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연의 다도(茶道)

기사입력 2006.12.08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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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을 막론하고 음다풍습(飮茶風習)은 다실의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경우가 많다.

화(和), 경(敬), 청(淸), 적(寂)을 일컬어 선다(禪茶)의 오묘한 진리라 했다.
화경(和敬)은 주인과 손님이 모두 얼굴빛을 화하게 하고 공손하게 하는 것이며,
청적(淸寂)은 다실(茶室)과 다정(茶精),
그리고 다기(茶器)와 차의 기물을 칭한다고 했다.
  차를 말할 때 미(美)를 두 가지 의미로 표현하는데,
그 첫 번째는 아름다움이요, 두번째는 맛(味)이다.
 
이 두 가지가 조화롭지 못하면 참다운 茶의 멋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차는 색, 향, 미(色, 香, 味)와 더불어
그 속에 다인(茶人)의 마음도 함께 나타낸다”하듯이,
다문화(茶文化)는‘종합예술’을 넘어 道의 경지에까지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삼국사기에 나타나는‘다자선덕왕시유지(茶自善德王時有之)’란 기록으로 보아
적어도 신라 선덕여왕조(632-647)에 차나무나 음료로서의 차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7세기에 우리 민족은 음다풍속(飮茶風俗)이 자리 잡고 있었음이
여러 사료에서 확인되고 있다.
 
육우(당나라에서 다선〔茶仙〕이라 불린 사람)보다
반세기 앞선 다인(茶人)인 설총(薛聰)은
‘차와 술로써 정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茶酒以淸神)’라고
신문왕(681-692)에게 화왕(花王)을 비유해 간하였음이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어 차를 일상의 수양 음료로 여겼음을 알 수 있고,
661년 신라 문무왕 때 가야(伽倻)의 종묘에 시절제사를 지내는 음식으로써
 떡, 밥, 과일 등과 함께 차가 놓였다.  

이런 기록으로 보아 차가 많이 나는 가야에서는
적어도 6세기에 이미 차를 기호음료로써 마셨으리라는 짐작이 간다. 

또한 사선(四仙)의 전다구(煎茶具), 보천과 효명의 헌공다례(獻貢茶禮),
고구려 무덤의 돈차(錢茶), 자장법사의 제자 조일(租日)의 차나무 재배 등에서도
 7세기에는 이미 어느 정도 차 문화가 정착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오랜 전통을 가진 우리의 차 문화는
시대를 달리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민족의 특성과 환경에 조화로운 아름다운 차 문화를
지속적으로 가꾸어 나아감이 바람직할 것이다.

 

 
김기연(49세)
·2003년 (사)전통예절진흥회 사범교육과정 수료
·2004년 울진 다례원 개설
·2004~6년 울진 다도교실 강사
·2005년 울진세계친환경농업엑스포 다도 행사 주관
·현재 울진 다례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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