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일구는 젊은이들 '손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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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가 끝난 들녘이 내년 농사를 위해 겨울잠에 들어갔다. 그토록 분주히 움직이던 농민들도 겨울에는 얼핏 한가히 보이는 것 같지만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것이 농민들의 숙명일까? 농민들은 각종 영농교육에 참석,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접하고 지난 일 년 간 작업을 정리해야 한다. 농민들에게 있어 겨울은 다음을 위한 에너지의 충전시간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시설재배(하우스 재배)를 통해 농번기 못지않게 바쁜 일상을 보내는 농가들도 적지 않다. 신년호의 주인공은 평해읍 월송리에서 자신이 재배하고 있는 채소 만큼이나 풋풋한(?) 젊은이인 손천수(30세)씨다.천수씨가 겨울 내내 땀과 정성을 쏟아야 하는 하우스에서 12월 16일 만나 그의 농사에 대한 마음가짐을 들었다.
마냥 흙이 좋아서 고향으로 내려와...
월송은 제가 나고 자란 땅입니다. 월송초와 평해중학교를 거쳐 후포고를 졸업(96년)했습니다. 영천에서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서울 전산원에서 1년 6개월 정도 취업을 위해 교육과정을 밟았습니다만, 서울에서의 생활이 도저히 맞지가 않더라고요. 하루 온 종일 다녀도 흙 한 번 밟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흙 냄새가 참으로 그리워졌습니다. 짧은 도시생활을 접고 마냥 흙이 좋아서 고향으로 다시 내려왔습니다. 그러다가 군(軍)에 입대(2000년)해야 될 시기가 되었는데, 저는 군복무 대신‘산업기능요원’이라고 해서, 농사를 3년 동안 지으면 군에 가지 않아도 되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이 기간을 마치면서 농사를 통해 고향에서 뿌리를 내려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어요. 이제는 타지로 나가서 돈 벌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지금의 생활에 전념해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합니다. 농사에 생활방식을 맞추면서 이제는 조금 시간적인 여유도 있고 마음도 많이 편해졌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도 농사일을 도우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소와 돼지의 배설물을 치우는 것이 저의 몫이었거든요. 몇 번을 씻고 학교를 가도 친구들이 냄새가 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도 부끄럽다거나 그런 생각은 없었어요. 제가 처한 상황을 자연스레 받아들였죠. 한편 아버지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불의의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지금도 아버지의 그늘이 그리워집니다만, 돌이켜보면 어머니(황순남, 56세)가 손수 해야 될 일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논농사는 순전히 나의 몫...
지금 농사짓는 면적이 대략 하우스 5동(500평)이외에 밭 1천2백평, 임대해서 관리하는 논이 1만여평 정도 됩니다. 농번기 때 밭이 어머니의 몫이라면, 논은 저의 몫이죠. 그러나 농한기 때는 저도 하우스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하우스 재배를 시작하면서 2003년에 딸기를 심었습니다. 의욕이 넘쳐 교육도 많이 받고 공부도 제법 했습니다만, 그해 태풍으로 인해 하우스가 물에 잠겨 다시 딸기 모종을 심어야 했습니다. 하우스 3동(300평)을 혼자 관리하는 것이 여간 힘겨운 것이 아니더라고요. 논농사와 병행해 도저히 힘들고 자신이 없어 딸기 농사는 접게 되었습니다. 이후 최대한으로 운영 경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시금치와 수배추, 알타리 등 저온작물을 하우스에 심었습니다. 생산되는 채소류는 어머니가 직접 울진과 후포, 영해 장(場)으로 팔러 다니십니다. 제가 일일이 장에 태워 드릴 수가 없더라고요. 한 번씩 (장에)갔다 올 때마다 제가 해야 할 일이 자꾸 쌓여 감당하기가 벅차더라고요. 그래서 어머니가 2003년에 면허증을 취득하셔서 손수 운전해 다니시는데, 아버지의 일도 있고 해서 늘 걱정되고 신경이 많이 쓰이는 부분입니다.
땀 흘린 만큼의 대가를...
