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일구는 젊은이들 '신경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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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요란하고 부산스러웠던 연말연시(年末年始)가 훌쩍 과거형이 되어 버렸다. 떠들썩한 그런 분위기 속에도 우리네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서 여느 때처럼 자신의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열 번째 주인공은 후포에서 과일가게를 10년 넘게 하고 있는 신경득(40세)씨다.

주위의 수소문을 통해 연락을 하고 본인의 양해를 구했지만, 인터뷰가 다소 부담스럽고 조심스럽다는 경득씨를 1월 22일 오후 그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만났다. 하루하루 자신의 본분을 다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아버지의 영향이 커...
93년부터 과일 장사를 시작했어요. 군에서 제대하고 대구에서 6개월 정도 회사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렸을 적에 아버지(신병원, 76세)가 과수원(배와 사과)을 했었는데, 빚을 갚느라 모든 재산을 처분하면서 거의 빈털터리가 됐었어요. 아버지가 국가유공자(독립유공자)입니다. 일제때 의병장으로 활동하신 신돌석 장군이 친할아버지입니다. 아버지의 생각들이 어린 저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매사에 유달리 철두철미 하셨거든요. 아버지는 부모님을 일찍 여의게 되면서, 홀로 살아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강했습니다.
집안 형편상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았습니다. 중학교를 마치고 부산에 내려가 공장에서 일도 잠깐 했지요. 그러나 한편으론 고등학교는 졸업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았어요. 그래서 부산에서의 생활을 접고 85년도에 평해공고 기계과에 입학을 했습니다. 자격증을 취득하려고 무던히 노력했습니다. 당시 실업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경진대회에도 참가하기도 했고요, 돌이켜보면 이를 악물고 참 열심히 생활했던 것 같네요. 장학금 혜택도 받았고요.
주위 분들의 도움으로 지금 이 자리에...
한편 고등학교 시절에 내 힘으로 돼지 100여마리를 키웠는데 수업시간에 새끼를 받으러 나오기도 했어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과일가게를 이 만큼까지 끌어올 수 있었던 것도 주위 분들이 많이 도와주신 덕택입니다만, 돌이켜보면 고등학교시절부터 줄곧 주위 분들의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저히 대학에 진학할 형편이 되지 않았지만, 대학에 진학하고 싶은 마음이 참 컸었어요. 그래서 부모님 몰래 시험을 쳐서 부산의 모전문대에 합격했지만, 막상 합격통지서를 받아들고 합격했다는 말을 쉽사리 할 수가 없더라고요.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입학금이 없어 전전긍긍했습니다.
아버지는‘대학은 무슨 대학이냐’며 돈 벌러 가라는 말씀에 서러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어머니(이귀동, 70세)가 어렵사리 입학금을 마련해 주셔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어요. 그때 돈을 벌어야 되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대학도 장학금으로 다녀야 했기에 그만큼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형편상 전문대를 마치고 입대했어요.
고등학교 다닐 때 아버지가 트럭을 가지고 과일 장사를 하셨는데, 군복무를 마치고 아버지를 따라 다녔습니다. (기계에 관해)애써 배운 것에 대한 아쉬움이야 말로 어떻게 다 표현하겠어요. 아버지와 함께 하면서 야단과 꾸지람도 많이 먹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이 일을 하라는 말씀도 없었어요. 아버지로부터 월급을 받으면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장사를 하면 돈을 벌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편으론 제 성격이 내성적인 면이 상당히 많았어요. 지금 내성적이라고 하면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처음 혼자 트럭을 몰고 여기저기 장사하러 다닐 때는 오는 손님에게만 팔았어요.
(과일 사세요라는)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가 정말 힘들데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2~3년이 지나면서, 제 스스로가 먼저 웃고 인사하면서 찾아주시는 손님들에게 다가갔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은 부모님처럼 생각하고 대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차츰 찾아주시는 분들이 하나 둘씩 늘어났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주위에서 많이 보살펴 주시고 힘을 보태주신 것 같아요. 어머니도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했습니다.“앞만 보지 말고 뒤도 돌아보며 살아라...”
장사를 시작한지 10년이 넘어가면서 아버지가 “앞만 보지 말고 뒤도 돌아보고 살아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제가 주위로부터 받은 것도 많고 해서 여건만 되면 도우면서 살고 싶습니다. 작지만 나누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고 할까요?
이 일을 처음 시작하면서 아쉬운 점도 많았습니다. 사실 넥타이 메고 다니는 친구들의 모습이 부럽기도 했고요. 나도 친구들만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아쉬움과 부러움이 교차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장사를 본격적으로 배우고 열중하면서 내가 하는 만큼 대가가 돌아온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잠을 줄이는 만큼 움직이는 시간이 늘수록 수입이 더 늘었죠. 아버지에게 서운한 점도 있지만, 제가 처했던 현실을 돌이켜보면 당신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돈 때문에 등록금을 제 때 완납하지 못해 전전긍긍했던 일들을 생각할 때면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이 저려옵니다. 힘들게 공부하며 익혔던 기계 분야의 일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못하고 있지만, 지금 현실이 충분히 만족스럽고 보람을 채워갑니다.
