡마른 할머니가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채로 “뉘고”하며 나오신다. 나와 눈이 마주쳤으나 내 얼굴은 못 알아보았고 통합 사례 관리사 선생님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어디서 많이 보던 사람일세”하고 먼저 말을 걸어온다.
‘다행이다.’ 첫마디부터 욕을 쏟아낼 줄 알았는데 반기시는 눈치라서~
“어디 다녀오시는 길이셔요” 하고 물으니 면사무소 다녀오는 길이라고 하셨다.
‘어쩐지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이신다’고 했더니, 벌써 면사무소에서 한판 응어리를 다 풀어내고 오셨나보다.
할아버지와 상담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도둑이 들어올까 봐 문도 없애버려서 두 손으로 담을 짚고 훌쩍 뛰어넘어갔다. 쾌쾌한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방안에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가 보기에도 민망한 누더기 옷을 입고 앉아 있었다. 얼마 만에 만난 사람인지 6.25전쟁 이야기를 반시간도 넘게 신이 나게 이야기하고는, 지금 제일 불편한 것이 어떤 것인지 물었더니 몸이 좋지 않아서 병원에 한번 가보고 싶노라 이야기도 하고, 라디오가 고장 나서 꽤 오랫동안 못 들었다고 하며 작은 라디오를 하나 구해달라고도 하셨다. 그렇게 하겠노라고 약속하며 초기 방문을 마쳤다.
<학대 현장>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할머니에게서 할아버지를 구출하는 작전이 시작되었다. 먼저, 병원 검진과 요양 기관으로의 입소를 위해 건강보험공단 직원과 통화하여 할아버지의 장기 요양 등급 판정을 얻기로 하고 대상자의 특수성에 대해 설명한 후, 희망복지지원부서와 면사무소 복지 담당자와 상의해서 방문 날짜를 잡아주셔야 한다고 당부하며 가능하면 통합 사례 회의 참석까지 부탁드렸다.
해당 면사무소로 ‘찾아가는 사례 회의’ 준비를 하기 위해 일찌감치 군청에서 길을 나섰다. 회의 시간에 맞춰 경북노인보호전문기관의 팀장님과 담당자, 국민건강보험공단 울진출장소 직원분, 보건소 직원과 방문 간호사, 읍·면 재능 나눔 봉사단 대표로 부녀회장님이 참석해 주셨고, 면장님의 인사로 시작하여 사례 대상자에 대한 발표가 잔잔하게 이어졌다.
「그 가족이 사는 세상은 마치 1950년대 전쟁 후를 방불케 합니다.
마당에서 돌멩이를 쌓아놓고 나뭇가지로 군불을 지펴 음식을 해 먹으며, 방에서는 호롱불을 사용하고 천장에는 쥐들이 사는 흔적들로 얼룩져 있으며 악취가 나는 방치된 식기 도구들과 구멍 난 곳을 덧대어 꿰맨 누더기 옷들을 널어놓은 방에서 전기, 가스, 전화도 없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 노인 부부의 슬하에 3남 2녀가 있으며 첫째 아들이 군 입대 후에 정신질환이 찾아와 병원 입·퇴원을 반복하며 현재는 부부와 함께 거주하고 있고, 2남 2녀는 모두 원거리에 거주하며 다들 형편이 어려워 경제적인 도움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몇 년 전에는 찾아온 아들까지 도둑놈이라고 집에는 발도 못 들여놓게 길거리에서 욕을 하며 쫓아냈다고 주변에서 이야기하니 어느 정도까지 상태가 심각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피해망상이 있어 늘 도둑놈이 집에 들어와 돈을 훔쳐간다고 힘들어하며, 문도 없애고 전선을 타고 들어온다며 복지 전화와 전깃줄까지 몽땅 끊어버렸으며, 화장실로 기어들어 온다며 그나마 있던 재래식 화장실까지 돌덩이로 막아 악취가 진동하고 이로 인한 이웃들의 괴로움 또한 날이 갈수록 더합니다.
이유 없는 의심과 다른 사람들을 향한 끝없는 분노 표출은 1시간 정도는 욕설을 퍼부어야 겨우 안정될 지경입니다.
십수 년 동안 복지담당자들과 밀고 당기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집수리 사업, 목욕 서비스, 주거 청결 서비스, 스쿠터 지원 등 모든 지원을 거부해 왔습니다. 이유는 어떻게 살든지 간섭하지 말라고 하며, 모두 도둑이라 사람들이 집에 찾아오는 자체가 싫다고 하는 이 가족들이 주변의 도움의 손길을 받아들이고 병원 검사와 진료를 받게 하기 위해 통합 사례 관리가 필요합니다.」
아직 다 읽지도 못했는데 재능 나눔 봉사단 대표로 오신 부녀회장님께서 훌쩍훌쩍 눈물을 찍어내고 계셨다. 모두가 할머니의 병원 치료가 절실함을 이해하게 되었고 정신 장애가 있는 아들의 약물 복용에 관한 문제부터 상지기능장애와 함께 하지절단장애가 있는 할아버지가 재가 서비스를 통해 자택에서 생활이 가능한지의 여부에 대해 의견이 팽팽해지고 있던 차에, 노인 보호 전문 기관에서는 사례 회의 직전에 가정 방문하여 찍은 사진 1장을 보여주며 모두를 충격으로 빠뜨렸고 지속적인 신체 학대가 행해지고 있어 긴급 현장 조치를 결정하게 되었다.
‘피를 흘리며 웃고 있는 할아버지의 사진......’
