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하늘이여.
기사입력 2014.05.28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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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하얀 국화송이와 노란 리본 속에 묻힌 채 5월이 지나가고 있다. 온 국민을 통곡과 절망으로 몰아넣어버린 봄, 언제 이렇게 잔인한 봄날이 있었던가?
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
속절없이 스러져간 꽃다운 어린 영혼들 앞에서 오늘을 살고 있는 어른들은 ‘미안하다’는 말조차 사치스럽고 부끄러울 뿐이다. 숨 쉬는 것조차 죄스럽다. 우리 사회의 숨겨졌던 민얼굴들이 하나하나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현장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어찌하다 이렇게 되었는가 하고 탄식하고 자책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굳이 따지고 보면, 이런 일이 어찌 한 두 번 뿐이었던가. 다만 그때마다 그저 그러려니 하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시간이 좀 지나면 금방 잊어버리기를 반복해왔다.
예로부터 큰일이 나기 전에는 대개 이런저런 작은 조짐들이 나타난다고 했다. 중국 은(殷)나라의 마지막 임금이자 폭군의 대명사인 주(紂) 임금이 상아로 만든 젓가락을 사용하자, 현인 기자(箕子)는 앞으로 임금의 사치는 막을 수 없을 것이라 예언했다. 상아 젓가락을 사용한 이상 그에 걸맞은 옥으로 만든 잔과 같은 각종 기이한 물건들을 사용하려 들 것이라고 본 것이다. 과연 주 임금은 사치와 방탕한 생활로 종말을 맞는다. ‘사소한 것을 보고 장차 드러날 것을 안다’라는 견미지저(見微知著)라는 성어의 유래다. 해마다 크고 작은 일들을 겪는 과정에서 대형사고의 징조들이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내 책임도, 내 일도 아니라고 무심했던 우리가 아니었던가.
전대미문의 참사가 일어나자 온 나라가 허둥대면서 안절부절이다. 이번 사고는 발생한 후에 수습하는 것보다 미리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다. 일이 터지고 나서 호들갑을 떨며 수습하는 것은 가장 하책이다. 우리 속담에도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다.’했고, 수목을 어릴 때 베지 않으면 마침내 도끼를 사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호모부가(毫毛斧柯)’라는 성어도 있다. 우리 사회는 지금 가래와 도끼를 들고 설치고 있는 형국과 다름 아니다. 어느 곳에서도 마땅히 있어야 할 사고에 대비하는 안전 관련 매뉴얼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 북송 대의 유학자이자 역사가, 정치가로서 자치통감(資治通鑑)의 저자로 유명한 사마광(司馬光)의 어렸을 때 일화이다. 어느 날 그는 친구들과 함께 물이 가득 찬 커다란 물독이 많은 화원에서 놀고 있었다. 한 아이가 실수로 물독 속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갑작스런 상황에 아이들은 놀라 어쩔 줄 몰랐다. 어떤 아이는 발만 동동 구르며 울고, 어떤 아이는 소리쳤으며 어떤 아이는 어른들을 찾으러 뛰어갔다. 놀라서 달려온 어른들도 허둥대기는 마찬가지였다. 사다리 가져와라, 밧줄 가져와라, 야단법석을 떠는 동안 물독에 빠진 아이는 거의 익사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 사마광이 옆에 있던 큰 돌을 들어 물독을 때려 부셨다. 깨진 물독에서 물이 빠지자 마침내 친구를 구할 수 있었다.
정확한 상황판단을 통해 물독을 포기함으로써 친구의 생명을 지킬 수 있었던 어린 사마광의 지혜가 돋보이는 고사로서, 오늘날에는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놓아야 한다는 뜻을 가진 염일방일(拈一放一)이라는 성어로 회자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어린 사마광의 재치보다도 못한 게 현실이다.
사고 수습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치인들의 행태는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마치 자기들의 잘못은 하나도 없는 것처럼 서로 남의 탓을 하면서 비판의 수위를 높이는 한심한 모습만 보이고 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누구에게 책임이 있다고 비판할 수 있겠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부정부패의 고리를 과감하게 끊어내고, 위급한 재난을 당했을 때를 대비하여 이중삼중의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만들어 가려는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전국시대 제나라 재상인 맹상군의 식객 가운데 풍훤(馮諼)이란 사람이 있었다. 당시 맹상군은 설(薛)이라는 지방에 1만 호의 식읍을 가지고 있었다. 3천 명의 식객을 부양하기 위해 식읍 주민들에게 돈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도무지 갚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누구를 보내 독촉할까 궁리하고 있는데 그동안 무위도식(無爲徒食)하고 있던 그를 보내기로 했다. 출발할 때 그는 “빚을 받고 나면 무엇을 사올까요?” 하고 물었다. 맹상군은 “무엇이든 좋소. 여기에 부족한 것을 부탁하오.”라고 대답하였다.