“나쁜 것은 나쁘고, 좋은 것은 좋다”고 솔직하고 정직하게 장사하고파...
장사를 함에 있어서도 좋은 물건을 팔려고 애씁니다. 진열된 과일들 중에서 나쁜 것은 나쁘다고 말하고, 이런 것은 좋다고 솔직하고 정직하자는 것이 장사에 있어서의 제 소신입니다. 또한 그렇게 장사해 온 것이 옳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도 영덕과 영해, 평해 등지로 장날이 되면 어김없이 갑니다. 장날마다 저를 기다려주는 단골손님이 이제는 제법 되거든요. 근래 들어 제가 처음 장사를 할 때보다 대형할인마트들이 많이 생겨 매출이 예전보다 많이 줄었지만, 소비자들에게 좋은 물건을 공급한다는 자신이 있습니다. 물건만큼은 좋은 물건이라고 거듭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파는 과일의 가격이 헐하다는 소리는 안하지만, 물건만큼은 확실하다고 주위 분들이 평을 내려줍니다.시장조사는 필수적, 시세를 알아야...
어떤 상품이든 성수기가 있잖아요. 과일은 여름이 성수기입니다. 지금이야 처음 시작할 때 비하면 많이 게을러(?) 졌다고 할까요. 95년부터 2001년까지 약 7년 정도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어요. 딸아이의 깨어있는 모습을 거의 못 보았습니다. 새벽 4~5시경에 장사를 하기위해 일어나면 저녁 8시나 되어야 지친 몸을 끌고 집에 돌아왔죠. 식사는 아침 겸 점심을 오후 1~2시 사이에 대충 먹고, 집에서 저녁을 먹었죠. 배가 고프다는 사실도 깜빡깜빡했죠.
시장조사는 필수적입니다. 시세를 알아야하고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 지도 정확하게 파악을 해야 하고요. 제가 장사를 하면서 느낀 것은‘좋은 물건을 만들면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농민들이 판로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다면, 이제는 판로가 확보된 셈이거든요. 장사를 하다보면 물건을 구입하고 지갑을 두고 가는 사람들, 아버지 때부터 손님이었던 분들이 지금도 여전히 단골로 곁에서 도와주시는 분들, 일일이 다 꼽을 수 없지만 기억에 남고, (그분들이)제가 이 자리에 있게 해준 장본인들이시죠.
소비자의 입장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과일도‘흐름’이라는 것이 있어요. 지금이 겨울이니 밀감이 제철이죠. 밀감 다음으로는딸기, 그 다음으로는 토마토, 수박, 복숭아, 자두 등이 출하되고, 가을에는 사과와 배의 시즌이 시작됩니다. 소비자들도 기존의‘질보다는 양에서, 양보다는 질’로 성향들이 변했습니다. 제철 과일을 많이 찾죠. 그리고 각 과일마다 작황정보는 대구의 농수산물 도매시장 중매인이나 상인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파악해야 합니다. 소비자들의 입맛을 잡아내고 따라가야 하거든요. 되도록 지역의 물건들을 팔고 싶지만 제가 자선 사업가는 아니다보니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어 안타까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제물(祭物)에 쓰는 것인지, 집에서 먹는 것인지, 행사(결혼식, 회갑 등)에 사용할 것인지를 물어보고 각각에 맞게 추천을 합니다. 좋은 과일을 고르는 방법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예를 들어 밀감은 탱글탱글하고 적당히 부드러운 느낌이 들면서 껍질이 얇은 것이 조생종입니다. 여기에 서귀포 자체에서 생산된 감귤이 당도도 좋고 육질도 연하고 좋습니다.‘오돌이’라고 부르는 부분이 있는데 이것이 많이 든 느낌이 나고 꼭지가 생기가 있는 것이면 좋은 감귤이라 보면 별 무리가 없을 겁니다.여건이 되면 과수원을 하고파...
아마 당장은 과일가게를 그만둘 수는 없습니다만, 농사(과수원)를 짓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앞서 얘기했지만‘좋은 상품을 만들면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됐거든요. 좋은 물건을 만들 자신감도 이제는 어느 정도 생겼고요. 크게 베풀지는 못하지만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작지만 꾸준하게 주위의 어려운 분들과 나누고 싶어요. 마음도 푸근해지고 마음이 부자가 된다고 해야 하나요.자신이 그 자리에 있기까지는 누군가의 도움과 응원이 뒤에 있다. 옛말에 인유은어아불가망이요 이원즉불가불망(人有恩於我不可忘이요 而怨則不可不忘)이라고 했다. 즉 “남이 나에게 베풀어준 은혜가 있으면 잊으면 안된다. 그러나 (남에게)원망이 있으면 잊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이다. 민족의 대명절인 설날이 곧 다가온다. 잊고 지냈던 고마운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 그만큼 우리사회의 온기가 더해지지 않을까?