짧은 농사 경력입니다만 농사일 하면서 느낀 점은‘노력한 만큼의 대가’는 나오는 것 같습니다. 하우스 1동마다 1년에 4~5번 정도 번갈아 가며 채소를 심거든요. 처음에는 모종을 구입해서 재배했습니다만, 모종으로 지불되는 경비가 만만치 않더라고요. 지금은 직접 모종을 키우고 있습니다. 즉 한 작물을 심으면 70%정도는 시장에 내다팔고, 30% 정도는 모종으로 남겨둡니다. 병충해에도 훨씬 강해졌고요.
또 심을 때의 기대감과 수확할 때의 뿌듯함은 표현할 수 없는 보람이죠. 일하면서 (육체적으로)특별히 힘들다는 생각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하우스 일과 농번기(모내기철과 추수철)가 겹치게 되면 몸이 한 개다 보니 하우스 일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거든요. 작년 같은 경우는 추수철에 작업마치고 다음날 작업을 위해 기계 손질하고 집에 들어오니 자정이 지나 새벽인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제 상황도 그렇습니다만 어머니가 집안일을 꾸려 나가신다고 애를 많이 쓰시죠. 불과 2~3년 전만해도 어머니와 티격태격 부디치기도 했습니다만 이제는 철이 조금 들었다고나 할까요.
무엇보다 땅심이 중요...
몸에 좋고 건강한 채소를 재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땅심이 중요하다는 생각
입니다. 땅이 살아 있어야죠! 그러기 위해서는 화학비료보다는 유기질 거름을 많이 넣어야 되는 것은 필연적이고요. 그렇다고 해서 땅심을 올리는 것이 생각만큼 단기간에 되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현재는 땅심을 키우기 위해 거름에 나락을 찧고 나면 나오는 하얀 가루(등겨)를 첨가 시킵니다. 주위에 계신 분이 가르쳐 줬거든요. 확실히 흙이 많이 북실북실해진 것 같더라고요. 짧은 소견입니다만 농사도 공부도 완성이 없는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배워야 된다는 생각을 많이 가지게 됩니다.
우연한 기회에 지난해 경주서라벌대학 친환경농업기술과에 입학해서 올해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모든 수업에 참석할 수는 없었습니다만, 하나라도 얻고 배울 수 있다면 그리고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배움의 길은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힘닿는 데까지 계속해서 배워야 되지 않겠습니까?
결혼이 1순위...
논농사만으로는 (경제적인)한계가 있습니다.
전업은 당연히 논농사가 되겠지만, 하우스도 여름과 겨울을 이용해 몸을 계속해서 움직여야 하고요. 어른들 하시는 말씀이 있잖습니까?‘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제가 흘린 땀의 양 만큼, 쏟아 넣은 정성만큼 수확을 올릴 수 있을 테니까요. 또한 거름 확보를 위해서 소도 키울 계획입니다. 지금은 짚과 거름을 어느 정도는 맞교환하고 있습니다만, 필요한 만큼의 거름 양을 확보하는데 한계가 있더라고요. 거름의 부족분을 구입해서 사용하니 경비도 만만치가 않고요. 또한 무엇보다도 우리 농촌의 현실상 결혼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쉽게 간과할 수는 없잖아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더 많이 움직이고 더 많이 노력해야 되고요.
그리고 지금의 30~40대가 불과 10년 후에는 울진의 농업을 짊어지고 가야됩니다. 당장 현실적으로는 힘들지만, 군(郡)에서도 우리들에게 힘을 보태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열심히 농사짓는 (동네)형님들과 함께 힘을 모아 서로 도와주고 배려하며 걱정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것이 사람 사는 재미구나라는 생각도 많이 합니다.
만물이 쉬어가는 겨울. 그러나 한편으론 겨울은 새 생명을 위한 준비 기간일 수 있다.
천수씨의 하우스에 새파랗게 돋아난 희망처럼 그들에게 자양분을 공급해주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12월17일에는 올해의 첫 눈이 내렸다. 한 해를 마감하며 또 다른 새해를 맞는 것도 일상의 반복일 수 있다. 괜스레 부산해 지기 쉬운 연말연시(年末年始)다.
나 스스로 자양분이 됐는지를 되짚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