설에 당도한 풍환은 빚진 사람들을 모아놓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맹상군은 여러분의 모든 채무를 면제하라고 나에게 분부하셨소.” 그리고는 모아 놓았던 차용증 더미에 불을 질렀다. 사람들은 그의 처사에 감격해 마지않았다. 풍환이 돌아와 그 사실을 이야기하며 빚을 받아 당신에게 부족한 의리를 사왔다고 보고하자 맹상군은 어이가 없었다.
1년 후 맹상군이 제나라의 새로 즉위한 민왕(泯王)에게 미움을 사서 재상직에서 물러나자, 3천 명의 식객들은 모두 뿔뿔이 떠나버렸다. 풍환은 그에게 잠시 설에 가서 살라고 권유했다. 맹상군이 설에 이르자 백성들이 환호하며 맞이했다. 맹상군이 풍환에게 말했다. “선생이 전에 은혜와 의리를 샀다고 한 말뜻을 이제야 겨우 깨달았소.” 풍환이 대답했다. “교활한 토끼는 구멍을 세 개나 뚫지요(狡兎三窟). 지금 경(卿)께서는 한 개의 굴을 뚫었을 뿐입니다.”
풍환은 맹상군을 위해 다시 두 가지의 계책을 내었고, 마침내 맹상군은 다시 제나라로 돌아와 왕의 신임을 회복하고 재상에 복직할 수 있었다. 맹상군은 수십 년 동안 재상으로 재임하면서 별다른 화를 입지 아니했는데 이것은 모두 풍환이 맹상군을 위해 세 가지 보금자리를 마련한 덕이다. 이 고사는 《사기(史記)》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에 수록되어 전해지고 있는데, 꾀 많은 토끼가 굴을 세 개나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는 뜻으로, 지혜로 위기를 피하거나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옛 어른들은 “의난이 발생하면 임금은 먼저 자기 자신에게 그 책임을 묻고, 그 다음 조정 대신에게 묻고 마지막으로 그 다음 백성들에게 묻는다.”고 하였는데, 어찌하여 이 땅의 위정자들은 모두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면서 변명만 하려 드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빨리 서로 지혜를 모아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데 말이다. 이 땅의 위정자들이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편작이 제나라 왕의 죽음을 두고 말했다. “병이 피부에 머물렀을 때는 고약으로 쉽게 고칠 수 있었고, 혈맥으로 파고 들어갔을 때는 침으로 고칠 수 있었고, 장기로 번졌을 때는 탕약으로 고칠 수 있었다. 그러나 골수로 침투한 병은 어떤 수단으로도 고칠 수 없으니 병을 고치는 것은 초기에 고치는 것만 한 것이 없다.” 초기에 자기 처방을 믿고 치료했으면 죽음에까지 이르지 않았음을 지적하면서, 병을 고치는 데는 때를 놓치면 안 된다(治病莫如適時)고 강조하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이런 단장의 아픔을 이겨내고 국가적 위기도 슬기롭게 극복해낼 것이다.《시경(詩經)》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지만, 바람 속에서도 풀은 다시 일어선다(草尙之風草必偃 誰知風中草復立).’이라는 구절이 있다. 백성은 마치 풀과 같아 아무리 태풍이 불어와도 아주 꺾이지 않고 잠시 누웠다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할 뿐이다. 찔레꽃은 바람이 불면 이리 저리 흔들리고 눕고 꽃이 떨어지기도 하고, 어린 새순은 사람들에 의해 꺾이고 애벌레들에 의해 먹히기도 하지만, 바람이 잦아들기도 전에 찔레나무는 다시 줄기를 바로 세워 하늘을 향해 가지를 키우며, 꽃이 진 자리마다 붉은 열매를 키운다. 우리도 좌절하지 말고 힘을 모아 꾀 많은 토끼가 여러 개의 굴을 만드는 것과 같이 안전하고 건강한 나라를 만드는 데 힘을 모아야 하겠다.
이렇듯 가슴 아픈 잔인한 계절이라서 그런가. 뜰 앞의 연산홍도 더욱 검붉은 선홍색으로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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