<자택에서 구출 중>
경찰서와 소방서에 신고하고 입원 가능한 병원과 수송 방법을 알아보느라 보건소 직원과 함께 한 시간 동안 전화를 붙들고 계속 통화하며 현장에 먼저 나가 있는 통합 사례 관리사로부터 진행 사항에 대해 들었다. 할머니가 문을 열어주지 않아 소방서에서 출입문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보건소 직원이 자녀분들이 계시는 부산으로 병원을 알아봐 드렸으나 후송할 방법이 없어 포기하고 인근의 병원을 알아본 후 현장으로 달려갔다.
우여곡절 끝에 문을 뜯었으나 이번엔 할머니의 저항과 거동 불편한 할아버지를 밖에까지 모시고 나오는 작업은 소방서와 파출소에서 출동한 직원들의 힘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으리라. 소리를 지르며 저항하는 할머니를 경찰관이 1시간 넘게 제압하며 들것에 할아버지를 고정시켜 겨우 담벼락을 넘어와서야 나는 구급차를 타고 할아버지와 함께 울진군의료원으로 갔으며, 팀장님은 할머니와 아들의 입원 조치를 위해 영덕으로 갔다.

의료원 응급실에 도착하여 신체 학대의 자세한 사항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간호사 3명이 소독과 치료에 매달렸다. 뾰족한 못 같은 것으로 찔리고 긁힌 상처가 팔과 다리 그리고 전신에 수십 군데가 있었으며 왼쪽 눈도 찔려 눈도 뜰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할아버지 누가 이랬어요’ 간호사들이 몇 번 물어도 대답을 안 하시더니 마지막에는 ‘(본인이) 넘어져서 그랬네’ 하신다.
면사무소에서 자녀분들에게도 입원 사실을 알려 울진으로 오기로 하셨다. 원거리에 병원 두 곳 모두 거쳐 가기 힘드셨을까. 할머니가 입원한 병원에는 자녀분들이 두 번이나 왔다 가셨지만, 할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에는 계속 다음번으로 미루어졌다.
<가구원 분리>
건강보험공단 직원의 협조를 받아 노인학대로 인해 빠른 시간 내에 장기 요양 등급을 받을 수 있었고, 의료원 간병사의 보살핌으로 긴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을 제거하고 나니 할아버지는 전혀 딴사람인 것 같았다. 3일을 연속해서 병원으로 찾아가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었는데도 나를 못 알아보셨다. 치매 증상인데, 갑작스런 환경 변화와 심리적인 문제로 일시적인 것인지 지속되어 온 것인지? 확인할 길은 없었다. 병원 치료를 모두 마친 할아버지는 요양원 직원과 실습생의 안내를 받으며 무사히 입소하셨다.
거의 한 달 만에 따님 두 분이 요양원에 온다는 연락을 받고 만나기 위해 나갔다.
노인 보호 전문 기관에서 이미 사진을 보여 드렸고, 긴급 조치에 대해 이해를 하신 상태라 할아버지의 병원 치료에 대해 설명 드렸더니, “우리가 해야 하는데 못해서......”라며 미안한 마음을 이야기하셨다. 그동안 말도 못하고 자녀분들이 마음고생을 얼마나 하셨을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였다.
오랜만에 딸들을 보는 할아버지는 치매로 딸들을 번갈아가며 못 알아보셨고, 자녀분들이 “아버지 좀 잘하지, 젊은 때 와 그랬소” 하며 손을 만지며 눈물을 글썽이신다.
젊은 시절 어머니가 아이 넷을 키우느라 고생을 엄청나게 하셨다며, 그때 아버지는 술 좋아하고 돈을 벌어주지 않고 밤마다 엄마를 발로 걷어차고 문밖으로 던질 정도로 힘이 장사였다고 옛날이야기를 풀어놓으셨다. “불쌍한 우리 엄마가 정신이 이상하게 된 건 모두 아버지의 탓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에서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여생이나마 이곳에서 편안하게 생활하시는 것이 최선입니다”
생활 형편이 여의치 않아 자주 올 수 없음에 안타까워하셔서, 아버지는 요양원에 맡기고 정신 병원에 입원해 있는 어머니와 오빠를 더 걱정해 주시면 된다고 마무리 짓고 무거운 발길을 돌렸다.
가구원 분리를 통해 위기는 극복했지만, 마냥 병원 입원만 계속 할 수도 없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셔야 함으로 주택 보수라는 더 큰 문제가 남아있었다. 주택 보수 자금은 원자력의 지원과 나머지는 자녀분이 나누어 분담하기로 하였으며, 보수에 들어가기 전에 하루를 잡아 면사무소 팀장님이 재능 나눔 봉사단을 동원하여 쓰레기와 철거 작업을 하고 공사를 시작하는 것으로...... 이때까지만 해도 금방 할 수 있을 줄 알았던 주택 보수는 아직까지도 커다란 숙제로 남아있게 되었다.
한 지붕 아래 두 집의 기이하고 노후한 구조물로 인해 보수 업체에서 도저히 손을 댈 수 없다고 한다. 유난히 무더웠던 한여름, OO건설에서 집수리 로드를 실시한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전문 건설 업체에서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많이 했지만, 울진군에 주택을 보수할 수 있는 팀이 들어와 있지 않아 연결이 되지 않았다. TV 방송도 추천해 주셨지만, 아무도 거주하지 않는 휑한 집만 있고 사람이 없으니 소용도 없었다.
그렇지만, 해결 방법이 있겠지.
희망이 샘솟는 ‘희망복지지원단’이라면 반드시 해내리라.
절대로 풀릴 것 같지 않았던 할머니의 병원 입원과 할아버지의 요양원 입소는 ‘찾아가는 사례회의’ 날에 예상치도 못하게 현장에서 즉각적인 조치로 해결되었다.
어둠이 아무리 깊어도 아침이 오지 않는 밤은 없듯이, 새롭게 지은 깨끗한 집에서 다시 지역 사회로 돌아와 이웃 주민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할머니를 오늘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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